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양품 한국 CEO 나루카와 타쿠야가 얘기하는 '디자인이란'
홍대에서 강연한 포인트 일곱 가지.
무인양품이 뜻밖의 브랜드와 손잡았다. 바로 국내 액세서리 메이커 로우로우와 특별 강연을 개최한 것. 무지 코리아 대표 나루카와 타쿠야, 로우로우 대표 이의현 그리고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 석재원이 패널 토크를 진행해 소비자, 팬 그리고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루카와는 강연에서 무지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디자인 철학에 관해 이야기했다. 호텔, 슈퍼마켓, 카페를 속속 론칭하며 급기야 지난 2월 말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신촌 매장을 개점한 무인양품. 이들의 제품을 좋아한다면, 아마도 이들이 강연에서 공유한 포인트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상으로부터 디자인한다.
무지는 글로벌 시대가 점점 이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뽐내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현세대. 하지만 무지는 이런 이기적인 사회에서 이타적인 사회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겸허, 솔직, 공조, 인내 그리고 희망이라는 다섯 가지의 요소를 고려해 이것을 기반으로 모든 제품 디자인에 접근한다. 생활용품은 겸허하고 솔직해야 하며, 다른 것들과 공조해야 하며, 소비자에게 인내와 희망을 안겨주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요소의 시각에서 무지의 제품을 바라보면, 왜 디자인이 간결한지 이해할 수 있을지도.
간결한 디자인은 복잡함에서 온다.
많은 이가 무지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기업 내부에서 ‘미니멀 디자인’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필수품에 그저 불필요한 장식을 달지 않을 뿐. 그렇다고 해서 복잡하고 화려한 디자인을 꺼리지도 않는다. 꼭 이유와 기능이 수반되어야만 ‘참 디자인’이 아니다. 본디 디자인은 고대부터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간단한 디자인은 빈곤한 디자인이 아니다. 생필품을 최소화, 간결화함으로써 되려 삶의 질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자유성, 여지를 준다.
무지는 제품의 명확한 용도를 제시하지 않는다. 사용자에 따라 컵을 접시로, 플라스틱 상자를 선반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성을 허용한다. 제품은 유연성이 있어야만 다양한 사람들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다.
관계성을 고려한다.
자유성과 유연성을 갖춘 제품은 어떤 환경에서나 사용될 수 있다. 유저가 기존에 보유한 가구, 제품들과 공존하는 것이다. 또한, 각 제품이 위치할 자리를 고려한다. 예를 들어 벽면에 배치될 냉장고는 직각 선으로, 테이블이나 선반 위에 놓일 전자레인지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한다. 무인양품 역시 이케아처럼 유저의 집이나 공간을 방문해 현장 조사를 하며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쓰는지 관찰한 후에 제작에 임한다.
삶의 기본적인 제품만 제작한다.
무인양품은 일상에 불필요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일례로 와인잔 생산을 논의하던 중, ‘와인잔이 과연 사는 데 꼭 필요한 제품인가’라는 주제 하나로 몇 주 동안이나 내부 논의를 했다고 한다. ‘Muji is enough’라는 모토가 있는데, 이는 무지 제품만으로 생활해도 충분하다는 브랜드의 믿음을 의미한다.
무의식을 디자인한다.
철망 쓰레기통을 상상해보자. 이는 자전거 바구니에서 영감을 얻은 제품이다. 사람들은 급할 때 쓰레기를 무의식적으로 바구니 모양 사물 안에 버린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 행위가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포장을 간략화한다.
포장지를 거추장스럽게 제작하지 않는다. 패키지에 자원을 낭비하기보다는, 가능한 모든 리소스를 제품 자체에 투자한다. 겉만 화려하고 속은 별 것 없는 상품은 앞서 언급한 겸허함과 솔직함의 원칙을 충족시키지 못해서다. 그래서 무지의 모든 포장지는 표백하지 않은 원색 상태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