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해외에서 더욱 열광하는 이유는?
해외 매체들이 분석한 성공 요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9월 17일 공개 이후 일주일 만에 글로벌 인기 순위 1위에 올랐고, 10월 1일에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되고 있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작품에서 서바이벌 게임으로 활용되는 한국의 전통 어린이 놀이가 SNS를 통해 유행하고, 등장 인물들이 착용하는 코스튬들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작품으로 연기 데뷔를 한 정호연의 인스타그램은 작품 공개 이후 순식간에 팔로워가 1천3백만 명이 늘었고, 프랑스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체험 이벤트에서는 길다란 행렬 끝에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조차 하지 못해 폭동을 일으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넷플릭스 CEO가 직접 나서 “역대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정작 <오징어 게임>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국내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작품의 설정이 <헝거게임>, <배틀로얄>, <신이 말하는 대로> 등 기존 데스 게임 장르 작품들과 유사하다는 점, 인물 설정과 소위 ‘신파’라 일컬어지는 각 인물의 드라마 요소가 진부하다는 점 등이 거론되곤 했다. 그동안 다수의 국내 드라마에 장르와 무관한 감동 요소가 더해지기 일쑤였던 만큼 국내 시청자들에게 쌓인 피로감이나 거부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인기 순위에서 알 수 있듯 해외에서는 대중들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로튼 토마토> 지수 94%를 기록할 정도로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이 <오징어 게임>에서 캐치한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기존 데스 게임과의 차별성, ‘리얼리티’
나라와 매체, 평론가의 성격에 따라 접근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모든 곳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일단 대부분의 매체들은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기존 데스 게임 장르의 작품들이 연상된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황동혁 감독도 <배틀로얄>,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만큼 장르적 유사성은 누구나 감지했을 것이다. <CNN>은 <모스트 덴저러스 게임>, <더 헌트> 등 다른 작품들의 이름을 열거했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도 <헝거게임>, <아리스 인 보더랜드>, <신이 말하는 대로> 등 할리우드와 일본의 데스 게임 대표작들을 언급했다. <인디펜던트>는 아예 <아리스 인 보더랜드>와의 비교를 중점으로 <오징어 게임>을 소개했다.
하지만 대부분 매체는 이러한 기존 작품들과 <오징어 게임>의 유사점이 아니라 차이점에 주목했다. <NME>는 <헝거게임>이나 <배틀로얄>이 전체주의 정부나 가상의 기관이 존재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통해 비현실적 데스 게임의 존재에 설득력을 준 데에 비해, <오징어 게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짚었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불평등과 부당으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임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의 배경은 현대 서울이다. 사업에 실패한 기훈, 임금 체불에 시달린 외국인 노동자 알리, 탈북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 새벽부터 투자에 실패한 상우까지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충분히 있음 직하다. <BBC> 또한 이러한 지독한 현실성이 기존 데스 게임들과 다른 무게감과 공감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기생충>? 사회 문제 반영
더 나아가 이러한 ‘리얼리티’를 통해 현실 사회 구조 문제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담아냈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극 중 게임 참가자들은 자의로 게임에 참가한다. 심지어 중간에 탈출할 기회를 제공받지만, 돈에 목이 조이는 현실 사회의 또 다른 데스 게임을 체험한 이들은 다시 ‘오징어 게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현장의 모든 게임은 철저한 ‘공정성’을 담보로 진행된다. <NME>는 이처럼 일련의 선택 아닌 선택, 공정 아닌 공정이 그려지는 모습을 ‘이미 조작된 시스템 안에서 자유 의지나 공정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꼬집는 장면’으로 해석한다. 한편, <포브스>는 등장 인물들의 배신과 연합, 게임의 전개 뒤에 가려진 정체를 알 수 없는 권력자의 존재에 주목한다. 이 모든 게임이 결국 자본과 권력을 쥔 자들이 가난한 이들의 절망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메타포라고 해석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더 가디언>은 이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부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계급 분열과 유혈 결말을 지니고 있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르몽드>도 마찬가지로 <기생충>을 언급하며 <오징어 게임>이 빈부 격차를 바라보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타임> 또한 블랙 유머와 계급 풍자, 폭력의 묘사 등 여러 부분에서 이 작품과 <설국열차>, <기생충>과의 유사성을 이야기한다.
몰입감 있는 연출과 ‘신파’
물론 이러한 사회 풍자 및 현실 비판적 성격만으로 사회 현상적인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본분은 바로 ‘재미’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모든 매체에서 입을 모아 말하는 <오징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몰입감’이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오징어 게임>이 대표적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인 <킹덤>이나 <스위트홈>보다도 더욱 한국 드라마의 틀을 공격적으로 파괴한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이 번뜩이는 이야기의 구성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청자들이 설사 결말을 예상한다 하더라도,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전개와 클라이막스를 촘촘하게 짜 놓았기에 보는 내내 몰입감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NME>도 전개의 의외성 그리고 단순하지만 치밀한 게임의 규칙 등이 높은 긴장감과 흥미를 끌어내도록 설계됐다는 평가를 했고, <타임>도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이 작품의 가장 기본적인 매력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디사이더>에서도 탄탄한 내러티브와 스토리를 작품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미 여러 기사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듯,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익숙한 현실적 캐릭터 설정과 ‘신파’적 감동 요소들이 데스 게임이라는 장르에 적용된 점이 해외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도 사실이다. <슬레이트>는 <오징어 게임>이 감정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서바이벌 장르물과의 차별화된다고 이야기했고, <르몽드>는 서바이벌 게임 자체와 직접적 관련이 없더라도 각각의 인물의 배경을 그린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끌어올린 것이 전통적인 장르 접근 방식과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적인(이국적인) 요소들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숨막히는 몰입감을 선사한 데는 황동혁 감독의 치밀한 연출과 출연진들의 높은 연기력, 정재일 음악 감독의 OST도 모두 큰 역할을 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또한 정재일의 음악과 이정재, 정호연 등 배우들의 연기력이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주요한 요소였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러한 몰입 안에 계속해 신선한 호기심을 더한 것이 바로 ‘한국적인’, 해외 시청자들 기준에서는 ‘이국적인’ 요소들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할 여러 가지 전통 놀이들이 다수의 매체에서 신선함의 요소로 언급됐다. 각각의 놀이들은 이국적인 특색과 원초적인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했고, 아이들의 놀이로 어른들의 생존 싸움을 전개시키는 아이러니한 감각을 제공하는 등 복합적인 효과를 낳았다. <NME>는 <오징어 게임>이 ‘순수한 어린이 놀이가 성인들의 생존 방식’이라는 설정을 지닌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라고 평했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와 음악 등 여러 대중 문화 영역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사랑을 받는 것은 이제 마냥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그 콘텐츠들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방식과 해외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때로 크게 다르다. 그러한 방식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한국 콘텐츠에 대해 무조건적인 긍정 혹은 부정의 태도를 취하기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과 관점을 접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보다 풍부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