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 정의 경계 없는 세계, 청(CHUNNNG)

케이티 정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패션 
12,697 Hypes

처음 케이티 정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그가 아직 영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친구들과 작은 독립 잡지를 만든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훌쩍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적인 실루엣과 남성적인 디테일을 한데 섞고, 거리 패션과 당대 문화에서 받은 영감을 고급 기성복의 테일러링 기법으로 변주하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다시 시간이 흐른 2020년 가을, 케이티 정은 처음부터 직접 만들고 설계한 남성복 레이블을 들고 나타났다. 브랜드 이름은 ‘청’이라고 했다. 매번 한 명의 주인공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신, 함께 ‘청’을 만드는 팀원들과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자는 제안은 그가 먼저 했다. 케이티 정과 ‘청’에 궁금한 것이 많았다. 앞으로 어떤 남성복을 만들 것인지, 또 급변하는 현실의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말이다.

‘청’의 시작

“일, 집, 일, 집….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새로 브랜드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함께 일한 기간이 각기 다른 열 명의 스태프와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잠시 숨을 돌린 케이티 정은 조금 편안해 보이기도, 반대로 조금 긴장해 보이기도 했다. 오늘 촬영에는 모두가 ‘청’의 2020년 가을, 겨울 컬렉션 의상을 입었다. 가장 경력이 짧은 직원부터 연륜이 지긋하신 봉제 선생님까지, 새로운 남성복을 처음 걸치고 소개하는 자리였다. 벽을 가득 채운 청의 캠페인 사진 속 패션모델과 그들은 엄연히 달랐지만, 오히려 옷과 모자와 스니커들은 더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그동안 케이티 정 또는 정유경이라는 이름은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 패션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패션계의 대가인 어머니 이름을 딴 브랜드에서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보냈다. 새로 브랜드를 만들기로 한 이유가 있을 법했다. “우리나라 의복에 아주 중요한 역사를 차지하는 ‘우영미’의 아카이브 브랜드를 오래 맡아서 일했어요.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으니 한 회사에 오래 있었죠. 여러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어요. 아무래도 반복하거나 익숙해지면 때로는 자기 복제를 하게 될 수 있거든요. 너무 굳어버리기 전에 내 것을 시작하자고 생각했어요.”

우영미를 지휘하던 그와 ‘청’의 케이티 정은 어떻게 다를까? 그는 우영미 브랜드가 파리에 처음 진출하던 시기부터 함께했다. 시작하는 브랜드를 두 번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점은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다른 점도 존재한다.

“기존 아카이브를 반영하며 내 것을 넣고 재해석하는 게 지금까지 주된 일이었다면, ‘청’은 새로운 브랜드이면서도 기존에 하지 않았던 걸 시도하는 점에서 굉장히 다릅니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

파리패션위크를 유심히 지켜보았거나 이미 우영미의 팬이었다면, 놀라울 정도로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간의 작업이 쌓이고 모이면서 그의 내면에는 이미 어떤 방향이 생겼을 수도 있다. 오롯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면서 어떠한 고민과 선택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어떤 콘셉트로 가자는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패션이 속한 제조업의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인데, 다른 분야가 변화를 꾀하고 발전하는 데 비해서 패션은 옛 모습 그대로이거든요.”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문화가 대두하며 패션만큼 변화한 분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 관점에서 본 패션은 마케팅 방법의 발전과 더불어 개방적인 문화처럼 보이지만, 제조업 고유의 형태 같은 속살은 그대로라는 뜻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오프라인 매장 위주로 돌아갔죠. 지금도 생각만큼 과거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변화하고 진화하는 브랜드. ‘청’을 만들면서 케이티 정이 가장 많이 생각한 지점은 이 부분이다. 오랫동안 답답하다고 생각한 것을,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청’은 브랜드 이름 앞뒤로 레스 댄 사인(less than sign)과 그레이터 댄 사인(greater then sign)의 꺾쇠(<>)와 슬래시(/) 기호를 함께 쓴다. 컬렉션 전반과 브랜드 이름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중 하나인 ‘C 언어’가 주요한 모티브로 들어 있다. 코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이 암호 같은 문구가 세계적으로 통하는 만국공통어라는 걸 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코딩을 배워요.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언어이죠. 아무것도 없는 화면 위에 타자를 치는 것만으로 가상 세계에 무언가 나타나요. C 언어는 현실 언어와 달리 국경이 없어요.” 기본적으로 모든 가상은 현실에 기반을 둔다. ‘청’이 실제 판매하는 옷에 국한하지 않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걸 표현하는 데 적합한 언어인 셈이다.

“현실에 기반을 두되, 두 자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 또한 미래지향적입니다.”

그렇다면 ‘청’은 어떤 브랜드로 나아가려는 걸까? 공식 설명을 발췌하면 아래와 같다.

‘청’은 전 파리 패션위크 브랜드의 총괄이었던 케이티 정이 새롭게 론칭하는 브랜드입니다. 실용적인 ‘스트리트’와 격식을 갖춘 ‘테일러링’을 결합한 ‘스트리트 테일러링’을 선보입니다. 브랜드를 통해 콘텐츠의 다양화를 지향하는 ‘청’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감정을 패션뿐 아니라 예술, 음악, 문화 등을 통해 표출할 예정입니다.

케이티 정이 말을 이었다. “사실 ‘청’은 ‘고 비욘드 리얼리티 투게더(Go Beyond Reality Together)’라는 회사에 속한 한 가지 남성복입니다. ‘브랜드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옷’에 머물 필요는 없다

근래 들어서 전 세계가 이토록 하나의 사건에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수많은 도시의 패션위크도 온라인으로 열리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가 점령한 세상,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많은 분이 고생하고 힘들어하는 상황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라며 운을 떼었다. ‘청’을 준비하는 과정 중 벌어진 이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이해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청’의 개념, 즉 가상 현실과 연계한 패션 브랜드라는 것이 왜 제조업에 필요한지, 왜 시도해야 하는지, 왜 지금 시스템을 파괴해야 하는지 설득하고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가령 ‘왜 모니터로 대화해야 하는지?’ 같은 걸 말이죠.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행위들이 없어질 거라고 주장했거든요. 그때는 와닿지 않다가 가상의 세계가 모두의 일상에 들어오면서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며 케이티 정이 맨 처음 생각한 것은 ‘브랜드 콘텐츠의 다양화’였다. 소위 무수한 패션 콘텐츠의 거품은 결국 옷과 가방 같은 제품을 팔기 위한 것이라는 건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는 굳이 그래야만 하는가 자문했다. 브랜드가 하나의 콘텐츠라면, 그 안에 다양한 여러 가지를 시도해도 상관없지 않나 생각했다.

“굳이 제조업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더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니터와 스마트폰 화면 속에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한 세대가 지금 문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현실의 자신과 가상 속 자신이라는, 두 개의 자아를 지닌 친구들 말이에요.”

그렇다면 패션은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모니터 속의 나에게 투자하는 시대라면, 옷 역시 그에 맞춰서 바뀌어야 한다.

실제로 ‘청’의 모든 옷과 장신구에는 QR 코드가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코드를 찍으면 청의 웹사이트로 연결된다. “옷 위에 무언가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고, 또 다른 가상 매장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옷도 이모티콘처럼 내려받거나, 그 위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세상이 올 거예요. 지금처럼 많은 옷을 만들고, 시즌마다 색을 바꾸거나 가방을 새로 살 필요도 없어지겠죠.” 일반적으로 패션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남성복이든, 여성복이든, 남녀 모두를 위한 옷이든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작업이다. ‘청’을 하나의 패션 브랜드이자 콘텐츠로 본다면, 상품이 반드시 ‘옷’에 머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여기에 추가되었다. “조금씩 공개하겠지만, 사전 제작한 영화도 그 일부가 될 거예요. 기존 방식은 저 역시 익숙하지만, 똑같은 걸 만든다면 굳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 필요는 없었겠지요.”

카타콤(CATACOMB)

2020년 가을, 겨울 시즌, ‘청’은 론칭 컬렉션을 담은 옷과 캠페인뿐만 아니라 ‘영화’를 동시에 선보인다. 7분 길이의 단편 예술 영화 <카타콤>은 임필성 감독이 연출을 맡고 ‘청’의 모델 ‘수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패션 필름이 항상 멋진 옷과 완벽한 모델의 자태를 보여주는 데 대한 반작용처럼 출발했다. 케이티 정은 사람들에게 패션이 조금 더 감정적으로, 다르게 다가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가상이 인간에게 줄 행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영화 속 수민 씨가 ‘청’의 옷을 입지만, 패션과 크게 관련은 없어요. 가상 현실과 미래에 관한 영화는 많았지만, 디스토피아로 표현한 경우가 다수였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반 가상’의 현실을 직접 살아보니 발전하고 도움 되는 부분도 많다고 느꼈어요. 인간은 원래 상상하는 동물이잖아요. 가상 공간 또한 그 산물이고요. 일종의 양날의 검이 지닌 즐거움을 얘기하는 영화입니다.” <카타콤>은 온라인 사전 시사회를 거친 후 2020년 10월 8일, 왓챠에 공개된다.

여성 디자이너가 만드는 남성복

케이티 정은 여성 패션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남성복을 만든다. 여성이 바라본 남성복의 관점은 동성 디자이너가 만든 남성복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디자이너는 자기 몸이 한계인 것 같아요. 가령 여성이 여성복을 만들 때는 자연스럽게 자신과 어울리는 옷이 나올 가능성이 크죠. 그런데 아예 다른 누군가를 위한 옷을 만들면, 피사체가 변하지 않아요.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고객을 위하여 요리하는 것과 비슷해요. 모든 디자이너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저에게는 그런 느낌이 있거든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주인공 역시 그 옷을 입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는 컬렉션을 만들 때 특별한 뮤즈(muse)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제2의 자아처럼 ‘내가 남자라면’이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또 나 자신은 아닌 거예요. 몸은 다르지만, 성격은 스며들죠. 개인의 취향과 상상이 지금 옷에 반영되는 식이에요. 항상, 조금씩.”

2020년 가을, 겨울 시즌 ‘청’의 첫 컬렉션은 일견 다양한 스타일이 담겨 있다. 한쪽에는 화려한 원색 터틀넥 상의와 스웨트셔츠, 다운 재킷과 트랙탑 수트처럼 작업복과 운동복에 기반을 둔 스트리트웨어가 있고, 동시에 겹 여밈 재킷에 아웃도어 디테일을 담은 테일러링 기반의 수트와 재킷이 공존한다. 하지만 케이티 정은 시즌 ‘주제’를 굳이 생각해내고, 사람들에게 설득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메시지는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나의 색감을 유지한다면, 브랜드의 메시지는 결국 전달되지 않을까요? 특별한 정체성이 없다는 점이 ‘청’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옷과 룩을 하나씩 살펴보면, 디자인에 관한 케이티 정의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예전부터 어울리지 않는 것을 섞어서 새롭게 버무렸다. 양쪽 성별의 특징을 중화한 것, 편한 옷과 격식을 차린 옷을 한데 담으니 ‘스트리트 테일러링’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게 되었다. “물론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유행’이라고 말하는 걸 섞어가면서 색을 유지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기 복제하지 않고, 잊히지 않도록 해나가려고 합니다.”

여성 디자이너로서 케이티 정은 옷을 향한 남성 특유의 ‘연구’ 또한 즐겁게 바라본다. 한 벌의 옷에 빠져들수록 브랜드의 팬이 되는 과정 같은 걸 말이다. ‘청’의 컬렉션에는 그런 디테일이 배어 있다. “예를 들면 이 셔츠에는 기존 셔츠가 지닌 기술적인 부분이 들어 있어요. 스트리트웨어의 편안함과 캐주얼웨어의 익숙함으로 잘 입지 않게 되는 테일러링의 격식을 깨부수는 컬렉션입니다.” ‘청’의 옷을 보고 관심이 생긴다면, 이러한 부분 또한 탐구해보면 더 좋을 것이다.

‘청’을 만드는 사람들

‘청’은 옷을 위한 콘텐츠의 다양화가 아니라, 옷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가 브랜드의 우산 아래 존재하는 문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스태프들을 지휘하는 것은 책임자의 몫이다.

“모두에게 다른 소리가 나는 악기가 있어요. 잘 설명하고, 이해하게 하고, 동시에 좋은 소리를 내면서 연주를 마치도록 이끄는 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아닐까요. 물론 가장 어려운 건 판매일 테고,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지만요.”

‘청’의 아트 디렉터이자 브랜딩과 그래픽 디자인을 맡은 김민정은 “콘텐츠의 디지털화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지금 상황이 추진력을 주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가상의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고, 소비자가 경험하도록 하는 게 이 브랜드의 철학이라 생각해요.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의 ‘언택트’ 시대에 앞으로 어떻게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을지 기대하는 면도 있습니다.”

디자인 팀을 이끄는 김은영은 ‘청’의 모든 스태프가 첫발을 맞추는 시즌이기에 브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고 개성을 드러내는 아이템 발굴에 힘을 주었다.

의류와 액세서리 디자인을 담당하는 권혁일은 가상 현실을 접목한다는 생소한 주제를 의류에 적용하는 점이 처음에는 어렵게 다가왔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웠고, 새롭고 다양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생산팀 과장으로 완성품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재 발주와 생산 일정을 관리하는 최덕호는 업무 특성상 브랜드 출시 시점을 성공적으로 맞추기 위한 조급함도 있었지만, 옷의 품질을 낮추거나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패션에 국한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과 품질이 좋은 브랜드라고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합니다.”

스니커 디자인과 의류,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은 박지인은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외국에 발주한 부자재가 확정되지 않은 일정으로 작업하는 데 난항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완성된 스니커는 그 고충을 상쇄하기 충분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스니커에 흔치 않게 적용하는 란디스(콜프 미싱) 공법으로 중창, EVA(에틸렌 비닐 아세테이트), 판창 세 가지를 직접 가공하여 바깥 창을 개발하고, 갑피 위에는 ‘청’의 오리지널 부자재와 그래픽을 얹어서 브랜드의 특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븐 디자이너 손동진에 브랜드 아카이브가 전무한 상태에서 처음부터 작업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케이티 정 실장님의 대표적인 테일러링 수트와 어울리는 스트리트웨어 디자인도 함께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끝내고 났을 때의 보람도 그만큼 컸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생활 반경을 단지 물리적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가상으로 넓어진다고 체감하기 시작했어요.” 온라인 판매와 고객 서비스를 맡은 정민지는 현실을 넘어서 가상으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패션으로 보여주는 브랜드가 ‘청’이라고 했다.

김재영은 전자상거래 브랜드의 뿌리를 담당하는 전산 솔루션과 전자 상거래 시스템을 책임진다. “신규 브랜드 론칭이다 보니 필요한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상황에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솔루션을 잘 활용한다면 그만한 보람은 또 없을 겁니다. 패션 성공 사례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 ‘청’이 예시가 되는 브랜드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위한 대화를 나누기 전, 케이티 정은 열 명 남짓한 스태프들과 ‘청’의 컬렉션을 입고 사진의 피사체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다. “저와 처음 합을 맞춘 분들도 있지만, 10년도 넘게 함께 작업한 선생님들도 계세요.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족 같은 분들입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로서,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내’가 해나가는 게 꿈이었어요. 하지만 점점 세월이 지나 보니 뒤에서 저를 지원해주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뭐라고 사실 따라오나 생각도 들고요. 어떻게든지 브랜드가 잘 되어서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한 분들이에요.” 그는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오늘이 참 좋았다고 했다. 영화만 해도 엔딩에 크레딧이 올라가고, 음반에도 땡스 투가 있는데 왜 패션은 항상 한 사람만 나가는지 안타까웠다.

“저 뒤에 더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다 같이 하니까 멋있고, 더 크게 할 수 있거든요. 팀원들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했지만, 재밌었겠죠?”

현실과 가상의 경계, ‘청’의 미래

‘청’의 첫 번째 컬렉션은 2020년 9월 21일부터 구매할 수 있다. “첫 시즌은 ‘청’ 온라인 매장무신사를 통하여 한국에서 단독으로 선보입니다. 또한 새롭게 준비하는 가상 매장, 즉 버추얼 숍도 이번 시즌 안에 열 계획이에요. 아직 오프라인 전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케이티 정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청’을 이끈다. 동시에 기회를 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럽의 패션 하우스도 가족 운영 체제가 많지만, 적어도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정말로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해요. 워낙 한 사람이 오래 하고, 다음 세대가 들어갈 자리가 몇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실력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이끌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시대는 갈수록 빠르게 변한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말이 과거에는 SF 소설이나 영화 속 먼 미래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실시간 필터를 사용하여 자신을 꾸미는 사람들이 즐비한 세상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모든 것이 점점 변하는 시대, 남성복을 만드는 디자이너로서 케이티 정과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딘 ‘청’은 현실에 존재하는 동시에 가상의 세계를 함께 이야기하는 브랜드로 출발하고 있다. 어찌 보면 패션의 미래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청’의 이야기 또한 그 사이 어딘가에 즐겁게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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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ed by Chunnng
Contributor
Hong Suk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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