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라다에 과연 라프 시몬스가 필요할까?
프라다 그룹 최초로 가문 외 디자이너가 총괄을 맡는다.
라프 시몬스와 프라다 그룹이 손을 잡는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 많은 사람이 라프 시몬스의 손끝에서 미우 미우 남성복 라인이 부활하는 걸 기대했을 듯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다만, 미우미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아닌 프라다 그룹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다. 이로서 라프 시몬스는 브랜드를 이끄는 프라다 가문 외 첫 번째 디자이너가 됐다. 라프 시몬스가 캘빈클라인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매출 부진이라는 이유로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만큼, 프라다의 제안은 라프 시몬스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프라다 그룹이 라프 시몬스를 영입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도대체 프라다 그룹이 라프 시몬스를 영입하며 얻는 것이 무엇일까?
PVH의 CEO 에마누엘 치리코는 라프 시몬스가 전개한 ‘205W39NYC’ 라인과 새로운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 스타일이 기존 캘빈 클라인 소비층에게는 너무 비싸고 지나치게 진취적이라며 브랜드의 핵심 소비자를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현실이 됐다. 2018년 3분기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캘빈클라인의 수입은 라프 시몬스가 브랜드 디자인 개편과 창조성 증진, 마케팅 지출을 위해 약 1천만 달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1억4천2백만 달러에서 1억2천1백만 달러로 감소했다.
아마도 라프 시몬스의 이름값은 캘빈 클라인보다는 프라다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 더 걸맞을 듯하다. 최근 프라다는 리니아로사 라인 재런칭, 24시간 한정 판매 캡슐 컬렉션 발매, 푸샤 티, 칸예 웨스트, 제프 골드블럼 등 공인된 패션 아이콘들이 선호할 만한 그래픽 아이템 제작 등 어리고 부유한 고객층을 겨냥한 제품을 계속 선보였다. 프라다는 2019년 후반기에는 아디다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스탁엑스를 통해 한정판 아디다스 슈퍼스타 스니커와 볼링백을 발매했다. 이런 경향을 보았을 때, 라프 시몬스를 영입한 건 프라다가 남성 스트리트웨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계획 중 하나로 보인다.
라프 시몬스와 그의 브랜드는 예술적 가치에 있어 스트리트웨어 시장이나 동시대의 취향과 결을 같이한 적이 없다. 그는 포스트 펑크 문화부터 교복까지 ‘유스 컬처’ 문화 전반을 다루며 그 창조적인 정체성을 본질적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스털링 루비와 피터 사빌 등과의 협업 그래픽 제품과 아디다스 스니커 등은 칸예 웨스트나 에이셉 라키와 같은 유명 인사가 입으며 라프 시몬스의 영향력과 이름값을 단단히 굳혔다. 디자인에 대한 라프 시몬스의 진중한 태도는 스트리트웨어 소비자들이 암묵적으로 느끼는 ‘멋진 것’과 닮아있으며, 이는 그의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프라다는 이미 유일무이한 이미지와 영향력 강한 이들이 입는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멋진 것’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라프 시몬스는 프라다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더해줄 수 있다. 통계적으로 패션 시장에서 젊은 남성층은 최근 성장세를 보이는, 주목해야 할 소비층이다. 그리고 라프 시몬스의 존재는 젊은 남성들이 프라다의 가방과 나일론 액세서리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프라다는 이미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단지 약간의 어필 요소가 필요할 뿐이다.
라프 시몬스의 노력은 캘빈클라인의 매출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2018년 봄, 여름 컬렉션의 카우보이, 2019년 봄, 여름 205W39NYC 컬렉션의 동물 프린트 등에서 녹아있는 라프 시몬스의 감각은 캘빈클라인의 디자인 요소를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다. 2017년, 라프 시몬스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캘빈 클라인의 남성복 라인은 기존 옷을 해체하고, 날카로운 외관으로 다시 재단하며 캘빈클라인을 GmbH나 나마체코와 같은 젊고 진취적인 브랜드로 전환했다. 켈빈클라인의 판매 부진은 아마도 브랜드의 주요 구매층이 명품 시장보다는 속옷과 데님 팬츠 등에 익숙한 점에 기인한다. 혹은 라프 시몬스가 만들고 싶던 캘빈클라인의 이미지가 브랜드의 일반적인 고객에게는 위협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라다의 고객들은 고가의 가격과 라프 시몬스의 진취적인 감각, 새로운 옷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프라다는 남성복 메인라인을 런칭한 1993년 이후로 트리밍, 장난스러운 아트워크에서 영향받은 그래픽과 화려한 억양이라는 성공 공식을 대체로 벗어나지 않는다. 프라다는 시즌마다 블레이저, 봄버, 무난한 스웨터와 테크니컬한 텍스쳐를 포함한 제품을 출시한다. 그런데도 이 공식이 계속 성공하는 마법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문화적 인식과 패션 역사를 향한 깊은 사랑에서 기인한다. 프라다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다. 그들이 트렌드를 직접 만든다.
프라다의 남성복 라인과 라프 시몬스의 디자인 정신은 많은 게 닮아있다. 하지만 두 브랜드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최근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컬렉션을 떠올려본다면, 두 브랜드는 모두 각자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택했다. 프라다가 기존의 성공 공식을 따랐다면, 라프 시몬스는 새로운 러너 신발 라인과 함께 기존 신발의 모양에 도전하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러나 두 브랜드의 컬렉션은 모양 그 이상으로 예상치 못한 모피 트림과 깨끗한 라인, 패턴이 있는 니트 그리고 플레어로 연출한 드라마틱한 무대 등, 여러 독특한 특징을 공유한다. 물론, 누가 누군가를 모방했단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가 굉장히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단 뜻에 가깝다.
2018년 리포트에 따르면 프라다는 약 34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만큼,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계적인 팬덤과 훌륭한 명성을 가진 라프 시몬스의 합류는 은퇴 루머를 꾸준히 반박하고 있는 70세의 미우치아 프라다에게는 좋은 소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치 버질 아블로가 루이 비통과 킴 존스의 디올에게 했던 것처럼, 라프 시몬스는 지난 100년간 꾸준히 존중받고 많은 곳에 영향을 끼쳤으며, 재정적으로도 안정적인 프라다 그룹에 새로운 관점과 젊은 팬층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