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부터 닌텐도 게임보이까지, 레트로 가젯 편집숍 ‘레몬’ 쇼룸 방문기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라지카세’ 마니아들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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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조선시대부터 수백 년 동안 도읍 노릇을 해오고 있는 도시, 서울. 언젠가부터 불어온 레트로 열풍 때문일까? 서울에는 점차 시대를 가늠하기 힘든 독특한 풍경이 곳곳에 세어 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을지로에서 북촌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고개를 돌리 때마다 시대가 휙휙 바뀌는 듯한 감흥을 선사하는데, 그곳에는 오래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존재들을 품고 있는 공간이 있다. 바로 레트로 가젯 편집숍 ‘레몬’이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레몬은 문을 연지 이제 갓 1년을 넘긴 가게이지만, 빈티지 마니아들에게는 물론 뮤지션, 디자이너 등 많은 아티스트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퍼진 곳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는 윤종후, 김보라 부부. 레트로 게임 마니아인 윤종후 대표는 디자이너 시절, 해외 출장을 오가며 빈티지 가젯을 하나둘 사모아 사무실에 놓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둘 공간조차 없어지자 회사 문을 닫아버리고 그 공간을 그대로 레몬 쇼룸으로 사용하게 됐다. 2019년 여름의 일이다. 그리고 이번 2020년 7월, 창덕궁 건너편의 가든타워 12층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새하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오른켠에 보이는 것은 바로 파치 슬롯. 선명한 화면과 함께 머신 곳곳에 쓰여있는 히라가나를 보고 있자니, 일본 파칭코 가게에 들어선 듯 하다. 그 건너편에는 데크형 LP 플레이어가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벽면에 걸린 포스터들은 모두 판매하는 것들이지만 단 하나, 새 쇼룸의 오픈 첫날 레몬의 오랜 단골인 가수이자 화가로 활동하는 나얼이 선물한 포스터만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속이 탁 트이는 듯 큼직한 창문 앞에 서면 바쁘게 지나다니는 자동차 행렬과 함께 그 옆을 무심코 지키고 있는 듯한 창덕궁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보라 대표는 “시대가 교차하는 듯한 장면을 보면서 청음 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라고 설명을 더했다. 매장에서는 카세트테이프들도 판매 중인데, 한글로 ‘쳇 베이커’, ‘메탈리카’, ‘나카시마 미카’라고 적혀있어 괜시리 더 멋스럽게 느껴진다.

쇼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브라운관과 레트로 가젯들. 레몬의 셀렉 기준은 간단하다. 보자마자 호기심이 들 것, 그리고 저만의 독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디자인일 것. 브라운관은 주로 4:3 비율의 빈티지 제품이 많은데, 실제로 화면에서는 <은하철도 999>와 같은 재패니메이션이 재생되고 있다. 스크린은 물론, 스피커 역시 출시 당시와 동일하게 작동된다. 레몬 쇼룸의 모든 아이템들은 전부 사전 수리를 거쳐 작동 여부 및 컨디션 체크 후에만 쇼룸에 오른다. 2주간의 품질 보증 기간 이후에도 수리 및 유상 부품 교체가 가능하다고 하니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다.

매장 벽 한편에는 쇼와, 헤이세이 시절의 라디오카세트가 진열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흔히 ‘붐박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게토 블래스터는 레몬 쇼룸에서도 가장 고가를 자랑하는 제품군이다. 게토 블래스터의 경우, 재생하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느껴지는 질감이 전혀 다른데, 레몬 쇼룸에서는 청음을 통해 그 질감의 차이를 체감하고 비교한 후에 기기를 구입할 수 있다. 불편함을 고수하더도 레몬이 예약제 운영을 고집하는 이유다.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매우 희귀한 아이템도 만날 수 있다. 천장 가까이 전시되어 있는 선반이 달린 로봇은 1980년대 중반, 토미사에서 출시했던 로봇으로 실제 리모컨을 통해 움직이며, 카세트 플레어가 내장됐다. 참고로 해당 로보트는 일본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나서던 것으로 레몬에서도 최고가를 자랑한다.

유리장 안에는 20대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워크맨과 카시오 빈티지 시계를 비롯해, 닌텐도 게임보이, 녹음을 위한 공테이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레몬을 찾는 이들의 연령층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편. 하지만 같은 아이템을 두고도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고 한다. 김보라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10대 친구들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런 게 있었구나’ 한다면, 30대 분들은 ‘예전에 좋아하던 남자친구가 줬던 테이프인데’ 하고 감상에 젖기도 하고, 40대 분들은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말이야’ 하면서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고.

아득한 시간 여행에서 돌아오는 심정으로 쇼룸을 나서며, 앞으로 레몬이 사람들에게 어떤 가게가 됐으면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김보라, 윤종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같은 물건, 같은 음악, 같은 풍경이더라도 누가 보고 만지느냐에 따라 느끼게 될 감정도 다르잖아요.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친구이자 길잡이 같은 존재가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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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서울 종로구 율곡로 84 가든타워 1204호
*매장 방문은 1시간 당 1팀,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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