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알렉산더 레비 인터뷰: 성취의 끝에서 파멸을 보다
앙팡 리쉬 데프리메를 이끄는 그와 나눈 대담.
헨리 알렉산더 레비 인터뷰: 성취의 끝에서 파멸을 보다
앙팡 리쉬 데프리메를 이끄는 그와 나눈 대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그가 한 말보다 끝내 설명하지 않은 간극을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앙팡 리쉬 데프리메(Enfants Riches Déprimés, ERD)를 이끄는 헨리 알렉산더 레비는 작품에 따로 해설을 붙이지 않는다. 친절한 안내 대신 관객이 작품과 공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이다.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그의 국내 첫 개인전 <FINAL ACHIEVEMENT IS RUIN: 끝에서 보다 성취의 파멸을> 은 회화, 조각, 아상블라주, 대형 설치 작품으로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전시를 관통하는 명확한 콘셉트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무심하게 고개를 저으며 입을 똈다.
“글쎄요, 저는 이 전시가 어떤 하나의 단정적인 ‘메인 콘셉트’로 묶여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기에 놓인 모든 작품들은 거대한 하나의 유기적인 연결체입니다. 평면 회화부터 시작해 조각, 여러 오브제를 조합한 어셈블라주, 그리고 공간을 압도하는 대형 설치 미술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 결과물일 뿐이죠.”
그의 말처럼 전시장 안의 기묘한 긴장감은 일체화되어 흐른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유기체 중에서 유독 그의 마음을 흔들거나 깊은 애착이 남는 ‘최애작’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관객의 몫입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고, 그 안에서 어떤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완전히 보는 사람의 권한이죠. 저에게 있어서 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는… 일종의 ‘제2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태어나 당연히 해야만 하는 본능적인 일인 셈이죠.”
스스로를 예술가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붓을 쥐고 형태를 비틀어내는 삶. 그에게 창작은 고뇌 끝에 개시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날것의 고집은 패션계와 상업 예술계를 향한 그의 시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브랜드와 브랜드가 만나 이슈를 생산하고, 스니커즈 한 켤레에 두 개의 로고를 박아 넣는 협업의 시대. 팬들이 기대할 만한 다음 콜라보레이션이나 이벤트를 묻자, 그는 아주 직설적이고 뼈 있는 한마디를 내던졌다.
“사실 저는 협업이라는 개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그 단어가 너무 남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대의 수많은 협업들은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모두가 남의 세계를 빌려와 자신의 옅은 색을 덮으려 할 때, 그는 오히려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잘라내고 ERD라는 고유하고 뾰족한 세계관을 더 단단하게 조이는 데 전념한다. 불필요한 잡음을 쳐낸 그의 시선은 오직 자신이 구축해야 할 진짜 예술만을 향해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 외에 제가 집중하고 있는 두 가지 메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 온 뉴욕 트라이베카의 ERD 매장 오픈이고, 다른 하나는 오는 10월 5일 파리에서 열릴 다음 런웨이 쇼입니다.”
인터뷰가 마침표를 찍어갈 때쯤, 지금 이 순간 가장 듣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물었다.
“지금 당장이요? 음… 샹그리라스(The Shangri-Las)의 ‘Out In the Streets’가 듣고 싶네요.”
“His heart is out in the streets.” 사랑을 만나 변했던 누군가가 결국 자신이 본래 속해 있던 익숙하고 어두운 거리로 돌아간다는 노랫말. 헨리 알렉산더 레비가 자신의 세계를 다루는 태도 역시 이 절망적이고 아름다운 음악과 꼭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억지로 틀에 맞춰 설명하거나 친절하게 길들이려 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럽고 날것 그대로인 자리에 던져둔다. 그 낯선 거리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어떤 파멸을 목격할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