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프림이 한국에 론칭하지 않는 이유 5
이 이야기는 슈프림 입장과 상관없는 필자의 견해다.
“한국에 들어오는 걸 싫어해요.” 슈프림을 판매 중인 편집샵 운영자들이 입을 모았다.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레플리카, 서브컬처의 깊이가 문제라는 푸념이 뒤따랐다. 슈프림 한국 론칭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슈프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스트릿 브랜드계 최강자다. 스케이트보더 출신 슈프림 디렉터는 상상치 못한 경영방식으로 거리의 사람들에게 ‘스웨그’를 불어넣었다.’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슈프림이 스트릿 패션의 유행 시기와 맞물려 승승장구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 브랜드의 내리막 없는 성공 비결은 따로 있다. 문화를 창출하는 브랜드, 슈프림의 뿌리 깊은 문화가 바로 그 해답이다.
한국 스트릿 브랜드가 슈프림의 발자취를 따라갔다면 그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걸 싫어할 수 있었을까. 진작 그래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탓에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닐까. 1990년대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야 했던 브랜드. 2000년대 들어 외국문화에 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대중. 10년이란 시간 안에 빠르게 익숙해져야만 했던 우리. 문화가 가장 먼저인 것을 그 누구도 몰랐을 리 없다. 아래는 슈프림이 한국에 론칭 하지 않는 이유 다섯 가지다.
1. 한국 스트릿 브랜드?
자칭 ‘스트릿 브랜드’ 집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초 저렴한 가격대는 물론 매일 입을 수 있는 디자인과 가격대비 좋은 퀄리티까지 갖춘 브랜드 집단이다. 주 소비층인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게는 더없이 ‘착한’ 브랜드로 통한다. 다만, 스스로를 ‘스트릿 브랜드’라 칭하는 자의적인 정체성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슈프림은 태생부터 성장까지 ‘스트릿 브랜드’ 기준에 부합한다.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출발했고 그 영감을 자양분 삼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에 비해 앞서 언급한 자칭 ‘스트릿 브랜드’ 집단은 뿌리가 모호하기에 결국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어딘가 당당하지 못하다. 아직은 ‘자존심’ 쎈 슈프림 기준에도 미달이다.
2. 슈프림의 ‘센’ 자존심
이유 2는 이유 1과 연결된다. 슈프림의 첫 번째 뉴욕매장은 스케이트 보더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샵은 보더들이 거리에서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매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중앙은 비어 있고 옷을 양쪽 벽에 나열해, 보더들이 맘껏 놀 수 있게끔. 또 LA 첫 번째 매장은 위의 사진처럼 스케이트보드 볼까지 설치되었다. 스케이트보드 문화를 좋아했던 디렉터 ‘제임스 제비아’는 오로지 스케이트 보더를 위해 슈프림을 창립하고 매장을 설계했다. 슈프림의 중심에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있고, 이는 곧 스케이트보드 문화가 큰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서브컬처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주관을 섞은 귀납법적 해석에 의하면, 슈프림이 곧 서브 컬처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자존심? 세지 않은게 더 이상하다.
한국은 스트릿 컬처와 스트릿 브랜드가 유입된 순서부터 어긋났다. 브랜드가 조금 빨리, 서브컬처가 그 다음에 정착했다. 문화를 이해하고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게 순리라면 이를 거꾸로 이행해 온 것이다. 우리 세대, 혹은 다음 세대에서 자존심 부릴 날을 기대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를 바로잡아야한다.
3. 너무 활성화된 리셀 문화
리셀도 스트릿 브랜드에서 파생된 문화 중 하나다. 국내 리셀시장을 거울에 비춰본다면 흐트러진 오목거울과 같다. 비슷해 보이지만 뒤죽박죽인 것이 현실. 슈프림을 예를 들자면, 캠핑 인건비와 배송료가 포함된 가격에 리셀러 본인의 수고비를 더해 판매가가 책정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 있다.
한국엔 이미 리셀 샵, 리셀 블로거, 리셀 인스타그래머 등 리셀러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굳이 슈프림은 한국 론칭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하던 안 하던 이미 ‘완판’이고 앞으로도 ‘품절’일 것이 뻔하므로. 이미 형성된 시장을 무너뜨릴 순 없지만 언젠간 압구정 매장에서 캠핑하고 원화를 지급하는 날을 기다려 본다.
4. 세계 최강 레플리카국
아시아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큰 시장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슈프림 매장이 있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은 세계적 스트릿 브랜드를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고, 레플리카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슈프림이 일본 외 다른 아시아권 나라에 론칭하지 않는 이유는 레플리카 시장이 워낙 발달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정도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야할 문제다. 오명이 아니기에 변명할 이유도 없다.
5. 여전히 비주류인 서브컬처
이 이야기의 초점은 ‘철장’에 갇힌 한국 서브컬처다. 여기서 ‘철장’은 BMX, 스케이트보드, 그라피티, 힙합 등이 속한 서브컬처를 아직도 비주류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고정관념을 의미한다. <쇼 미더 머니> 덕분에 힙합은 주류가 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설 자리는 없다. 기승전결 중에 ‘승’도 못 봤는데 벌써 그렇단다.
비주류가 주류 자리를 꿰차려면 받아들이는 대중이 열려 있어야 한다.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보다 집중해야 한다. 모든 브랜드는 대중에 의해 흘러가지 않는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깊게 파고든다면 어느새 서브컬처가 주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