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인터뷰: 뉴진스 ‘ETA’ MV를 아이폰으로 찍은 이유

MV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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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1일 뉴진스의 MV ‘ETA’가 공개됐다. MV는 “아이폰 14 프로로 찍다”라는 문구로 시작해 페이스타임으로 이어지고, 뉴진스 멤버들이 아이폰으로 바람을 피우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촬영하는 등 많은 부분이 애플 아이폰과 연관돼 있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아이폰으로 촬영한 비하인드 광고 또한 많은 화제가 됐다.

‘ETA’의 유튜브 설명란에는 뉴진스의 팀명과 곡 제목 아래에 ‘프로듀서: 민희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민희진은 2021년 11월 12일 자신의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했고, 어도어의 첫 그룹 뉴진스를 공개했다. 그리고 뉴진스는 데뷔 약 1년 만에 케이팝 4세대 걸그룹 대표 주자가 됐다. 그 바탕에는 민희진의 빈틈 없는 프로듀싱이 자리 잡고 있다.

애플과의 협업이 공개됐을 때 ‘OMG’ MV에서 하니가 “나는 아이폰이었습니다”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어요. 그때부터 협업을 준비하고 있던 건가요?

‘OMG’ 때부터 준비되었던 것은 아니에요. 애플과의 첫 미팅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OMG’ MV 공개 직후, MV를 본 애플 미국 본사에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애플에선 이미 2022년 뉴진스의 데뷔 초기부터 협업 의사가 있었다고 해요. 그러던 중에 ‘OMG’ MV가 촉매 역할을 한 거였죠. 사실 애플의 첫 제안은 아이폰의 액션 모드 기능을 강조한 안무 MV 제작이었어요. 저는 제안을 듣고 안무로 풀기보다 MV 본편을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것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애플에 재제안을 하게 됐죠. 단순히 안무를 강조하는 촬영을 하기보다, 아이폰으로 촬영하는 의미를 살려 활용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어요. 애플에도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었어요. 유례 없는 사안이었지만, 애플에서도 매우 흥미로워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여러 곡 중 왜 ‘ETA’를 아이폰으로 촬영하겠다고 결정했나요?

아이폰 촬영에 ‘ETA’라는 곡을 매칭한 건 프로듀서로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Super Shy’는 플래시몹 댄스로 구성되어 카메라 무빙이 강조되기 어렵고 ‘Cool With You’는 분위기를 강조한 곡인데 반해 ‘ETA’는 템포가 빠른 강렬한 비트의 곡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ETA’의 안무는 최초 구상 단계부터 아이폰으로 촬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아이폰으로 MV를 찍는 건 말 그대로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도전에는 재미와 어려움이 동시에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새로운 도전엔 서로 신뢰하는 협업자들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제 의도나 목표를 정확히 이해하고 과감한 도전에 뛰어들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인물로 고민 없이 신우석 감독님이 떠올랐어요. 주어진 컨디션과 예산을 지키며 아이폰의 기능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역량에 감사합니다. 또 협업 과정 내내 하나의 같은 팀으로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를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주신 애플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르 마이런 부사장님과 마케팅팀의 김세진 님, 그리고 애플에서도 유례없던 일로 알고 있는데 MV 엔딩에 애플 로고를 넣는 것을 컨펌하신 CEO, 팀 쿡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Super Shy’는 맑은 날씨에서 쾌활하고 밝은 분위기를 전달하고, ‘Cool With You’는 드라마타이즈를 통해 배우와 시나리오 중심으로 곡의 분위기와 정서를 전달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ETA’는 사람들에게 곡의 감성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려 했나요?

현대 사회에서 핸드폰이 갖는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모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일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죠. 안무 MV가 아닌 본편의 MV로 제작한 건 단순히 ‘액션 모드’ 기능만을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ETA’의 비트와 멜로디는 흥겨우면서 동시에 애조를 띄고 있어요. 마치 ‘ETA’ MV 스토리 라인과도 닮았고, 더 크게 보자면 우리 삶과도 비슷해요. 표면적으로는 신나고 흥겨워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막은 다를 수 있어요. 입체적 관점을 전달해 감상의 폭을 넓히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뉴진스 멤버들은 ‘ETA’에서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단 말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등장하죠. ‘Cool With You’에서도 중심에서 물러나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이러한 요소는 제작 과정에서 의도된 걸까요?

뉴진스의 MV를 여러 편으로, 곡마다 제작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모든 곡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음악은 보여지는 그림에 따라 그 감상의 스펙트럼이 극대화돼요. MV를 통해 곡의 특징을 부각시켜 여러 번 듣고 싶게 만들고 싶었고, 반대로 MV 없이 듣는 곡의 매력에 대한 이해도 또한 올리고 싶었어요. 사실 뮤지션이 직접 출연하지 않는 MV는 이미 과거에도 꾸준히 존재해 왔기 때문에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중요하죠. ‘Cool With You’는 곡 자체가 관조적인 분위기에요. 한발 물러난 태도에서 느껴지는 다소 냉정한 시선은 동일한 상황도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녀요. ‘ETA’, ‘Cool With You’ MV에서 각각의 관찰자 캐릭터는 실상 주인공에 해당하는 상당히 주요한 역할이에요. 이참에 ‘주인공’의 개념에 대한 고찰이 동반된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네요.

뉴진스는 듣기 편안한 음악을 추구한다 느껴요. 퍼포먼스는 동선이나 동작을 확실하게 짚듯이 표현하는 것 같고요. ‘Super Shy’의 음악과 안무가 적합한 예일 것 같은데요. 이러한 특징은 민희진 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정반합적 요소를 표현한 걸까요?

글쎄요. 제가 ‘Super Shy’를 듣자마자 순간 떠올랐던 이미지가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춤추는 어떤 인상이었어요. 본능적으로 떠오른 감정이라 설명이 좀 어려운데, 반복되는 비트, 단순하면서도 고조되는 전개, ‘Shy’라는 주제 등이 중독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춤추게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안무 디렉터에게 사람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같은 동작을 재미있고 쉽게 누구나 따라 출 수 있는 안무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어요. 플래시몹으로 표현되면 재밌을 것 같았죠. <Ep2> 음반 소개에 <Ep1>과 대칭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던 이유도, 마치 자물쇠와 열쇠처럼 상반되지만 꼭 들어맞는 관계처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Attention’에서 멤버들이 ‘뉴진스의 세상’으로의 초대를 노래했다면 반대로 ‘Super Shy’에선 뉴진스가 세상으로 뛰어 들어가요. 생경한 것들이 모두 조화롭게 융합돼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ETA’ MV 마지막에 토끼 로고가 애플 로고로 변하는 게 재밌었어요. 애플이 이런 류의 로고 플레이를 쉽게 허락해주는 브랜드가 아니잖아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컬래버레이션은 각각의 고유한 생각과 생각의 만남이에요. 좋은 협업은 서로 만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에게 시너지가 나야 하죠. 애플이 최초 뉴진스를 택했던 것에서 이미 뉴진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신의가 협업 내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으로 이어진 것이야말로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지점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어렵게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기보다 먼저 납득 가능할 일을 만들자고 생각해요. 협업하면서 느낀 애플은 합리적인 일에 대한 추진력이 빠른 조직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토끼 로고의 변형은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된 일이었어요. 설명이나 설득의 과정이 필요 없었죠. 오히려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 느낌이기도 해요. 서로 만족한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에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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