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 신의 살아있는 전설 에릭 헤이즈 인터뷰

과거의 흔적과 미래를 볼 수 있는 전시.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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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 신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에릭 헤이즈의 회고전 ‘RE·HAZE’가 6월 3일까지 시부야 파르코의 ‘파르코 뮤지엄 도쿄’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헤이즈’의 일본 진출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RE·HAZE’는 에릭 헤이즈가 걸어온 발자취를 총망라한 전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피티 그룹 ‘소울 아티스트’의 멤버로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와 함께 퍼블릭 에너미, 비스티 보이즈, EPMD 등의 로고와 앨범 재킷을 제작했던 1980년대, 스트리트웨어의 원조로 꼽히는 브랜드 ‘헤이즈’가 탄생된 1990년대, 나이키, 스투시, 사카이 등 유명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채워진 2000년대까지 그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된 방대한 양의 전시 자료 대다수를 에릭 헤이즈가 직접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는 지금은 없어진 시부야의 클럽 ‘케이브’에서 열린 이벤트의 포스터도 있었는데, 사카모토 류이치, 후지와라 히로시, 고이즈미 쿄코 등 익히 알려진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2022년에 개최된 대규모 개인전 ‘Inside Out’을 통해 선보인 회화와 드로잉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신작을 포함해 타쿠 오바타, 야마하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하입비스트>는 전시 개막에 앞서 에릭 헤이즈를 만나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미 추, 사카이와의 콜라보레이션, 제이피 더 웨이비의 로고 디자인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최근 활동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그리고 최근 활동이 과거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들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거의 반세기 동안 예술, 패션, 그래피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왔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예술과 패션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최근 5~10년 사이 하나의 문화 안에 하나의 스타일로 통합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0년 전 캘리포니아에 살 때, 브랜드와 일 보다는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지냈다. 그 시간들을 겪으면서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게 됐고, 결혼도 하게 됐다. 그리고 ‘헤이즈’라는 브랜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현재의 매니저인 제이가 합류하게 됐고, 이후 10년 동안 ‘헤이즈’가 단순한 힙합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브랜딩 해왔다. 이는 나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내가 단순한 디자이너 혹은 힙합 아티스트만이 아니라 전방위적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패션 역시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변화를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몇 년은 버질 아블로의 시대였다. 그의 등장으로 그간 컨템포러리 디자이너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접근 방식들이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고, 나를 포함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방식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미 추 프로젝트는 패션 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작업이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나를 깰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헤이즈’가 디자인으로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예술로 이야기하는 브랜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헤이즈’라는 브랜드가 더 확장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고, 미국 올림픽 대표팀과 NBA 브루클린 네츠의 유니폼을 제작할 수 있었다. 브랜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정말이지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렇다. 이제는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도 자연스러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브랜드를 시작하게 되면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밀고만 나간다.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지난 10년을 보내면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러면서 일이 더 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더 재미있어졌다. 열정도 자연스럽게 돌아왔다. 야마하 바이크 전시 때, 10년 전이었다면 아마도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했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긴장을 풀자 앞으로 펼쳐질 일이 기대됐고, 어느 때보다 더 나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올해로 62세가 됐다. 드디어 내 스타일과 정체성에 익숙해지고 편해진 느낌이 든다. 최근 활동들을 통해 느낀 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단계에서 마침내 벗어났다는 거다. 예술이든, 브랜딩이든, 콜라보레이션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나 자신, 그리고 파트너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한다는 얘기다. 의도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들은 마감 기한을 두지 않고 작업하고 있다. 물론 콜라보레이션의 경우 마감일이 있고, 그 일정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파트너를 존중하는 방식이다.

‘RE·HAZE’는 나와 ‘헤이즈’뿐만 아니라 문화의 역사가 담긴 전시다. 하라주쿠 스트리트웨어, 힙합, 전설적인 콜라보레이터와 그들의 브랜드들, 그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을 거다.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는 모두 어렸다.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이제는 늙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로 일본 진출 30주년이 되었다. 일본의 패션과 문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있나?

패션 신에서 일본은 중요한 존재다. 스트리트 신에서는 더욱 그렇다.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스트리트웨어를 다루는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10개 정도 밖에 없었는데, 그 당시 일본은 이미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의 브랜드들이 일본에서 주목을 받으며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해외 브랜드들에게 일본 시장은 브랜드를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게 만드는 일종의 거울 같은 존재다.

사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포스터 속의 이벤트는 타카기 칸이 주최했던 DJ 파티로 기억한다. 그때 처음 도쿄를 방문했었다. 시부야의 클럽 케이브에서 열린 큰 행사였고, 많은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에릭 헤이즈 웰컴 파티’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그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의 시작은 특별하고 대단했다.

그때 만난 아티스트 중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있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대부분 연락하며 지낸다. 후지와라 히로시, 타키자와 신스케, 니시야마 도루와도 연락하고 있고, 타카기 칸은 이번 전시에서 디제잉을 맡아줬다. 내가 존경하는 친구들이다. 무엇보다 비즈 인터내셔널에 이번 전시를 비롯해 오랫동안 신세를 지고 있다. 비즈 인터내셔널과의 인연은 오래 전, 내가 가게를 오픈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내가 LA에 살 때 엑스라지의 첫 제작자가 우리 동네에 살았고, 첫 스토어가 두 블록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엑스라지는 내가 만든 제품을 가장 먼저 선택해준 스토어였다. 그리고 지금도 변함없이 ‘헤이즈’를 지지해주고 있다. 미나가와 신이치로 회장은 내가 패션 신에서 벗어나 그림 작업에 몰두해 있을 때 흔쾌히 컬렉터가 되어 주었고, 그렇게 나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비즈니스 관계를 떠나 진정한 친구, 가족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년 동안 나를 응원해준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하는 모임 같다.

지금까지 많은 전시를 해왔다. 그간의 전시들과 이번 전시는 어떻게 다른가?

우선 이 정도 규모의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5년 메이지도리에서 열린 개인전은 작은 규모의 아카이브 컬렉션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퀄리티, 스케일, 내용 등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됐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일이었다는 거다. 전시 오프닝을 마친 뒤 정말로 유례없는 일을 해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

전부 다 그렇다(웃음).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콜라보레이션 제품과 한정판 제품, 작품들은 우리 팀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회화 작품과 과거의 자료들, 바이크에 새겨진 드로잉을 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를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 말에 동의한다. 나는 ‘아카이브 마스터’라고 불릴 정도로 과거의 것들을 소중히 보관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고 좋은 기회를 찾고 싶다. 아직 해보지 못한 일들을 너무 많다. 그런 의미로 이번 전시는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자리이자 미래를 제시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가이자 조각가인 타쿠 오바타와 콜라보레이션한 조각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를 콜라보레이터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타쿠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예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히 그도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다른 세대, 다른 나라의 두 작가가 만났을 때 새로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예술, 새로운 의미가 탄생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하로시와의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는 그래피티 문화가 젊은 세대로 이어져 내려와 거리와 패션, 문화로 퍼져 나가고 있다. 미국은 어떤가?

15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Art in the Streets’는 그래피티 신에 큰 영향을 미친 전시였다. 그래피티가 대중들에게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된 자리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피티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 그래피티가 새로운 문화로 떠올랐고, 최근 10년 동안 그래피티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에어로졸(스프레이 캔) 아티스트들이 생겨났다. 나는 더 이상 에어로졸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입장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스프레이케이션(스프레이와 커뮤니케이션을 결합한 말)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피티는 지난 50년 동안 미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힙합 문화다. 처음에는 단순한 트렌드라고 생각했던 것이 결국 뿌리를 내렸고, 지금은 만국 공통어처럼 하나의 문화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 아이템에 그래피티를 적용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그래피티가 티셔츠에 입혀지면 ‘패션’이기보다는 ‘예술’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이즈’의 아이템들은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세련된 느낌이 든다. 디자인을 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그렇게 생각해주니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웃음) 브랜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 티셔츠에 그래피티 태그를 로고로 넣은 것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패션의 언어는 더욱 정교해 졌고, 복잡해 졌다. 그렇기에 30년 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건 지루함만 남기기 마련이다. 많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새롭고 다른 일, 해보지 못한 일을 할 때 동기 부여가 되는 편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고, 믿음이 있으며, 진정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된다.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해 나갈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헤이즈’라는 브랜드의 철학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을 직접 찾는 것, 그것이 앞으로 30년 동안 내가 가져가고 싶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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