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어 힐데브란트 인터뷰: 스쳐가는 두루미

붓 대신 바이닐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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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페로탕 서울에서 연 <더 큐어처럼 그리기> 이후 8년 만의 개인전이다. 다시 서울을 찾은 소감이 어떤가.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팬데믹도 있었고, 나 역시 거주지도 옮길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오니 8년이 지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

이번 개인전의 이름이 <스쳐가는 두루미>다. 어떤 의미인가?

내가 살면서 겪는 무의식적인 부분들이 모여 결정됐다. 지금 새로 이사한 집 천장과 벽에는 두루미, 학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최근 나의 친구가 선물해 준 책에도 ‘스쳐가는 두루미’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고. 그렇게 접한 무의식적인 것들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 됐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이번에는 갤러리의 외부에도 작품을 설치했다. 전시 공간에 들어오기 전부터 전시가 시작되는 격이다. 1층에는 기둥 형태의 바이닐 설치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관객들의 동선에 따라 작품을 배치했다. 배치를 따라 관람하며 들어오다 보면 계단,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서 회화 작품들이 펼쳐진다. 이곳 페로탕 서울은 전시를 보여주기 완벽한 곳이다.

두 개의 작품을 하나로 결합한 회화 작품을 자주 제작했다.

‘뜯어내기.’ 내가 평소 작업하는 방식이다. 제작한 오브제 위에 원단을 얹고 그것을 뜯어냄으로써 과거가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뜯어진 이미지는 또 다른 작업으로 전달되고. 마치 양쪽에서 음악이 나오는 스테레오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 속 회화 작품도 ‘립 오프’, 뜯어내기 방식으로 작업한 건가?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와 다른 방식을 시도했다. 과거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면 위에 얹었다면, 이번에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오브제의 안에 배치했다. 겉에서는 표면 위에 얹은 것처럼 보이기에 눈으로는 쉽게 알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영향을 미치는 양방향성을 표현하기 위해 차용한 방식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볼 때 관객들이 집중했으면 하는 관람 포인트는 무엇인가?

1층에 전시된 바이닐 설치물 공간 안에 서면 그것들이 평행 우주, 마치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느낌을 받아보길 바란다.

작품의 제목을 음악에서 따오기도 한다. 이유가 있나?

초기에 흑백 모노크롬 콜라주를 했을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작품을 보았을 때 소리가 들리지는 않으니까, 작품의 표면이나 혹은 그 안에 어떤 소리가 담겨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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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와 바이닐. 콜라주 기법에 흔히 사용되지 않는 독특한 재료다. 언제부터 이 방식의 제작을 시작했나?

1990년대 회화 작업을 시작할 무렵부터다. 당시에는 서로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교환하는 문화가 있을 만큼 카세트테이프가 대중적이었다.

그렇다면 해당 재료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예술 학교 재학 시절 ‘음악과 함께하는 회화’ 수업이 있었다. 동기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 봤는데, 유명 회화 작가들의 보급형 버전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내가 기대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나는 미술계의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건 잭슨 폴록 같은 그림이 아닌 더 큐어, 소닉 유스 등 밴드의 음악같은 그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림은 붓을 드는 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와 바이닐로만 그릴 수 있다.

사이즈가 큰 작업을 주로 전개하고 있다. 작업에 사용되는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등은 아날로그 재료라 수급이 쉬울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구하고 있나?

카세트테이프는 이베이에서 구매하기도 하고, 폐업한 비디오 가게가 내놓은 것들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실제로도 가게에서 연락이 온다. 언제는 너무 많이 줘서 거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바이닐 같은 경우에는 정말 어렵다. 이미 존재하는 음반들을 활용하기에는 저작권 문제는 물론, 색깔이 들어가 있는 바이닐을 구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 레이블을 세웠다. 지금 내가 작업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바이닐은 내 레이블에서 찍어낸 것들이라서 저작권, 컬러, 음악 등 아무런 문제가 없다.

‘Grzegorzki’ 레코즈?

맞다. 즈고슈키 레코즈. 내 이름을 폴란드식으로 발음한 거다. 레이블의 공동 창업자이자 폴란드인인 내 여자 친구 ‘알리샤’가 날 부르는 애칭이기도 하다. 이건 여담이지만 내 여자 친구는 매번 발음을 지적한다. ‘즈고슈키’가 아니라 ‘쥬교슈키’라면서(웃음). 내가 폴란드인이 아니라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쥬교슈키’ 레코즈는 어떤 방향성을 지향하나?

예술가들의 앨범을 발매하는 곳이다. 우리 레이블에 속한 아티스트는 음악을 하는 학생일 수도 있고, 지금 당신처럼 에디터일 수도 있다. 전문 음악가의 음반은 내지 않는다. 전문가들을 케어하는 건 어렵다. 앨범 또한 판매하고 있지만 잘 되지는 않고. 이건 내 직업이라기보단 열정에 가까운 거라고 보면 된다.

작업은 물론 레이블까지, 음악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수집한 바이닐이나 카세트테이프의 양도 상당할 거라 예상된다.

수집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재료로써 사용할 뿐이다. 카세트테이프를 많이 구매하지만, 그것들은 곧바로 작업에 활용된다. 심지어 집에 있는 턴테이블은 작동하지도 않는다. 음악을 들을 때는 디지털로 듣는 편이다. 유튜브 뮤직 좋던데.

의외의 답변이다. 유튜브로는 어떤 음악을 듣나?

어린 시절에 들은 바이닐 음반과 요즘 나오는 새로운 밴드의 음악을 같이 듣는다. 옛날 음반 중엔 밴드 더 큐어의 <Pornography>를 가장 좋아하고, 새로운 밴드의 음반으로는 파르(Paar)의 <Hone>. 이건 우리 레이블에서 처음 찍은 음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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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영감이 되는 음악은 뭔가?

그 질문을 이미 좀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바이닐 레코드로 출시된 작업물로는 안나(Anne)의<Flamingo>를 추천하고 싶다.

방금 추천한 앨범을 소재로 페로탕 상하이에서 전시도 열지 않았나?

맞다. 안나의 앨범에 수록된 하나의 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으로 채웠다. 고통에 관한 노래였고,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이 시작되면 방황도 시작된다”는 가사가 있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 파생된 작품들로 전시장을 꼭 채웠다.

당신의 고향 베를린은 테크노가 유명하다. 그렇다면 테크노 음반으로 제작한 작품도 전시한 적이 있나?

과거 강남 샤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한 작업에 테크노 음악이 들어간 바이닐을 사용했다. 테크노 음악으로 작업했다기보다 그 때는 검은색 음반이 많이 필요했다. 베르크하인도 미술계 애프터 파티 때 간 적은 있어도 내가 테크노 음악에 열정이 있지도 않고 사는 곳과도 멀어서 그냥 집 근처 바에서 한잔하는 게 더 좋다.

서울에 온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뷰가 끝나면 먹고 싶은 한식은?

냉면. 아, 그리고 소맥 진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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