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인터뷰: 이제 본진으로 돌아오라

SONGS TO BRING YOU HOME.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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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는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한다. “잡고 싶은 나비를 하루 종일 쫓다 보니 익숙했던 들판은 안 보이고, 해 질 무렵 숲속 한가운데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라고. 청중의 입장에서도 검정치마의 음악은 그렇다. 때론 직설적이면서도 그 의미를 곱씹게 되는 철학적인 가사와 느껴봤던 감정인 것 같지만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하입비스트>와 대화를 나눈 검정치마는 그가 써 내려간 가사처럼 유행어나 꾸밈 표현 없이 덤덤했다. 유머와 비판, 그리고 끊임없는 탐색 속에서 그는 우리에게 잔잔한 위로와 함께, 세상의 모든 불안과 사랑, 희망을 노래한다.

2025년, ‘SONGS TO BRING YOU HOME’이라는 타이틀 아래 검정치마가 2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 “이제 본진으로 돌아오라. 네 집은 언제나 이곳이고, 앞으로도 변할 일은 없다.” 팬들에게 ‘교주님’으로 불리는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정규 앨범 10장을 채우겠다는 가장 명확한 목표를 품고, 오늘도 노래를 쓴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속 조용한 관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반갑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요?

안녕하세요. 저는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장을 본 후 작업실이나 합주실에 가는 게 전부예요. 원래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술이 늘어서 자주 홀짝이곤 합니다. 사람들과 마시지 않고 밤에 혼자 영화보면서 마셔요. 위스키만 몸에 받는데, 버번은 달아서 스카치를 마십니다. 물 타 마셔서 맛은 몰라요.

‘Everything’ 발매 시점에 게임에 푹 빠져서 몇 년 동안 게임만 했다고. 요즘도 게임 즐겨 하세요?

초등학교 시절 닌텐도 같은 건 해봤지만, 자라면서 게임을 좋아해 본 적은 없어요. 뒤늦게 취미를 붙이고 싶어서 플레이스테이션3로 게임을 제대로 접했을 때가 이미 30대였을걸요. 그것도 몇 개월 하다 질려서 그만뒀어요. 사실은 <TEAM BABY>와<THIRSTY>를 동시에 만드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인데, 부끄러워서 둘러댄 말이 와전됐나 봐요.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게임 관련 비디오 에세이를 틀어놓고 듣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특히 샤워하면서. 이상한 취미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벌써 1년 넘게 이어오고 있어요. 평생 들어본 적도 없고 플레이해 볼 일도 없을 옛날 게임 시리즈의 변천 과정이라든가, 제작사의 흥망성쇠 같은 내용을 듣고 있으면 좋아요.

블로그에 직종이 ‘종교’라고 되어있어요. 심지어 팬들도 ‘검정치마는 종교’, ‘교주님’이라고 하는데.

원래 어린 시절엔 다 락 음악이 종교처럼 다가오지 않나요? 그리고 제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평생 쫓아다녔으면 그게 종교지 뭐예요. 몰라요 아무튼 그랬어요. 아내가 말하길, “인간이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행위에서 얻는 정신적 보상이 큰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창조주를 모방하며 가까워지기 때문”이래요. 창조론을 안 믿을 뿐이지 여러 의미에서 저도 종교인은 맞아요. 

팬들이 ‘교주님’이라고 부르는 애정 어린 호칭은 ‘어린 양’ 뮤직비디오 때문에 생겼는데, 좀 창피합니다. 락 음악이 종교라면, 저는 속세에 물들지 않고 맨살을 채찍질하는 청교도 장로에 더 가깝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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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콘서트에서 어린양 전주 부분에 팬들이 “조휴일 사랑해”를 외치잖아요. 무대 위에서 이 소리를 듣는 당사자의 기분은 어떤지 항상 궁금했어요.

부끄럽게도 이제는 그 소리가 노래의 일부분으로 들려요. 원래는 음원 속에 은밀히 숨겨둔 나만의 비밀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히 누군가는 언젠가 발견했겠죠. 어느 날 갑자기 외침이 안 들린다면 서운할 것 같아요. 특히 해외에서는 더 낯설어요.

 

“조금씩 나를 더 알아가며 배워야 할거야. 나의 어린양들아.”

 

2023년과 2024년에는 간간이 휴일 님의 이야기가 들려왔는데요.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를 이어준 장본인으로 언급됐죠.

디테일은 희미한데, 선셋 롤러코스터와 이미 구면이라 공연에 초대를 받았어요. 오혁 씨와 같이 갈까 하다가, 저는 공연에 가지 않았고 오혁 씨만 갔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혁 씨도 중국어를 하니까, 당연히 선셋 롤러코스터와 오혁 씨가 서로 잘 알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하지만 음악적 색깔도 그렇고, 두 밴드의 공통점이 많아서 제 작은 개입이 없었어도 아마 둘은 인연을 잘 이어갔을 거예요.

뉴진스 ‘Ditto’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작곡하신 분이 가이드로 부른 영어 가사가 듣기에 괜찮더라고요. 대체 불가능한 좋은 부분만 살리고, 벌스 부분에는 최대한 한글 가사를 많이 넣으려 했어요. 훅 부분에서는 한글로 영어와 라임을 맞추려고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울린 심장’ 대신 처음엔 ‘눌린 심장’이라는 표현을 생각했는데, (왜 인스타그램에서 하트 누르잖아요. 그런데 심장이 눌리는 느낌이 나면 곧바로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이것도 미루고 미루다 마감 전날 급하게 했는데, 채택된 걸 보고 놀랐어요. 검정치마 작업과 다르게, 남의 노래는 마감일이 있으니까 끝내긴 끝냅니다.

이번 콘서트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볼게요. 2025 콘서트의 주제가 ‘SONGS TO BRING YOU HOME’인데요. 이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쉬는 동안 다른 음악도 많이 듣고 공연도 보러 다녔을 테니, ‘이제 본진으로 돌아와라. 너의 집은 항상 여기였고, 앞으로도 변할 일은 없다.’ 같은 구애의 노래들을 부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반대로 검정치마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단 하나의 곡도 있을까요?

아티스트가 아닌 리스너로서의 자아가 성립될 나이에 듣던 음악들. 15살부터 20살까지 들었던 노래들일 거예요. 극도의 불안과 흥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의 배경 음악. 나중에 머리가 커서 여러 장르를 골라 듣게 되고, 어릴 때 듣던 음악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짧게 있었어요. 근데 결국 저를 집으로 불러들이는 음악은 항상 정해져 있던 것 같아요. 단 한 곡을 뽑는 건 절대 불가능하고, ‘랜시드’를 포함한 수많은 펑크 밴드들이 생각나네요. 동부에서 자랐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제가 크게 영향을 받은 펑크 밴드들은 전부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요. 동부 쪽 음악은 ‘미스피츠’와 ‘라몬즈’를 많이 들었어요.

검정치마 콘서트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인생 콘서트’라고 꼽더군요.

공연 도중 관객석에 사탕을 던지기도 하고, 몇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컨페티와 고무공을 날리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어요.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 LED 스크린을 좋아하지 않아서 조명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음향도 마찬가지지만, 조명 물량 자체를 체조경기장만큼 많이 들여놔요.

한 앨범 안에서도 노래의 톤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음향, 조명 감독님들 일이 많으시죠.) 무엇보다 검정치마 공연은 그동안 관객들이 거의 모든 곡을 따라 부르는 참여형 공연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많은 곡이 골고루 사랑받고 있는 만큼, 세트리스트가 풍성합니다. 공연에서는 잡담 없이 26~30곡 정도를 매번 부르고요.

“나에게 뭐든 물어봐 틀린 질문도 괜찮아. 알잖아 난 항상 똑같아.”

 

콘서트 공간이 이전에 선보이던 클럽 공연에 비해 스케일이 무척 큰 홀이던데. 다음 콘서트가 있다면 어떤 점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검정치마는 오랫동안 클럽 공연만을 고집했고, 그마저도 자주 하지 않다 보니 올림픽홀도 관객들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공연장 사이즈를 키울수록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아쉬움도 남는데, 그런데도 여기서 규모를 줄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다음 앨범이 망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제가 원하는 것보다는 큰 규모를 유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달라진 점이라면, 위에서 말했듯이 항상 하던 것들의 스케일이 조금 더 커졌을 뿐이에요. 참고로 5월에 장충에서 여섯 회의 추가 공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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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TO BRING YOU HOME’ 콘서트 아트워크도 인상적이에요.

괴물들이 둘러모여 불을 피우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원했어요. 비슷하면서도 각자 다른 그 괴물들은 우리예요. 공연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나이, 성별, 배경에 상관없이 같은 부족이거든요. 이번 포스터는 그림도 잘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도 잘 타는 사촌 동생이 도와줬어요. 덕분에 티셔츠도 처음으로 귀엽게 찍혔어요.

‘청년폭도맹진가’를 마지막으로 한국의 락음악이나 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 본 적은 없다고 이야기 했죠. 요즘 젊은 밴드도 많이 나오고 있고, 이른바 ‘락붐온’이 일고 있어요. 아직도 한국 락 음악에 관심이 없으신가요?

청년폭도맹진가는 대한민국 유일한 펑크 명반이 맞아요. 근데 이제는 듣고 싶은 음악만 듣는다고 해도 여유가 없고, 제 귀에 듣기 좋은 음악도 이미 편협할 정도로 정해져 있어요. 만약 거기에 접점을 둔 밴드를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면, 전 아마 질투와 위기감에 눌려 작업실에 녹아내려 있었겠죠? 어쩌면 초조한 마음에 매달 싱글을 발매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일은 아직 없고, 여전히 그냥 옛날 음악, 미국 음악을 좋아해요. 평소에는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듣고요. 요즘 새로운 밴드들이 많이 생겨나는 건 좋은 현상인데, 스타일이 좀 다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안 그러면 유행이 끝나기도 전에 다 같이 ‘대만 카스테라 엔딩’을 맞이할 거예요.

그렇다면 본인의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은 어떤 곡일지 궁금하네요.

숨어 듣는 명곡이요? 제가 좋아하는 건 대개 뻔한 것들이에요. 운전할 때 듣는 파워팝, 트위팝, 2000년대 초 미국 인디, 아니면 평소 소홀히 했던 고전들. 잘 때 듣는 요가 음악 같은 거. 갈수록 입맛이 정해지는 것처럼, 슬프게도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기쁨은 확실히 줄어들었어요.

올해는 앨범 작업에 매진한다고요? 신보를 재촉하는 팬들을 위해 새 앨범에 관한 힌트가 있나요?

앞으로의 모든 정규 앨범에는 10곡 이상 수록하지 않을 예정이에요. 앨범 간의 텀을 줄이고 싶거든요. 그중 5곡은 확정됐는데, 장르가 들쑥날쑥해서 어느 정도 통일하려고요. 근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바이닐 발매에 대한 팬들의 아쉬움이 커요. 다음 앨범은 넉넉한 수량을 기대해도 될까요?

노력하겠습니다.

<TEAM BABY>부터 <TEEN TROUBLES>까지. 연작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훌륭하게 찍은 작품이라는 호평과 함께 ‘2023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을 수상했어요. 이런 평가를 받으면 부담감이 있진 않나요?

대중음악상이나 평단의 호평은 반가울 뿐, 크게 다가오지 않아요. 아마 다른 아티스트들도 다 비슷할 거예요. 내가 만든 음악을 들어주고, 공연까지 직접 찾아와 주는 사람들의 온도로 사랑을 체감하거든요. 작업에서 느끼는 부담감이라면, 아무래도 밴드가 아니다 보니 앨범을 만들면서 남에게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는 거. 그래서 그만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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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일이라는 개인과 검정치마라는 사이의 간극은 어떤가요? 두 이름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나요?

요즘 들어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외출이 없다시피 할 때도 이곳의 환경이 버겁거든요. 서울이 제겐 너무 빠른 것도 있고요. 앨범을 만드는 것 말고는 취미라든지, 소박하더라도 개인적인 행복을 좇아본 게 너무 오래돼서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어요.

창작 활동이 잘되면 행복하고, 안 되면 불행한 사이클은 항상 반복되는데, 잘 안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죠. 검정치마가 그 사이클을 수백 번 거쳐 만들어낸 예쁜 강아지라면, 조휴일은 산책 한 번 못 나가 본 종자견 같은 걸까요. 어느 순간부터 항상 그런 기분이에요. 특히 이번 <TEEN TROUBLES> 앨범에서 얻은 개인적인 만족이 너무 커서 느끼는 공허함도 크고요. 몇 년 전 유화를 배울 때 그나마 좀 재미있긴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에 대한 정의가 바뀐다고 하셨어요. 현재 조휴일은 음악을 뭐라고 정의하고 싶나요?

제가 그런 말을 한적은 없고요 (적힌 글이 있다면 그건 과거 어느 인터뷰이의 상상이었을거에요), 음악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하는 뮤지션도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소비자가 아닌 창작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굳이 정의한다면, ‘너무 잡고 싶은 나비를 하루 종일 쫓다 보니 익숙한 들판은 안 보이고, 해 질 무렵 숲속 한가운데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 ‘뭔가 잡긴 잡았는데, 이건 나방같이 생겼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예쁜 나비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 ‘근데 그러면 영영 집에 못 돌아간다는 사실도 너무 잘 알아서 절망하는 마음’. ‘까진 무릎보다 나비를 잡을 생각에 심장은 또 뛰고 있는 상태’. 머리를 열어보면 도박 중독자랑 창작자의 전두엽 모양이 비슷할걸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정규앨범 10개를 가지고 싶어요. 오래된 목표고 그 이상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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