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뮤직은 한국에서 앞으로도 유행할까?

된장찌개 먹고 자랐어도 드릴 할 수 있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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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키뱅은 <쇼미더머니 11> 방송 마지막 스페셜 무대에서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그래, 넌 떨어졌어도 최고 수혜자래”라는 가사를 읊었다. 실제로 플리키뱅은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은 신인 래퍼였음에도 2차 예선부터 많은 주목을 받으며 방송 내 디스 배틀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스페셜 무대를 장식했다. 그 뒷배경에는 몇 년 사이 힙합 신의 주류가 된 장르, 드릴 뮤직(이하 드릴)이 자리 잡고 있다.

드릴은 2010년대 초 미국 시카고 남부에서 탄생했다. 치프 키프, 지 허보, 릴 리스 등은 청소년 때부터 갱 문화에 노출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트랩 비트 위에 녹여냈다. 초기 시카고 드릴은 음악적으로 일반적인 트랩과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에 관해 음악 관련 프리랜스 기고가 데이비드 드레이크는 “드릴은 특정 장르나 스타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춤, 정신력, 음악 등 문화 전체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당시에 120~140 사이의 더블 템포 BPM, 벌스와 훅을 구분하지 않는 곡 구성 등 드릴의 음악 스타일이 일부 정립됐다.

드릴에 특정 사운드가 강하게 주입된 것은 드릴이 영국으로 옮겨간 뒤부터다. 2010년대 초반 영국 런던 남부 구역 브릭스톤에 상주하던 영국의 갱스터, 일명 로드맨들이 ‘로드 랩’을 시카고 드릴에 얹은 것이 시초다. 이후 드릴은 슬라이드 기법이 가미된 베이스라인, 카운터 스네어, 시카고 드릴보다 빠른 템포 등 그라임, 개러지, 투스텝, 댄스홀과 같은 영국 전자음악의 특징을 끌어안았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영국의 드릴은 시카고와 구분되어 UK 드릴이라 불리게 된다.

그렇게 시카고에서 영국으로 적을 옮겼던 드릴은 다시 미국으로 수입됐다. 물론 2014년 바비 슈멀다의 싱글 ‘Hot N*gga’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바 있는 만큼, 브루클린 래퍼들이 그 이전에 드릴을 시도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UK 드릴을 새로 들여온 브루클린의 래퍼들은 AXL 비츠, 요즈 비츠, 고스티, 808멜로와 같은 영국 드릴 프로듀서들과 협업하며 브루클린 드릴을 새로 정립했다. 그중 팝 스모크의 믹스테이프 <Meet the Woo>는 브루클린 드릴을 메인스트림에 올린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뉴욕의 또다른 지역, 브롱스는 샘플 드릴 혹은 브롱스 드릴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이 음악은 브루클린 드릴에 자주 사용되는 신시사이저 대신 펑크, 디스코, 소울, 팝 등 과거의 레코드를 샘플링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게 드릴이 진화를 거듭하는 동시에 미국 힙합의 드릴 유행은 한국에도 유입됐다. <쇼미더머니 11>에서 많은 사람이 드릴 비트에 랩을 한 것 또한 드릴이 근 몇 년 사이 미국 주류 힙합으로 떠오른 덕이 크다. 이에 관해 2016년 싱글 ‘Do It’을 선보이며 데뷔한 그라임 MC이자 UK 음악 콜렉티브 데드보이즈의 멤버 댐데프는 “한국에서 어떤 사운드가 유행을 하려면 미국에서 유행을 해야 한다”라며 “지금 미국에서 드릴이 유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드릴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 드릴은 미국 드릴과 유사하다. 사운드적으로는 브루클린 드릴과 샘플링 드릴과 비슷한 음악이 주를 이룬다. 많은 프로듀서가 뉴욕 드릴을 듣고 이를 제작하기 때문이다. 한국 드릴 래퍼들은 기존 한국 힙합 스타일의 가사에 뉴욕 드릴의 박자 감각을 덧붙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 또한 그들 대부분이 미국 드릴의 영향을 받은 탓일 가능성이 크다.

유행과 동시에 한국의 드릴은 과거 힙합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와 유사한 비판을 마주치고 있다. 래퍼 노엘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에서 된장찌개 먹고산 놈들이 드릴 하는 게 제일 역겹다”라는 내용을 남겼다. 드릴은 폭력적인 갱 문화에서 비롯된 음악인데, 한국의 드릴 래퍼들은 이러한 삶의 배경이 부재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 힙합이 꾸준하게 ‘문화적 배경이 전무하다’라는 비판과 맞닥뜨리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직접 드릴과 연관된 음악을 만들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생각은 어떨까. <쇼미더머니 11>의 파이널까지 진출한 래퍼 블라세는 한국에서 드릴 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해 “문화적으로 일부 집단이 합의함에 따라 장르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며, 한국 또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드릴 음악을 한 이유에 관해 “음악은 무언가를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라며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고, 거기에 걸맞은 사운드가 드릴이나 UK 음악이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그는 “그들이 말하는 갱 문화나 이런 것들을 끌어오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쇼미더머니 11> 세미 파이널까지 진출한 래퍼 NSW 윤은 “피비오 포린이 최근에 낸 드릴 앨범 또한 가스펠 사운드를 활용하고, 누구를 죽이거나 공격하는 음악 대신 신앙에 관해 이야기한다”라며 “이미 미국에서도 드릴의 사운드를 활용하여 자유로운 이야기를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래퍼 중 한 명인 AJ 트레이시와의 대화를 회상하며 “그는 한국의 드릴 래퍼들이 너무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 꾸준히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한국 드릴을 향한 또 하나의 비판은 “플로우가 매번 똑같다”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 블라세와 NSW 윤은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블라세는 “드릴은 BPM의 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밀도로 글자 수를 뱉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이 비슷한 플로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드릴 특유의 바운스를 유지하기 위해 뱉어야 하는 박자감이 있다”라고 말했으며, NSW 윤은 “드릴 안에서는 유사한 플로우를 취했을 때 듣기 가장 좋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앞서 밝혔듯, 한국 힙합의 신인들은 뉴욕 드릴을 토대로 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이 이끄는 한국 드릴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UK 드릴을 한국에서 빠르게 차용한 래퍼 중 한 명인 댐데프는 “대중들은 마니아들과 다르게 리얼함, 장르의 본질보다는 본인에게 얼마나 더 와닿는지를 먼저 생각한다”라며 “오리지널리티를 따라가려고만 하다 보면 한국에서의 드릴 붐은 금방 꺼질 것이다”라며 한국 힙합만의 코어가 있어야 함을 짚었다.

신예로 구분할 수 있는 래퍼, NSW 윤은 자신과 친구들이 각자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래퍼들과 함께 “우리가 뭉치기보다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플리키뱅이 브롱스 스타일을, 폴로다레드가 시카고에 가까운 스타일이면 나는 UK 사운드에 집중하며 각자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반면 데드보이즈의 베테랑 프로듀서 로보토미는 드릴에 접근하는 아티스트들이 피상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뉴욕 드릴에 나와 있는 문법만 겉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그 이상을 바라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블라세 또한 개인적으로 드릴은 단순한 표현법일 뿐인 만큼, 그 장르를 굳이 자신의 음악에서 꾸준히 끌고 가야 하나 싶긴 하다고 밝혔다.

한편 데드보이즈의 래퍼 보이비는 한국의 드릴이 케이팝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점쳤다. 그는 특히 뉴욕이나 브롱스가 아닌 UK의 드릴 혹은 전자 음악이 케이팝에 차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스테이씨는 ‘I want u baby’에서, 엔하이픈은 ‘Future Perfect’에서, 스트레이 키즈는 ‘3RACHA’에서 드릴을 활용한 바 있다. 데드보이즈의 프로듀서 하디 또한 “케이팝은 개러지 장르를 전투적으로 차용한 적이 있는 만큼, 드릴 또한 가져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한국 힙합의 특성상, 드릴은 당분간 한국 힙합의 주류 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폴로다레드, 플리키뱅, 칸, J4프라다 등 현재 주목받고 있는 여러 신예들 또한 드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내고 있는 상황이다.

드릴은 래퍼 노엘의 주장처럼 “한철 장사”가 될 수도, 혹은 NSW 윤의 주장처럼 한국 안에서 여러 갈래의 ‘드릴’을 만들 수도 있는 일종의 과도기에 놓여있다. 한편으로 리스너의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한국 힙합에 새로운 장르의 붐이 일어난 흥미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드릴이 단순히 미국의 유행을 번안하고 답습하는 과정을 거칠까? 아니면 실제로 과거 서던 힙합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힙합에 신선한 에너지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드릴의 변화는) 일종의 교환이에요. 각자의 드릴을 만들고 있죠.” 지난 여름, 한국을 찾은 AJ 트레이시가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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