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안드레아타 인터뷰: 로저 드뷔 CEO가 말하는 ‘좋은 시계’는?

“왼쪽에 찬 건 시계, 오른쪽에 찬 건 디바이스입니다.” 로저 드뷔의 CEO 니콜라 안드레아타는 평생을 시계 업계에 종사한 인물이다. 시계 제조업에 몸담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2003년 자신의 시계 브랜드 N.O.A를 론칭했고, 2013년에는 티파앤코의 부사장 자리를 맡으며 브랜드 시계 부문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8년 로저 드뷔의 CEO로 부임한 그는 ‘제네바 홀마크’에 빛나는 로저 드뷔의 혁신적인 기술력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매년 새로운 걸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입비스트>는 로저 드뷔 CEO 니콜라 안드레아타의 내한 소식을 듣고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서울 광화문으로 향했다. 새빨간 정장을 차려입은 니콜라 안드레아타의 양쪽 손목에는 전혀 상반된 디자인의 시계가 각각 채워져 있었다. 왼쪽 손목에는 로저 드뷔의 ‘엑스칼리버 싱글 플라잉 투르비옹’을, 오른쪽 손목에는 핏빗의 ‘차지’ 시리즈를 착용한 그는 직접 양쪽 손목을 번갈아 내세우며 이렇게 덧붙였다. “왼쪽에 찬 건 감정, 오른쪽에 찬 건 건강에 관한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걸 각각 시계와 디바이스로 부르죠.”

시계 하나에 수억 원이 넘는 럭셔리 워치 브랜드의 수장은 ‘좋은 시계’를 어떻게 정의할까? 또 그의 개인 시계 컬렉션에는 어떤 모델들이 자리하고 있을까? 니콜라 안드레아타가 그간 묵혀뒀던 질문들을 건네자, 뜻밖에 그가 전직 농구 선수였다는 사실, 마이클 조던에 얽힌 에피소드, ‘로저 드뷔를 사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시계 부품 제조 회사를 운영하셨고, 본인께서도 평생을 시계 업계에서 일해오셨죠. 그런 점에서 로저 드뷔의 CEO로서 일하는 것이 지니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아요.

마침내 제 꿈의 다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요? 시계 산업의 정점에 오른 기분이었죠. 세계 정상급 워치 브랜드의 수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력들이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로저 드뷔의 CEO 자리를 맡게 됐다는 것, 그리고 우리 팀원들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저 드뷔의 컬렉션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컬렉션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로저 드뷔에는 대표적으로 ‘엑스칼리버‘와 ‘벨벳‘ 컬렉션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엑스칼리버 컬렉션에는 4개의 테마가 있죠. 모터스포츠를 테마로 하는 ‘스파이더’, 어반 트라이브, 즉 ‘도시 부족’들을 위한 ‘오리지널’, <하입비스트> 독자분들이라면 더욱 잘 알고 계실 ‘원탁의 기사’, 마지막으로 가장 복잡한 컴플리케이션을 탑재한 ‘하이퍼’인데요. 사실 제게 어떤 모델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은 부모에게 ‘어떤 자녀가 가장 좋으냐?’라는 질문과도 같을 겁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는 “로저 드뷔의 모든 시계를 좋아한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네요.

저는 자녀는 없긴 하지만, 엄마 아빠 중에는 아빠가 조금 더 좋긴 합니다.

저를 곤란하게 하시는군요(웃음). 물론 모든 모델들을 좋아하지만, 평소에는 앞으로 출시될 가장 최신의 타임피스를 착용하려고 합니다.

다양한 최신 모델 중에서도 그날 착용할 시계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실까요?

저는 감사하게도 로저 드뷔의 다양한 제품을 원하는 대로 착용할 수 있다는 호사를 누리고 있어요.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날그날 어떤 스케줄을 앞두고 있고 어떤 고객을 만나느냐에 따라 시계를 고르는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선호하는 것은 향후 출시될 타임피스죠. 로저 드뷔는 미래지향적인 브랜드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CEO인 저도 언제나 미래지향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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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슈팅 스타 플라잉 투르비옹, RDDBEX0941, 2억 5천2백5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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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스파이더 우라칸 모노밸런시어, RDDBEX0972, 8천2백만 원/엑스칼리버 모노밸런시어, RDDBEX0954, 1억 2백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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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칼리버 모노밸런시어, RDDBEX0953, 1억 1천1백50만 원

지금 착용하고 계신 모델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왼쪽 손목에 착용한 시계는 싱글 플라잉 뚜르비용이 탑재된 엑스칼리버입니다.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쳤고, 전 세계 88개 한정으로 제작된 모델입니다.

개인적으로 로저 드뷔의 CEO 집에는 과연 시계가 몇 개나 있는지도 궁금해요.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워치 브랜드 CEO 중에는 상당히 특별한 경우일 거예요. 원래는 저도 저 나름의 시계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었는데요. 몇 해 전 집에 도둑이 들어 전부 도난당한 뒤로는 소수의 시계만 가지고 있습니다. 시계는 금고에 소장할 때보다, 날마다 일상적으로 착용하고 경험할 때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차고에 슈퍼카가 10대가 있더라도 날마다 모든 차를 몰 수는 없잖아요? 시계도 차도 제가 최대한 많이 활용할 수 있는 개수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실제로 자주 사용하는 편이고요.

코로나19 이후 럭셔리 워치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죠. 3년 전과 비교했을 때 로저 드뷔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로저 드뷔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브랜드가 변화를 겪어야만 했죠. 지난 3년간 로저 드뷔에게 있었던 가장 큰 변화는 3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리적인 변화’. 로저 드뷔를 포함한 럭셔리 시계 시장의 축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어요. 성장속도 역시 굉장이 빠르고요. 두 번째는 ‘세대 변화’, 고객층이 점점 더 젊어지고 있어요. 세 번째로는 채널의 변화가 있습니다. 오프라인 채널 중심 속에서 디지털 채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죠.

저는 이 세가지 변화에 대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로저 드뷔에 부임하고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혁명이 필요하다.” 서로 상충하는 의미를 지닌 두 단어를 하나로 녹여낸 것을 옥시모론, ‘모순어법’이라고 하는데요. 혁명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바꾸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 혁명을 일관성 있게 하자. 그래서 저는 우리 팀에게 ‘일관성 있는 혁명’을 강조합니다. 목적은 새롭게 구조화하고 선택지는 좁히고, 그 선택지에 집중하면서 앞서 언급한 세가지 변화에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일관성 있는 혁명’으로 인한 구체적인 변화도 있었을까요?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변화로는 ‘옴니 채널’이 있습니다. 로저 드뷔는 오프라인 판매만을 고집하지 않아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고객의 일관된 ‘피지털’ 경험입니다. 피지컬과 디지털, 모든 채널에서 우리 고객들이 로저 드뷔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객 경험을 일관성 있게 느낄 수 있어야 하죠.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고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로저 드뷔는 람보르기니, 피렐리와의 협업으로도 유명하죠. 최근에는 소라야마 하지메 협업 모델을 선보였고요. 로저 드뷔가 협업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특별한 있을까요?

우리는 단순한 상업적 파트너 이상을 추구합니다. 단순히 브랜드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지난 5년간 파트너십을 이어온 람보르기니와 피렐리는 우리가 늘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가치’와 맞닿아 있는 브랜드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협업을 위해 찾아 나선 영역은 앞서 언급했던 ‘도시 부족’입니다. 그래서 손을 잡게 된 이들이 바로 현대 미술작가들이고요. 대표적인 인물로는 타투이스트 ‘닥터 우’, 중국의 현대 미술 작가 ‘리우 웨이’,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소라야마 하지메’가 있습니다. 소라야마 하지메는 1980년대부터 <섹시 로봇>을 비롯해 아트 그래픽 영역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해온 작가잖아요. 그가 보여준 도발적이고도 엉뚱함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야말로, 로저 드뷔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메이저리거 출신 추신수가 로저 드뷔를 착용해 화제가 됐었어요. 그간 전 세계 수많은 로저 드뷔의 커스터머들을 만나셨을 텐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으실까요?

너무 많죠.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우리 시계를 착용합니다. 여기서는 잠깐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저는 농구를 굉장히 좋아해요. 30년 동안 농구를 했는데, 20대에는 이탈리아에서 2부 리그 선수로 뛰기도 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팀은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매일 밤마다 NBA 중계를 보곤 했죠.

그러다 2년 전에 넷플릭스에서 나온 조던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 라스트 댄스>를 봤어요. 거기서 마이클 조던의 손에 있던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하나는 조던의 손에 들려있던 시가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였어요. 로저 드뷔더군요. 조던은 우리와 계약을 하거나 파트너십을 맺은 적이 없었거든요.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조던이 뉴욕 부티크에서 개인적으로 직접 구매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같은 에피소드에서 스코티 피펜도 로저 드뷔를 착용하고 있었어요.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이 우리 시계를? 저한테는 정말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죠. 그 뒤로 뉴욕 직원들에게 마이클 조던이 다시 매장에 와서 저와 1대1 경기로 이긴다면 시계를 선물하겠다고 전해달라고 당부해뒀어요 하하.

로저 드뷔 CEO가 농구 선수 출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그런 의미에서 ‘로저 드뷔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건 대답하기 불가능한 질문인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저희 고객들을 보면서 언제나 삶을 최대한 즐기려 하고,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도전하는 분들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어요.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이 많죠. 선택받기보다는 선택하기를 원하는 분들이고요. 하나같이 차별성과 개성을 지닌 특별한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로저 드뷔의 고객을 특정 유형으로 구분해서 말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시계업계의 종사자로서, 또는 한 사람으로서 가장 큰 영감이 되는 롤모델이 있으실까요?

저의 아버지죠. 시계 브랜드의 CEO로서, 또 한 명의 남자로 진심으로 아버지를 존중하고 존경해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는 분이셨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는 늘 시간을 내주셨어요.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버지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랑 어머니 중에 누가 더 좋으냐?”라고 묻는다면 “두 분 모두”라고 답하겠습니다.(웃음)

로저 드뷔에게도 경쟁 브랜드들이 있죠. 다른 경쟁사 모델들을 두고도, ‘로저 드뷔를 꼭 사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의 시계를 차느냐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로저 드뷔를 선택하는 이들은 차별성, 자신 고유의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트렌드를 만드는 분들이고요. 때문에 우리는 로저 드뷔를 꼭 사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가장 혁명적인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로저 드뷔를 선택하기 때문이니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니콜라 안드레아타가 생각하는 ‘좋은 시계’는 어떤 시계일까요?

정서적 연결고리가 있는 시계죠. 시계를 차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하나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삶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거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 시계 말이죠. 시계는 ‘나는 이러한 사람입니다’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시계 브랜드에게는 타임피스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지, 나아가 이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가 중요합니다. 지금 손목에 착용한 시계는 당신이 어떤 가치와 감정을 향유하는지를 보여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