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럴 윈스턴 인터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쓰레기 수집가
“죽었다 여겨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하죠.”

타이럴 윈스턴 인터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쓰레기 수집가
“죽었다 여겨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하죠.”
타이럴 윈스턴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수집가 중 하나다. 십수 년에 걸쳐 그가 고집스럽게 수집해온 건 다름 아닌 쓰레기. 예술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재료를 살 돈도 없고 그림을 그릴 줄도 몰랐던 시절, 윈스턴은 무작정 거리로 나서 누군가 버린 물건들을 하나둘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업 작가는 물론 시간제 근무직을 찾는 것조차 실패했던 윈스턴은 문득 스스로가 ‘길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가 기어코 쓰레기들을 모아 수많은 이들을 열광케하는 미술작품으로 부활시킨 과정은, 그 자체로 자신을 소생시키고자 했던 의지의 과정이기도 하다.
2022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로 꾸려진 ‘하입비스트 100’에 선정되기도 한 타이럴 윈스턴은 지난 2월 1일, 가나아트 보광에서 자신의 첫 번째 국내 개인전을 열었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오브제는 무엇일까? “모든 아이러니는 내가 쓰레기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그가 생각하는 쓰레기와 예술 작품의 차이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갖 사연을 품은 채 건너온 작품들을 함께 바라모며 타이럴 윈스턴과 대화를 나누고 왔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죠. 서울에 머무는 동안 수집한 물건이 있나요?
딱히 수집은 못했어요. 대신 길거리에 있는 방수포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서울의 첫인상은 뉴욕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것, 그리고 재미있는 도시라는 점입니다.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해요.
길거리에서 재료를 구하다 보니 매일 보물찾기 하는 기분일 것 같기도 해요. 뉴욕만큼 재료를 수집하기 좋은 도시가 또 있나요?
요즘에는 디트로이트에서 많은 재료를 얻고 있어요. 뉴욕은 여전히 지저분한 도시지만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어요. 반면 디트로이트는 미개척지나 다름없거든요. 버려진 건물들을 탐험하는 건 언제나 신나는 일이죠. 전국 곳곳에서 재료 찾는 걸 도와주는 분들도 계세요. 예컨데 제가 헌 농구공을 사용하는 걸 알고, 그래피티 아티스트나 빈티지 셀러 분들이 보내주는 거죠.
만일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살았다면 지금 전시장에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겠죠. 뉴욕에서는 어딜 가든 농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만큼 관련된 소재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한국에 와서 신기했던 건 방수포예요. 제가 아는 일반적인 방수포와는 색깔이 달랐거든요. 이렇게 새로운 도시는 제게 활력을 줍니다. 낯선 공간에서는 새로운 것들이 훨씬 더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반면 익숙한 풍경 속에서는 무언가를 찾아내기 어려워요. 이 부분을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보는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타이럴 윈스턴의 대표작으로는 헌 농구공으로 만든 ‘Skewers’ 시리즈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이번 전시장에는 오타니 쇼헤이,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등 유명 운동선수의 서명을 오마주해 회화로 표현한 ’Punishment Paintings’ 시리즈도 있고요. 특히 제목에 부여하는 의미가 남달라 보이는데, 보통 이름을 지을 때 어떤 고민을 하나요?
저는 제목 짓는 과정을 무척 좋아해요. 층을 하나 더하는 작업이거든요. 제목에 따라 유머러스해질 수 있고, 반대로 슬프거나 어두워질 수도 있죠. 당시 느꼈던 감정이나 듣고 있는 음악이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지금과 달리 음악 없이는 작업을 못하던 시기도 있었어요. 가끔은 스튜디오에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대부>나 <보이즈 앤 후드>를 틀어둡니다. 너무 많이 본 작품들이라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지만, 덕분에 작업이 보다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돕거든요.
매일 쓰레기를 수집하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걷다 보니 스니커 취향도 남다를 것 같아요. 특히 좋아하는 모델이 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니커는 리복 클럽 C. 작년에는 운 좋게 리복과 협업 클럽 C, 퀘스천 미드를 만들었고 올해도 새로운 클럽 C가 출시될 예정이에요. 저는 스튜디오에서 클럽 C만 신습니다. 스튜디오에만 20켤레 정도 있어요. 편하고, 내구성이 좋고, 해져도 그 모습이 예쁘거든요. 운동화를 좋아하지만 소중히 다루진 않습니다. 전 제가 가진 어떤 옷이나 신발을 신고도 당장 길거리에서 뒹굴 수 있어요.
NBA 구단주들이 작품을 구입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평소 NBA도 즐겨보는 편인가요?
저는 열렬한 NBA 팬입니다. 사실 제 꿈 중 하나가 NBA 농구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거예요.
본인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구단과 가장 일해보고 싶나요?
어디든 환영이죠. 다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NBA 팀 순위는 명확히 있습니다. 첫 번째는 LA 클리퍼스. 그다음은 뉴욕 닉스, LA 레이커스, 브루클린 네츠 순서입니다. 지금은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피스톤즈도 응원하고 있어요.
그럼 NBA 선수와의 협업을 상상해 보죠.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이건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네요(웃음). 아마 데빈 부커나 샤이 길저스 알렉산더가 아닐까요? 두 선수는 플레이하는 모습도 그렇지만, 평소 코트 밖에서의 이미지들이 제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클리퍼스 팬이라고 해서 카와이 레너드를 선택할 줄 알았어요.
레너드는 부정할 수 없는 슈퍼스타죠(웃음). 하지만 협업을 하게 된다면 NBA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선수들과 일해보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부커와 샤이를 가장 먼저 호명하고 싶네요.
작업에 있어 가장 선호하는 담배는 본인 이름과 같은 ‘윈스턴’라고 들었어요. 여태껏 수많은 윈스턴 담배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실제로 담배 회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은 없는지 궁금했어요.
없어요(웃음). 저는 결코 흡연을 장려하는 게 아니에요. 윈스턴 로고를 볼 때 ‘담배 브랜드’가 아닌, 로고 디자인이 독자적으로 지니는 가치만을 생각합니다. 윈스턴 로고에 대한 저의 애정 역시 담배를 피울 때가 아닌, 작업을 하면서 생겼어요. 이제는 사람들도 윈스턴 로고를 보면서 ‘담배 브랜드’ 윈스턴이 아닌, 아티스트 타이럴 윈스턴을 떠올리면 좋겠네요.
뜬금 없는 질문이지만, 평소에 담배 태우시나요?
예전에는 꽤 많이 피웠어요. 지금은 아이가 있어서 더 이상 피우지 않습니다. 많은 걸 그만뒀죠. 이제는 제가 담배로 작품을 만들고, 몸에 타투가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지금까지는 버려진 담배꽁초, 농구공, 농구 골대 그물 등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죠. 최근 새롭게 눈을 돌리고 있는 오브제가 있을까요?
트로피요. 디트로이트에서 오래된 트로피 상자들을 꽤 많이 발견했어요. 저는 이 트로피들을 보면서 꿈을 포기했거나, 더 이상 트로피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방수포도 수집하고 있어요. 특히 낙서나 페인트가 칠해진 것들. 그건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거든요. 최근에는 시궁창에서 발견한 권투 장갑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만일 시궁창에 빠진 농구공을 본다면 여러분은 그걸 쓰레기라고 생각할 겁니다. 누군가 한때 그 농구공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다만 저는 죽었다고 여겨진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노력합니다. 종교적인 부활을 의미할 필요는 없어요. 새로운 시선을 통해 맥락과 이야기를 더할 뿐이죠.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모든 아이러니는 내가 쓰레기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 있어요. 쓰레기와 예술 작품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장 중요한 건 작품 안에 이야기를 담고 그걸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는 겁니다. 스스로 작품에 일관된 확신을 가질 때, 보는 사람들도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거예요. 쓰레기로 만들었을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싶은 이야기로 발전시킬 수만 있다면 저는 그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데 인스타그램이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 적 있죠. 만일 SNS가 없던 시대에 태어났어도 끝까지 도전했을까요?
그 질문에는 답은 ‘예스’예요. 하지만 분명 불가능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17년 전쯤 진지하게 작업을 시작할 때 저는 누구에게도 제 작품을 공유할 수 없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 작품을 감상하고 공유하기 시작했죠. 그 덕분에 지금 제가 함께하는 갤러리들과 일할 수 있게 된 거예요. SNS 때문에 예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SNS가 없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은 제 작품을 찾아볼 방법조차 몰랐을 거예요.
과거 마르쉘 뒤샹과 데이비드 해몬스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들었어요. 지금 자신의 모습이라면 과거의 타이럴 윈스턴에게 롤모델이 될 수도 있을까요?
전 제가 누군가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제나 젊은 예술가들을 격려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뒤샹과 해몬스가 제게 영향을 끼친 것처럼, 제 작품이 다른 누군가가 예술을 시작할 수 있는 영감이 된다면 기쁘겠죠.
제 작품의 장점 중 하나는 누군가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작품을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여름에는 디트로이트의 크랜브룩 박물관에 큰 농구공 벽을 설치했어요. 그곳에 온 아이들이 작품에 달려가 공을 잡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들도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정말 기뻤어요.
거리에서 재료를 수집하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할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서럽럽거나 민망했던 적은 없었나요?
일단 거리에서 무언가를 수집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농구 그물을 새것으로 교체할 때조차 제가 그물을 훔치고 있다고 생각하죠.
저는 커리어를 시작할 때 미술 용품을 살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그림 그리는 방법도 몰랐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죠.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사물을 다르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길거리에서 눈초리를 받으며 보낸 시간들을 저는 영원히 감사하게 여길 거예요.
10년 혹은 20년 뒤, 사람들이 ‘타이럴 윈스턴’이라는 작가를 어떻게 기억하기를 바라나요?
1등이 되고 싶죠. 물론 최고의 예술가를 가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요. 관련된 우승 트로피도 없고요. 하지만 언젠가 구글에 ‘윈스턴’을 검색했을 때 윈스턴 담배보다 타이럴 윈스턴의 이름이 먼저 보인다면 근사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