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죽지 않는다

“격투기와 관련한 재밌는 일을 벌일 거다.”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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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종합격투기 은퇴 후 반년이 지났다.

은퇴 후 뭘 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할 일이 너무 많다. 육아와 동시에 체육관 두 곳, 도시맥주,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Z-파이트 나이트(이하 ZFN)도 준비하고 있다.

은퇴 후 계획을 이전부터 고민했단 사실이 의외다.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의 타이틀전 이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 경기 이후 인지도가 늘면서 선택지가 많아졌다. 은퇴 후엔 방송계에서도 연락이 왔다. 고민해 봤지만, 격투기 쪽에서 할 일이 더 많다고 판단했다.

앞서 말했듯이 예상 못 한 은퇴였다.

‘UFC 파이트 나이트 225’를 싱가포르가 아니라 한국에서 열어보려 했는데 불발됐다. 어쨌든 싱가포르에서 경기를 치르고 마지막은 어떻게든 한국에서 싸우고 싶었다. 한국 UFC 선수들이 가족들 앞에서 싸울 수 있고, 한국 격투기 문화 발전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했지만, 시합 중간에 은퇴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뭐였나?

싸울 땐 굉장히 예민한 편인데, 경기 중 운동 신경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할로웨이보다 느리거나, 그가 나보다 더 빠르고 기술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맞았을 때도 앞을 보고 있는데 몸이 기울어졌다. 그만해야겠다 싶었다.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대부분 잘한 선택이라고 했다. 마동석 형의 반응이 조금 웃겼는데, 내 은퇴 경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더라. 그러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모든 일을 비즈니스적으로 바라보는데, 너는 이렇게 은퇴하면 앞으로 먹고사는 문젠 없겠다”라고 말해줬다. 몇 달 후 여러 사업을 시작하고 ZFN도 준비하면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좋은 은퇴였다. 누구나 내 은퇴 사실을 알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궁금해한다.

후회는 없나?

없다. 아쉬움은 있다. 최근 할로웨이의 시합을 보면서도 왜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왜 나는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여전히 계속 싸운다, 코좀, UFC, MMA, 이종격투기, ZFN, 좀비 파이트 나이트, 격투기

(최상단 사진) 레더 트렌치코트는 느와르 라르메스, 네트 톱과 신발은 디젤. 팬츠는 파인 카오스, 목걸이는 비탈리, 선글라스는 조던 루카.
(우측 사진) 블랙 블레이저와 팬츠는 준지, 비즈 목걸이와 인디언 주얼리는 불레또, 첼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은퇴 경기에서 “챔피언이 될 수 없다면 격투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챔피언이 되기 위해 싸웠다. 그 꿈을 내려놓고 싸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시 격투기를 하는 정찬성을 볼 순 없을까?

확답은 못 하지만, 격투기는 없을 것 같다. 격투기를 재미나 돈을 위해 하고 싶지는 않다. 복싱은 재밌어서 이벤트 매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조지 루프와의 대결 이후 “나는 싸우러 나왔는데 상대는 스포츠를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나 자신만 믿고 상대를 쓰러뜨리면 됐다. 하지만 조지 루프전 도중에 무언가를 느꼈다. 남자라면 이 시점에 싸워야 하는데 상대가 백스탭을 밟으며 거리를 벌리거나 도망가더라. 그때 ‘스포츠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변화의 계기가 됐겠다.

KO를 당할 때마다 변화했다. 조지 루프 때는 사고방식을, 야이르 로드리게스 이후에는 훈련 방식을 바꿨다. 미국에 갔을 때 우연히 격투기를 스포츠로 접근하는 선수들의 훈련 방식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훈련하면 ‘나 힘이 세졌다’는 주관적인 느낌만 들었다면, 그들은 먹는 것부터 수면 패턴, 심폐지구력, 근력 등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훈련에 반영했다. 웃긴 게, 무조건 많이 하면 세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싸우는 정찬성과 스포츠로 접근하는 정찬성, 둘 중 누가 더 강하다고 보나?

과학적인 훈련을 하는 쪽이 강하다고 본다. 싸움은 변수가 너무 많지만, 스포츠로 보면 덜하다. 결론적으론 싸움과 기술을 잘 섞어야 한다. 체육관 운영 때 투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고, 제자들도 그걸 따랐다. 그러다 내가 미국에 다녀 오고 과학적 방식을 더 도입해 가르쳤더니 성적이 좋았다 나빴다 했다. 두 개를 잘 섞은 요즘은 성적이 좋다.

본인이 가장 잘 싸운 경기를 꼽자면?

미국에 간 이후로 보면 할로웨이전이 가장 잘 싸웠다. 경기에서 굉장히 또렷하게 준비한 모든 전략을 다 썼고, 먹혔다. 근데 몸이 안 따라줬다.

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여전히 계속 싸운다, 코좀, UFC, MMA, 이종격투기, ZFN, 좀비 파이트 나이트, 격투기

‘몸이 안 따라줬다’라는 말을 한 김에, 격투기 신의 세대교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너 지금 진짜 못싸워’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수는 없다. 경기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보면 알 수 있는데, 젊은 선수들이 자신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격투기는 결과로 드러난다.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한국 격투기에서 곧 다시 UFC 메인 이벤트급 선수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매력적인 선수가 많고, 격투기 신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ZFN은 나를 넘어서는 선수를 발굴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팬들도 많이 도와줄 거다. 유튜브도 선수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아무도 모르는 선수가 UFC로 진출해 힘겨운 길을 걷는 것과 지금 장윤성이 가는 것은 분위기가 다르다.

정찬성은 과거 홍보와 크게 연을 맺지 않았던 선수였다.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나?

다 박재범 때문이다. 박재범이 다 알려줬다. 나도 박재범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똑같이 했을 때 못 알아들었다. 박재범에게 “왜 신인들을 도와주냐”라고 했는데, 박재범은 “이 신이 커져야 나도 먹고사는 것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그 의미를 안다. 나 하나는 체육관 운영하고, 방송 출연, 도시맥주 운영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격투기 신을 멋지게 만들면 내가 더 잘 먹고 잘살고 멋있어진다.

ZFN을 “한국 격투기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 이유도 비슷한가?

UFC 랭커로 활동하다 보면 계약부터 별별 일에 대한 대처 방식까지 다양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챔피언은 못됐지만, 그 직전까지는 모두 경험했다. 그래서 내 경험이 다른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었다. 경험하지 못하면 UFC가 돌아가는 방식을 알 수 없다. 홍준영, 기원빈, 김한슬 등이 이번에 UFC에 출전할 기회를 얻었는데, 그들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 체육관 선수들에겐 도움을 이미 주고 있었다. 그리고 ZFN 선수들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줄 거다.

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여전히 계속 싸운다, 코좀, UFC, MMA, 이종격투기, ZFN, 좀비 파이트 나이트, 격투기

더블 블레이저 재킷과 팬츠는 토가 비릴리스 by 지스트리트 494 옴므, 화이트 셔츠는 코페르니, 스니커는 돌체앤가바나,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ZFN의 얼리버드 티켓이 1분 만에 매진됐다. 이 관심은 사실 정찬성이라는 유명 인물을 향한 건 아닐까?

당연히 나를 향한 관심일 거다. 근데 인기라기보단 내가 격투기에 얼마나 진심인지 사람들이 알아준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여는 격투기 대회라면 어떨까?’가 관심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담이 되기도, 기쁘기도 하다. 첫 번째 대회를 잘 치러야 선수들을 향한 관심도 생길 거고, 자연스럽게 그게 종합격투기의 인기로 이어질 수 있다.

ZFN 개최를 발표하며 “망하지 않는 법은 안다”라고 말했다.

이 얘긴 꼭 넣어달라. 10년 넘게 한국 격투기에 몸담아오며 사기치는 대표도, 거짓말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그러지 않겠단 거다.

대회 이상의 격투기 단체를 구성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 다른 단체와 계약한 선수들에게 우리와 계약하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첫 번째 대회에는 ZFN 소속 선수 같은 건 없다. 대신 첫 대회에선 계약 문제가 없는 실력 좋은 선수들을 모두 데려와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려 한다.

두 번째 대회부터는 대회 외적으로도 아마추어 시합을 지속해서 개최하고,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통해 ZFN과 함께할 프로 선수들을 발굴해 나갈 계획이다. 환경과 복지를 잘 갖춘 좋은 단체를 만들면, 좋은 선수들이 ZFN에서 뛰지 않을까?

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여전히 계속 싸운다, 코좀, UFC, MMA, 이종격투기, ZFN, 좀비 파이트 나이트, 격투기

정찬성이 입은 화이트 티셔츠는 준지, 블랙 카고 쇼츠는 비이커, 스니커는 돌체 앤 가바나.
장윤성이 입은 민소매 톱은 오프 화이트, 쇼츠는 예스아이씨, 양말, 스니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재현이 입은 옷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ZFN의 첫 대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좀비트립:파이터를 찾아서(이하 ‘좀비트립’)’가 유튜브에 시즌 3까지 공개됐다. 당시 출연진에게 상금이 걸린 무대에서 경쟁할 기획을 약속했다. 이제 브랜드가 어느 정도 탄탄해졌으니, 그들이 ZFN의 아마추어 대회인 ‘지-로얄’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차례다. 또한, 프로 선수들이 싸우는 ‘지-네이션’도 준비돼 있다. 라인업은 곧 발표한다.

ZFN이 ‘좀비트립’의 피날레 이벤트가 될 것이라는 전망 혹은 우려도 있었다.

첫 번째 대회의 ‘지-로얄’은 ‘좀비트립’ 출연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2회부터는 오로지 프로 선수 경기로만 진행될 예정이다.

단체의 성공에는 중계 방식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내 성격대로라면 다 무료로 보여주고 싶은데 제작비를 포함한 여러 이해관계로 그렇게 할 순 없더라. 해외 중계는 현재 유명한 업체와 협상 중이다. 해당 중계는 프로 선수들의 경기만 방송할 예정이다. 국내 중계는 아직 논의 중이며 확정된 바는 없다.

ZFN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선수를 위한 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무도 스무 살 때의 정찬성이 UFC 타이틀전에 뛸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한계를 낮게 설정하고 세계 무대에 도전하지 않는 국내 선수도 많다. 내 한계는 세계 최고였다. 그렇게 정해놓고 가는 거다. 의지가 있는 모든 선수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세계 최고에 도전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렇다면 정찬성의 다음 목표는 뭔가?

재밌는 활동, 특히 격투기와 관련한 재밌는 일을 벌일 거다. 이미 필요한 환경을 갖추고 있으니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찬성 인터뷰: ‘코리안 좀비’는 여전히 계속 싸운다, 코좀, UFC, MMA, 이종격투기, ZFN, 좀비 파이트 나이트, 격투기

재킷은 나누시카 by 지스트리트 494 옴므, 데님 셔츠는 엘무드, 볼로 타이는 불레또,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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