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종’ 후유증을 책임질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작품 6
의외로 ‘로맨틱 코미디’ 다수.
나홍진 감독이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공포 영화 <랑종>이 개봉됐다. 이미 <곡성>을 통해 엄청난 혼란과 공포를 선사한 나홍진 감독인 만큼 새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어마어마했고, 실제로 “극장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사람 잡는다”는 무시무시한 감상이 쏟아지며 기대와 걱정을 배가시키고 있다. 영화가 화제를 모으면서 자연스레 나홍진 감독과 호흡을 맞춰 작품을 연출한 태국의 반종 피산다나쿤(이하 반종) 감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반종 감독은 24살의 나이에 장편 데뷔작 <셔터>로 ‘천재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등장한 태국 영화계의 스타 감독으로, 2013년에는 <피막>으로 태국 영화 사상 최대 흥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랑종>을 본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는 <곡성>을 만나기 전까지 한동안 호러 장르에 흥미를 잃고 로맨스나 코미디 등 다른 장르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다. 즉,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관객을 웃고 설레게 하는 작품들도 많다.
그래서 <랑종>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치유를 제공할, 또 그 자극을 이어가고픈 일부 장르 팬들에게는 또 한 번의 공포를 선사할, 반종 감독의 작품 6편을 소개한다.
<셔터> (2004)
태국 호러 영화계에 한 획을 그으며 반종 감독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장편 데뷔작이다. <랑종>을 보고서 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사실감 있게 기괴한 장면들을 담아낸 <랑종>과 달리 <셔터>는 영화 내내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 미스터리한 요소들을 통해 긴장감을 주고, 과감한 연출로 공포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동창회에 다녀오는 길에 의문의 교통사고를 저지른 사진작가가 겪게 되는 심령 체험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의 순간은 연출뿐 아니라 스토리적으로도 충격을 준다. 다음 작품 <샴>과 함께 이미 장르 팬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포비아> (2008) & <포비아 2> (2009)
<포비아>는 반종 감독을 비롯해 <셔터>를 함께 만든 팍품 웡품 감독 그리고 파윈 푸리킷판야 감독, 용유스 통콘턴 감독 등 태국의 젊은 감독 4명이 만든 4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반종 감독이 연출한 ‘가운데에서’는 대학생들의 캠핑에서 벌어진 사건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비틀어낸 스토리를 담고 있다. 송요스 수그마카난, 비수테 풀보랄락스 감독이 합류한 후속작 <포비아2>는 5편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중 반종 감독의 ‘공포영화의 결말’은 제목과 달리 꽤나 코믹한 작품이다. <랑종>을 계기로 태국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태국의 여러 감독들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포비아>, <포비아2>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 두 작품 모두 왓챠, 티빙, 웨이브 등 국내 OTT 서비스에서 만날 수 있다.
<헬로 스트레인저> (2010)
여전히 괴로운 <랑종>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한국에 여행 온 두 태국 남녀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기에 거의 모든 촬영이 한국에서 진행됐다. <대장금>, <커피프린스 1호점> 등의 드라마 촬영지나 N서울타워, 명동, 남이섬 등 등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행 로맨스’는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도 색다르게 느껴지게 한다. 2007년 공개한 <샴> 이후 호러 장르에 흥미를 잃은 반종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로맨스 영화이고, 독특한 설정 때문에 한국에서도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국 ‘이산’에 사로잡힌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국으로 데리고 와 줄 작품.
<피막> (2013)
<피막>은 태국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반종 감독의 대표작. 그는 <헬로 스트레인저>에서 시도한 로맨스, 코미디 장르에 자신의 장기인 호러, 미스터리 요소를 결합해 독특한 복합 장르물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태국의 민간 설화 <매낙 프라카농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스토리는 분명 귀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결코 그것을 불쾌하고 끔찍하게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시종 일관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물에 지쳤다면, 조금 덜 무서운 귀신 이야기도 만나보자. 왓챠, 티빙, 웨이브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원 데이> (2016)
반종 감독은 <피막>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 오히려 호러, 미스터리 장르적 요소를 완전히 걷어낸 멜로물 <원 데이>를 발표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헬로 스트레인저>에 이어 이 작품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펼쳐진다. 작품엔 IT 부서에서 일하는 ‘너드’ 남자 주인공과 그가 짝사랑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여주인공이 불의의 사고로 하루에 하루 동안만 기억을 잃는 병에 걸리자 남자 주인공이 이를 이용해 매일 짧은 연애를 시도한다는 스토리. 속도감 있는 <피막>이나 극도의 공포감을 선사한 <랑종>과 달리 잔잔하고 애틋하게 감정선들을 그려나간다. 어쩌면 뻔하지만 그래서 더 치유가 될 판타지 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