베르디 인터뷰: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

자신의 꿈이나 좋아하는 일을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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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Don’t Cry’, ‘Wasted Youth’ 등 사적인 메시지를 전 세계 청년들의 문화적 기호로 확장시켜 온 아티스트 베르디(VERDY)가 서울의 대형 미술관에서 개인전 <I Believe in Me>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외부의 잣대 대신 자신의 감각을 믿어온 태도를 압축한 이번 전시는, 도쿄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내밀한 믿음이 서울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압도적인 물성으로 구현된 뜻깊은 자리였다.

전시장에는 순응과 저항이 공존하는 ‘빅(Vick)’과 자유로운 ‘비스티(Visty)’의 대형 조형물을 비롯해, 아티스트의 손길이 깃든 100여 점의 크레용 드로잉, 그리고 시작의 공간인 도쿄 작업실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베르디는 미술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오리지널 아트워크’를 통해 AI 시대에도 빛을 발하는 아티스트의 수작업과 노동의 가치를 역설했다. <하입비스트>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2D를 3D로 구현해 낸 시행착오의 여정과,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 대중의 슬로건으로 폭발할 수 있었던 베르디의 창작 철학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다.

서울을 채운 베르디의 ‘믿음’

한국에서의 개인전 오픈을 축하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
베르디: 이번 개인전 <I Believe in Me>를 위한 작업에 몰두하며 지냈다. 이번에는 특히 정말 많은 작품을 전시하게 되어 그만큼 제작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보면 이번 작업 기간은 굉장히 충실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의 제목 <I Believe in Me>는 외부의 기준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어온 태도를 압축하고 있다. 도쿄 스튜디오에서 작고 내밀하게 시작된 이 ‘믿음’이 서울이라는 낯선 대도시의 대형 미술관을 채운 것을 보며 어떤 감회가 드는지 궁금하다.
베르디: 솔직히 굉장히 놀랍고, 감동도 받았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큰 규모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전시 준비를 진행하다 보니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 배치나 구성을 수정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렇게 전시장 레이아웃을 조금씩 조정하면서 벽 공간을 확보해 새롭게 그리게 된 것이 입구에 있는 ‘잠들어 있는 빅’ 그림이다. 원래는 어딘가에 작게 그릴 예정이었지만, 역시 큰 작품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두 페르소나, 빅과 비스티

판다와 토끼가 결합된 페르소나 ‘빅’은 가슴의 아나키(Anarchy) 문양이 상징하듯 순응과 저항이 공존한다. 반면 팬데믹 시기에 탄생한 ‘비스티’는 밝고 화사하다. 베르디의 내면에서 이 두 캐릭터는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며 공존하는가.
베르디: 빅은 ‘캐릭터는 이래야 한다’라는 내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분신 같은 존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표현하고 싶은 것을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굉장히 많은 틀 속에서 성립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반면 비스티는 그런 제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캐릭터다. 그렇게 생각하면 둘 다 내가 직접 만들어낸 존재이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어쩌면 형제 같은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형제끼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빅이 남성적이고 강한 타입이라면, 비스티는 자유로운 성격의 아이 같은 느낌이다.

첫 번째 섹션에서 빅을 소재로 한 100여 점의 크레용 드로잉을 선보였다. 완성된 디지털 그래픽이 아닌, 즉흥적인 선과 색채로 이루어진 드로잉을 대규모로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베르디: 여러 가지 재료를 시험해보던 중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렸을 때 굉장히 즐겁고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크레용은 손의 압력에 따라 질감이나 거친 표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에 인간적인 느낌이 살아난다. 그런 특징이 내 작업의 취향과 굉장히 잘 맞는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10장 정도만 그렸는데, ‘이게 더 많아지면 하나의 작품처럼 훨씬 멋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수량이 늘어났고, 결국 100점이 넘게 되었다.

티셔츠나 포스터 속 평면의 그래픽이었던 캐릭터들이 7미터 크기의 대형 비스티와 서로 다른 표정을 지닌 18점의 빅으로 공간 안에 세워졌다. 2D 디자인을 3D 형태의 물질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캐릭터의 부피감이나 표면의 질감 등 시각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베르디: 그동안 다양한 이벤트에서 입체 작품을 선보여왔다. 여러 번 제작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정답’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던 <Coca-Cola X Fes 2025>를 계기로 ‘이거다!’ 싶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 역시 같은 제작팀과 함께 한국 전시장을 직접 보면서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계속 확인했고, 세부적인 부분은 직접 드로잉을 그려 설명하기도 하면서 시행착오 끝에 완성했다. 특히 대형 비스티 작품은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아이디어였는데, 테마파크에 있는 벽의 구조물을 이미지로 삼았다.

메시지의 확장과 창작의 본질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건넨 ‘Girls Don’t Cry’나 무명 시절을 견디며 스스로에게 한 다짐 ‘Wasted Youth’ 등,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한 문장들이 전 세계 청년 세대의 보편적인 ‘문화적 기호’가 되었다. 본인의 사적인 메시지가 대중의 슬로건으로 폭발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베르디: 메시지를 작품에 담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생각할 여백’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백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스스로 해석하도록 남겨두고 싶다. ‘Girls Don’t Cry’나 ‘Wasted Youth’ 역시 그 문구를 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연결해 무언가를 느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쁜 일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섹션은 도쿄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했다. 화려한 결과물이 아닌 ‘시작되는 환경과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의도가 엿보인다. 현재 베르디의 스튜디오 책상 위에서 가장 큰 영감을 주는 물건은 무엇인가.
베르디: 이번에 스튜디오 섹션을 만든 이유는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내 작업 공간이 실제로 어떤 분위기인지 직접 체험해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공간 자체를 즐겨주었으면 한다. 나에게 데스크는 실제 작업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영감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업 책상 앞에 앉는 편이다.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디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아티스트의 노동이 예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베르디: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일러스트나 회화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손으로 직접 그린 작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직접 그리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에너지와 힘이 작품 안에 담기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미지를 AI가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누가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질 거라고 본다. 나는 AI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창작을 도와주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으로 직접 그리는 방식의 매력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수많은 팬들이 베르디의 그래픽이 새겨진 굿즈를 일상에서 소장하고 소비한다. 반면 이번 전시에 걸린 대형 캔버스 신작들이나 실크스크린 연작들은 오직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오리지널 아트워크’로서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스스로 작품을 창작할 때, 대중적인 굿즈를 디자인할 때와 미술관에 걸릴 캔버스 작업을 할 때 마음가짐이나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는가.
베르디: 작품을 만들 때나 머천다이즈를 디자인할 때나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모두 같다. 이번 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스스로 설레고, 나다운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동시에 관람객들이 무엇을 즐거워하고 기뻐할지도 계속 고민하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관람객에게 전하는 이야기


관람객들이 놀이공원이나 영화관처럼 가볍게 즐겨주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의 관람객들이 이 전시장을 빠져나갈 때, 딱 한 가지의 감정이나 메세지를 안고 돌아간다면 무엇이기를 바라는가.

베르디: 개인전 타이틀이기도 한 <I Believe in Me>라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보면서, 누구나 자신의 꿈이나 좋아하는 일을 한 번쯤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그런 시작점이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마지막 질문. 서울 전시가 끝나면 바로 어디로 떠날 계획인가. 당신의 다음 행선지가 궁금하다. 베르디: 이번 개인전 준비를 통해 정말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다음에는 이런 작품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제작에 집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떤 액션을 하게 되든, 내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제대로 만들어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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