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관계자들이 선정한 2023년 호불호 컬렉션은?
서울의 패션 종사자 6인에게 물었다.

매년 쏟아지는 컬렉션의 홍수 속에서 2023년 한정 가장 좋았던 컬렉션과, 반대로 실망을 안긴 컬렉션은 무엇인지 <하입비스트>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섯 명의 패션 관계자에게 물었다. 스타일리스트와 브랜드 오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패션과 ‘관계’ 맺은 이들의 답변은 단순한 호불호 이상으로 근거가 확실했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고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 받는다’는 건 옛말. 아래 리스트는 이제 진보든 진부든 새로움을 갈구하는 시대의 요구를 수용한 좋은 예와 나쁜 예의 목록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호: 스투시 x 드리스 반 노튼 협업 컬렉션
생각보다 국내 반응이 크지 않았던 것 같은 스투시와 드리스 반 노튼의 컬래버레이션. 사실상 설레는 협업이라는 게 없어진 요즘, 내가 이 컬렉션에서 설렌 포인트는 바로 티저 영상에 모델로 출연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시스트 플리다. 환갑이 넘는 나이에도 진한 핑크색으로 염색한 머리, 반짝거리는 재질의 수트 셋업을 입고 목을 흔들어가며 베이스를 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스트리트웨어 룩북에서 얼마 만에 보는 록 스타의 모습인지!
불호 : 페라가모 2023년 봄,여름 컬렉션 & 2023년 프리폴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의 페라가모. 그가 페라가모에 입성하기 전, 26살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전개하던 브랜드를 보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원색이 가득한 배경 위로 등장하는 세련되고 드레시한 의상부터 기괴한 헤드피스로 마무리한 감각적인 스타일링까지, 최소한의 요소로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눈여겨 본 그가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공개한 컬렉션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내가 기대한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흔하디 흔한 시도라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쇼였기에 너무나 안타까웠다. 페라가모가 맥시밀리언의 그릇을 담기에 부족한 브랜드인지, 아니면 그의 한계가 여기까지일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호: 펜디 2023년 리조트 컬렉션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바게트 백의 25주년 기념 컬렉션이다. 펜디 가문과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만든 최초의 잇백, 90년대 뉴욕의 상징 등 여러 가지 문맥이 있는 하나의 제품에 집중해 인상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백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동시대적으로 잘 해석했을 뿐 아니라 레디 투 웨어 같은 의외의 카테고리에 적용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 티파니 등 화려한 협업 디자이너 및 브랜드의 흔적이 느껴지는 다양한 스타일이 우르르 쏟아진 쇼. 다시 봐도 바게트 백 ‘앓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하다.
불호: 노코멘트.
호: 미우미우 2023년 봄, 여름 컬렉션 & 키코 코스타디노브 x 히스테릭 글래머 협업 컬렉션
좋았던 것들조차 너무 빨리 지나가는 지금 패션계에서 정당성을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작년 말부터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풀리면서 선정적이고 과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현상이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피로감을 느껴 금방 수그러진 듯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현재 미우미우가 보여주는 행보는 남다르다. 이것이 두 시즌 이상 지속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동시에 들지만.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가 스타일링, 조 게르트너가 포토그래퍼로 참여한 2023년 봄, 여름 캠페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난 시즌부터 클래식하면서 ‘유스풀’한 실루엣을 깔끔하게 보여준 미우미우는 이번 시즌 더욱 뉴트럴하고 ‘어시’한 톤으로 자연미를 강조했다. 시원시원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비슷한 이유지만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는 키코 코스타디노브와 히스테릭 글래머의 협업 컬렉션도 멋있게 봤다.
불호: 콜리나 스트라다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딱 하나의 브랜드를 뽑기보다, 전반적으로 요즘 패션쇼들은 ‘쇼’를 위한 ‘쇼’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패션쇼 또한 필연적으로 어떤 이벤트처럼 변질된 게 아닐까.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쩌다 보게 된 콜리나 스트라다 쇼에서 모델들이 동물로 분장해 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동물들은 기억나도 정작 모델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으니까.
호: 루아르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재작년부터 꾸준히 루아르를 챙겨보고 있다. 중성적인 실루엣과 젠더리스한 무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내가 지향하는 작업 방향과도 비슷하다. 평소 셔츠 스타일링을
불호: 디젤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글렌 마틴스가 좋아하는 디테일들이 이제
호: 지방시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런웨이가 더욱 흥미로워지고 부활한 것 같은 생기가 돈다. 무엇보다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건 매튜 윌리엄스의 지방시. 올해 1월에 공개된 2023년 가을, 겨울 쇼에선 나일론 소재의 스트리트웨어 레이어링과 밀리터리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장갑, 슬링백, 스웨터 베스트, 와이드 팬츠를 매치한 레이어드 스타일링은 ‘럭셔리 스트리트웨어’에 대한 완벽한 해답이었다.
불호: 보테가 베네타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보테가 베네타는 다니엘 리가 떠난 후에도 그의 작업적 본질을 유지하려는 듯 보인다. 다니엘 리는 틀을 깨는 새로운 실루엣으로 매번 흥미로움을 선사했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마티유 블레이지의 보테가 베네타는 동일한 작업도 새롭지 않게 느껴져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현재 하우스는 전임자의 부재로 인해 더 이상 ‘핫 스폿’의 자리를 지키기 힘들어 보인다.
호: 로아 2023년 가을, 겨울 컬렉션
불호: Any brands into ‘On Trend’ Theme
특정 트렌드가 생기고 사라지는 건 어느 나라에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트렌드에 유독 민감한 나라다. 그만큼 싫증도 빨리 느끼게 되는 이곳에서 깊은 고민과 근본이 없는 브랜드는 쉽게 생겨나고 또한 금방 잊혀진다. 예를 들자면 최근 ‘레이싱’이라는 테마가 떠오르면서 많은 브랜드가 이에 편승하고 있는 듯 하다. 돈벌이를 위해 트렌드를 이용하는 브랜드들을 좋아할 수 없을뿐더러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우려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