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빈티지 숍, 블루진밥
에디터에게 유일한 국내 빈티지 목적지.
빈티지 숍은 크게 두 중류로 나뉜다. 하나는 ‘진짜’ 빈티지를 취급하는 숍, 또 하나는 ‘진짜’ 빈티지를 취급하지 않는 숍이다. 여기서 ‘진짜’는 진품과 위조품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국내에선 ‘빈티지’의 의미가 왜곡되었는데, 사람들은 종종 이 용어를 구제 의류와 헷갈릴 때가 있다. 흔히 홍대나 동묘, 광장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구제 의류는 빈티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제품이 약 20년만 돼도 빈티지라 칭할 수 있다는 무언의 규칙이 있지만,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수집 가치가 있는 제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리터리와 워크웨어를 수집하기로 유명한 영국 디자이너 나이젤 카본은 “빈티지는 최소 1940~1950년대 이전의 제품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려 21억 원으로 평가되는 4,000여 점의 빈티지 컬렉션을 소장하는 카본이지만, 그의 발언 또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빈티지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렇게 ‘콧대 높은’ 기준을 고집하는 이가 다수 존재한다. 구매하는 컬렉터뿐만 아니라 매장을 운영하는 판매자들도 우월감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찾기 힘든 빈티지, 빈티지를 배우고 발굴하고 싶은 대중에겐 더더욱 다가가기 힘든 주제다.
서론이 길었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신중하고 싶다. 아직 빈티지를 찾아 헤맨다면, 더는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 에디터가 찾은 국내의 몇 안 되는 ‘진짜’ 빈티지 숍, 하지만 결코 콧대 높지 않은 빈티지 숍, 블루진밥을 소개한다.
블루진밥은 설립자 이정택의 원맨(one man) 매장이다. 규모는 작지만, 속이 꽉 찬 제품군으로 꾸려졌다. 주로 1940년대에서 1960년대 빈티지를 취급하는 블루진밥의 곳곳에는 ‘리얼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청바지는 페니스라는 회사에서 나온 랜치 크래프트라는 웨스턴 브랜드의 제품입니다. 1950년대 미국 목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주로 입었습니다. 이렇게 옆에 지퍼가 있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용입니다.” 직원이 낡은 책의 흑백사진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블루진밥에서는 단순히 오래된 물품이 새 주인 찾기를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며 각자만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매장에 발 디디는 순간, 옛날 미국 영화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 같다. 영화의 OST는 버디 홀리, 엘비스 프레슬리, 스트레이 캣츠. 매장을 채우는 빈티지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뮤지션들이다. 이정택 역시 캐릭터에 충실하다. 어김없이 포마드로 완벽히 세팅한 헤어스타일에 복고풍 선글라스, 가죽 재킷, 그리고 청바지. 마치 <그리스>의 존 트라볼타와 일본 로커를 오묘하게 섞은 듯한 감성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50년대 로큰롤을 동경하며 빈티지를 향한 남다른 열정을 키워왔다.
블루진밥은 2013년에 온라인 매장으로 시작해 2015년부터 창전동의 어느 간판 없는 건물에서 빈티지를 판매했다. 그리고 지난 8월, 이태원으로 이전하며 영원히 나만의 비밀 장소로 남겨지길 원했던 보석 같은 곳을 확장했다.
입고된 상품의 출처는 영업 비밀이지만, 블루진밥은 빈티지의 가치가 유래하는 요소를 모두 지닌 ‘진짜 빈티지’를 약속한다. 그 요소는 바로 희소성과 시대적 용도. 희소성은 해당 브랜드의 높은 가격대 혹은 제품의 제한된 수량에서 나오는 가치다. 꼭 값비싼 럭셔리 라벨뿐만 아니라 특별한 리미티드 아이템도 이 가치를 소유한다. 시대적 용도는 제품의 환경에 의해 어느 특정한 용도로 쓰인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랜치 크래프트의 50년대 목장 워크 바지처럼 ‘진짜 노동자’들이 착용한 옷 말이다. 또 블루진밥은 복고풍 트렌드를 의식한 터무니없이 포괄적이고 뻔한 셀렉션이 아닌, 구매자가 두고두고 착용할 수 있도록 신중히 고려하고 추린 알찬 제품군을 바잉한다. 심지어 가격대조차 친근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블루진밥의 가장 큰 매력은 열정이다. 쇼핑이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빈티지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이다. 좋은 빈티지를 소비자에게 소개하고자 꾸준히 공부하는 준비성이다. 이 덕에 블루진밥은 지난 몇 년간 매장을 찾는 충성 고객층을 보유한다. 이정택은 수시로 타투이스트, 스타일리스트, 바버, 바이커, 로커 단골들과 통화하며 스스럼없이 교류한다.
이정택은 ‘아파치 커스텀 웍스’라는 이름 아래 개인 브랜드도 전개한다. 그가 직접 그린 그래픽을 얹은 티셔츠부터 커스텀 스터드 벨트와 다리미 프린트 토트까지, 모두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들이다. “고전 스타일의 벨트를 착용하고 싶었는데, 한국에는 만들어주는 곳이 없어서” 시작했다는 그는 큼직한 금속 버클은 일본에서, 화려한 스터드는 미국에서 수입해 수작업한다. 결과물은 누구나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을 멋진 액세서리.
이베이나 해외여행에서 건지는 빈티지도 좋지만, 블루진밥은 이에 못지않은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문턱만 넘어도 신세계로 인도하는 숍. 하대나 곁눈질이 아닌 반가운 인사로 환영하는 숍. 헌 옷이나 구제 의류에 ‘빈티지’ 라벨을 붙이지 않는 솔직한 숍. 서울에 단 하나뿐인 블루진밥이다.
블루진밥
우사단로 4길 39-1
곧 다가오는 ‘케이코 쇼텐 파이어킹 카페’ 이야기도 기대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