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크 브란트, 서펜타인에 처음으로 브레이킹을 선보이기까지
브레이크댄서이자 안무가 이자크 브란트가 질병, 남성의 취약성, 그리고 ‘Soft Shell.’ 뒤에 놓인 2년간의 개인적 혼란을 이야기한다.
이자크 브란트에게 몸은 언제나 하나의 도구였다. 브레이크댄서로서 그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또다시 시도하는 법을 배운다. 실패는 결코 끝이 아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 브란트와 자신의 몸 사이의 관계는 달라졌다.
증상이 3년에 걸쳐 악화된 끝에 그는 지난해 궤양성 대장염 진단을 받았다. 증상이 너무 심해 의료진은 처음에는 암 가능성까지 살폈다. 그는 “제 삶에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제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깨닫게 됐죠.”
그 깨달음은 그의 최신작이자 지금까지 가장 개인적인 작업인 ‘Soft Shell’의 중심에 놓여 있다. 지난주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 공개된 ‘Soft Shell’은 공연예술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글로벌 아트 프로그램 XXIe Siècle의 출범작이자, 브란트가 이 작품을 대중 앞에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이 작품은 조각과 브레이킹을 중심으로 한 7인 안무를 결합해 단단함과 부드러움, 강인함과 취약성, 그리고 젊은 남성들이 품은 균열 난 자아감과의 관계를 탐구한다. 다만 ‘Soft Shell’은 본질적으로 브란트가 직접 살아낸 경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내면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를 겪지 않았다면 이 작업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약 2년 전, 브란트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기 중 하나로 꼽는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리어는 겉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상승세를 타는 듯했지만, 재정과 사생활, 건강 모두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는 모든 게 아주, 아주 좋아 보였어요”라고 회상한다. “놀라운 기회가 많이 찾아왔고 저와 팀은 정말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저는 전혀 건강하지 않았죠.” 내면의 세계를 보호할 방법을 찾던 브란트는 자신의 몸을 방어 수단으로 사용하는 동물들에게 매료됐다. 위협을 받으면 몸을 말아 스스로를 보호하는 천산갑과 아르마딜로의 모습은 초기 레퍼런스가 됐다.
그는 “다른 모든 것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제게 남은 건 이 육체뿐이라는 느낌이었죠”라고 설명했다. “이 몸을 지닌 채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알아내야 했어요.” 이 생각은 서서히 움직임으로 발전했고, 그 움직임은 다시 조각으로 옮겨졌다. 긴 작업 과정을 거쳐 그 신체적 형태는 브론즈 조각이 됐으며, 브란트와 그의 팀은 안무와 사운드, 퍼포먼스로 프로젝트를 계속 확장해 나갔다.
진단은 이러한 탐구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브란트는 런던을 떠나 식단과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주는 신체적·창작적 실천에 크게 의지했다. 그는 “훈련하거나 창작 활동에 완전히 몰입할 때만 잠시 증상이 완화돼요”라고 말했다.
그 결과 몸은 이야기의 매개이자 방어 체계, 동시에 취약한 대상으로 기능하는 작품이 탄생했다. ‘Soft Shell’ 공개 전날 저녁 진행된 드레스 리허설에서도 이 관계는 여전히 다듬어지고 있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건축을 배경으로 브란트와 팀은 마지막 조정을 거듭했다. 안무가 야외 환경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익히고, 작업이 발전해 온 스튜디오와는 다른 공간 안에서 그 강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가늠했다.
이튿날 저녁, 그 디테일은 마침내 제자리를 잡았다. 여섯 명의 댄서와 함께한 브란트는 장식적으로 흐르지 않는 신체성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일곱 명의 퍼포머가 파빌리온을 가로지르는 동안 몸들은 접히고 부딪히며 물러났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브란트가 2년간 움직임을 통해 이해하려 했던 주제를 실어 나갔다.
의상은 이 시각 언어에 또 하나의 층위를 더했다. 브란트와 댄서들은 Stone Island 의상과 Salomon 신발을 착용해, 동시대 서브컬처와 깊이 연결된 두 브랜드를 브레이킹, 조각, 퍼포먼스 아트와 맞닿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NOAM의 지원으로 실현됐다. NOAM은 ‘Soft Shell’을 출범작으로 XXIe Siècle을 시작했다. 이 후원은 브란트의 지극히 개인적인 구상을 런던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 무대 중 하나로 이끌었고, 앞으로 세계 각지의 공연예술을 계속 지원할 프로그램의 토대를 마련했다.
출연진에는 또 다른 중요한 차원도 있었다. 브란트는 남성 퍼포머와 협업자만으로 구성된 그룹을 의도적으로 꾸려, 남성들이 평소에는 억누를 수 있는 감정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이들에게 아주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돼요. 남성들에게 흔히 쌓이는 좌절과 분노를 끌어내되, 궁극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인 무언가로 전환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그러한 해방감은 ‘Soft Shell’ 전체를 관통한다. 실패를 대하는 브란트의 태도 역시 그렇다. 브레이킹은 일찍이 넘어짐이 피할 수 없는 일임을 가르쳤다. 동작을 시도하다 바닥에 나뒹굴고, 이길 거라 기대하며 잼에 나섰다가 2라운드에서 탈락한다. 몸에 멍이 들면 조정한 뒤 다시 돌아온다. 그는 “실패가 끊임없이 밀려들죠”라고 말한다. “그저 과정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브란트에게 그런 순간들은 더 이상 실패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위대함을 향해 나아가는 창작의 과정’이라 부르는 여정의 단계일 뿐이다. 건강 문제와 불안, 실험, 끊임없는 조정이 이어진 2년 끝에 ‘Soft Shell’은 마침내 서펜타인에서 자신의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강인함은 취약성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때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언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지, 언제 다시 마음을 열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두 상태를 오가며 어떻게 계속 나아갈지를 배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