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입비스트 편집부 추천, 2023 ‘베스트 오브 베스트’ 9

길고도 짧은 한 해였다. 수많은 것들이 출시됐고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다가오는 연말을 맞이해, 그중 <하입비스트> 편집부가 올해 가장 돋보인 물건, 인물들, 작품 등을 선정했다. 아홉 개 카테고리별로 하나씩, <하입비스트>의 시선으로 엄선한 2023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선정 리스트를 공개한다.

올해의 브랜드 – 헬무트 랭

@doxpeter

헬무트 랭은 론칭 이후 2005년부터 사내 디자인팀이 브랜드를 이끌었다. 그러다 올해 헬무트 랭은 피터 도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했고, 이 선택은 다가올 브랜드의 방향성과 분위기를 바꿀 ‘세기의 초이스’라 부를 만하다. 셀린 아뜰리에에서 피비 파일로와 함께 시간을 보낸 피터 도는 뉴욕에서 열린 담백한 2024 봄, 여름 컬렉션으로 헬무트 랭에서의 첫선을 보였고, 해당 컬렉션은 그의 이름을 앞세운 ‘피터 도’의 컬렉션이나 셀린에서의 과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헬무트 랭과 마치 하나가 된 듯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앞으로 그가 선보일 컬렉션들도 기대가 된다.

올해의 앨범 – JPEGMAFIA & Danny Brown <SCARING THE HOES>

Jpegmafia/Danny Brown

올해 메이저 랩 음악의 음원 수익은 40% 감소했고, 트래비스 스콧을 제외하곤 ‘빌보드 200’ 차트에는 누구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메이저 랩 음악 신에 소속되지 못한 제이펙마피아, 대니 브라운은 앨범 <SCARING THE HOES>로 이 상황을 비웃는다. 제이펙마피아는 어디서도 틀지 못할 비트를 만들고, 대니 브라운은 돈을 벌어오라는 회사 경영진을 랩으로 흉내 낸다. 레이블의 도움 없이 발매돼 샘플 클리어의 과정이 없었다. ‘돈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가 힙합의 오랜 격언이라지만, 이들처럼 ‘재미’에 초점을 두는 것도 좋겠다.

올해의 영화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Studio Ghibli

또다시 은퇴를 번복한 80대 예술가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제작 기간은 7년, 그간 약 4백57억 원(51.5억 엔)이라는 일본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액이 사용됐다. 어떤 외압도 없이 그가 고안한 이야기와 그림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는 소식은 더욱 기대감을 높였다. 내용 전개가 불친절하다는 리뷰가 뒤따르기도 했지만, 그의 전작을 섭렵한 관객이라면 소년, 엄마, 할머니, 출산, 전쟁, 불과 물 등의 소재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을 터. 마침내 미야자키 하야오 예술 세계의 집대성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 나왔다.

올해의 신발 – 코르테즈 x 나이키 에어 맥스 95 ‘에게해 스톰’

Nike

본진인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스트리트 웨어 신에서 매우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 코르테즈와 나이키의 협업 모델이다. 많은 브랜드나 아티스트가 나이키 에어 포스 1, 에어 조던 1 등 지명도가 높은 모델과 협업을 진행하곤 하지만, 코르테즈는 그보다 인기가 낮은 나이키 에어 맥스 95와의 협업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이었다. 발매 방식마저도 독특했다. 일반적 래플 대신 전광판에 좌표를 공개해 해당 좌표의 장소에서 신발을 구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신발을 향해 달려갔고, 래플 현장에서는 다툼이 일기도 했다. 여러모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스니커였다.

올해의 차 – 테슬라 사이버트럭

Tesla

일론 머스크의 공상은 현실이 됐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이 공개 4년 만에 드디어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사이버트럭은 유별나다. 외관은 스페이스X의 로켓에 사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됐으며, 휠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직선 실루엣을 띤다. 생화학무기 방어 모드, 텐트로 변형할 수 있는 트렁크, 유사시 주택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기능은 덤. 본격적인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지만, 사이버트럭은 앞으로도 꾸준히 화제를 불러 모을 것만 같다. 지난 4년간 그랬듯이.

올해의 전자 기기 – DJI 오즈모 포켓 3

Dji

모두가 영상 크리에이터가 된 시대, DJI 오즈모 포켓 3은 1인 크리에이터를 겨냥한 카메라 중 최상급의 완성도를 갖췄다. 1인치 센서를 사용해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수준의 화질을 선사하며, 짐벌 일체형이라 안정감 또한 확실하다. 무엇보다 인물 자동 추적기능이 눈에 띌 정도로 향상되어 기존 카메라 사용 시 혼자서는 불가능하던 연출을 구현할 수 있다. 소셜 플랫폼에 맞게 세로 촬영 모드도 지원한다. 전부 원래 없던 기능은 아니지만, 이렇게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완성도로 출시된 1인 크리에이터용 카메라는 처음이다.

올해의 전시 – 화이트 큐브 서울 개관전 ‘영혼의 형상’

White Cube Seoul

9월 5일 서울에 상륙한 화이트 큐브 갤러리. 이들은 가장 빠른 미술의 흐름을 보여줄 곳으로 서촌 일대가 아닌 도산대로를 택했다. 전시 ‘영혼의 형상(The Embodied Spirit)’은 화이트 큐브의 글로벌 아티스틱 디렉터 수잔 메이가 기획했고, 루이스 지오바넬리, 크리스틴 아이 추, 트레이시 에민, 버린드 드 브랙커, 카타리나 프리치, 마르게리트 위모, 이진주의 작품을 함께 공개한 단체전이다. 각국의 명망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개관전으로서 과감하게 모아 ‘영혼의 형상’이라는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내보이는 점, 더불어 회화와 조각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작품들이 화이트 큐브라는 갤러리명처럼 구조가 단순하고 매끈한 공간에서 상호 교감하는 듯한 구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화이트 큐브 서울의 첫 출발을 알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전시였다.

올해의 스포츠 팀 –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Glenn James/Getty Images

대형 루키 빅터 웸반야마에 온 관심이 쏠리는 지금, 팀으로서 NBA의 새 시대를 알리는 구단들도 있다. 그중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이하 OKC)는 셰이 길저스 알렉산더(이하 SGA)라는 슈퍼스타, 24세의 평균 연령, 수많은 드래프트 픽 등 특히 미래가 밝다. 여기까지가 사실 기반의 근거라면, 그들의 농구엔 좀 더 특별한 점이 있다. 웸반야마와 일생의 라이벌리를 형성할, 하지만 그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한 쳇 홈그렌, 유망주였음에도 트레이드로 팀을 옮겨온 SGA, 헌신적 언드래프티 루겐츠 도트 등의 존재다. 애초에 스몰 마켓을 연고지로 둔 데다, 이런 ‘언더독’ 성향의 선수들이 이 팀을 더욱 끈끈하게 보이도록 한다. 12월 7일 현재 서부 2위. 견고한 팀으로서의 결실이다.

올해의 게임 – <발더스 게이트 3>

Larian Studios

전작 공개 19년 만에 출시된 D&D 세계관 클래식 RPG 게임의 왕, <빌더스 게이트 3>. 2023년 <메타크리틱>, <오픈크리틱>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기도 했다. 게임 개발자는 총 플레이 시간을 약 1백 시간으로 추산했지만, 그건 게임 내 스토리를 진행했을 때의 경우다. 이 게임에서는 넓은 세계와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가도, 무자비한 강도도, 술집을 떠도는 도박꾼도 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대화의 모든 상호작용에 관여하며 이에 기반해 자신과 주변의 운명이 바뀐다. 요즘 시대에 드문 웰 메이드 PC 콘솔 게임. 최근 정식 한글화가 진행됐고, 무엇보다 오랜 기다림이라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