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 Visits: 김영진

‘Yellow is beautiful’ 개인전을 연 작가의 예술관과 공간.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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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은 표현 방식이 다채로운 작가다. 보통 회화 작품을 생각하면 사각 캔버스를 바탕으로 한 2차원적인 평면 조형예술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김영진의 회화는 표현의 방식과 소재, 그리고 형태적 관점에서 다른 작업과 차별적인 부분이 있다.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듯 보이는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 작품 옆에 만화처럼 형태가 일그러진 작품을 놓거나, 별 모양으로 연마된 합판 위에 볼드한 텍스트를 얹은 디테일이 그것이다. 작가의 작업실 한편에서는 실제 총알처럼 보이는 물건도 발견했는데, 진짜 총알인지 아닌지 합리적 의심마저 들 정도로 그의 작업 스타일이나 세계관은 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그는 무질서해 보이는 과거의 작품들도 나름의 구체적인 체계가 있고 구분이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예술 작품은 주체가 되는 작가의 삶의 흔적, 경험, 그리고 동시대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그가 살아온 시간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미술을 업으로 삼은 작가의 작업실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을 법한 여러 도구와 장비들이 즐비한 작업실에서 그의 작업과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Studio Visits: 김영진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Yellow is beautiful’ 이라는 연작을 작업 중인데,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아시안에 관한 이야기요. ‘Yellow’라는 단어가 특정 피부색이나 인종을 지칭하는 차별적인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저는 일단 ‘노란색은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언제부터 인종에 관한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2015년에 열렸던 개인전에서 인종에 관련된 작업을 처음 선보였어요. 당시 전시 제목이 <A Choice of Weapons> 이었는데, 사진가 고든 팍스의 자서전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던 전시였어요. 고든 팍스는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1950~60년대에 주요한 활동을 한 사진가이자 영화감독이에요. 잡지 <라이프>의 첫 흑인 전속 사진가이기도 했죠. 그의 사진 작업을 보면서 제가 겪고 생각하는 인종에 관한 이야기를 사진이 아닌 회화로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가요? 

처음에는 차별이라는 거시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어요. 그 뒤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아시안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아요. 

Yellow is beautiful 은 어떤 작품인가요? 

노란색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아시안이 ‘Yellow’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이를 비아시안이 받아들이는 일부의 견해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작품은 같은 모양으로 연마된 조각 캔버스에 아크릴 스프레이로 다양한 색을 입힌 후, 그 위에 ‘Yellow is beautiful’이라는 텍스트가 드러나도록 실크스크린 작업을 반복하는 작품입니다. 노란색은 어디에나 있고 그 어떤 색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시각적으로 직관할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인 것 같아요. 

조각 캔버스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별모양처럼 보이는 이 조각 캔버스는 ‘CRASH TEST’라는 작품에서 디자인 모티프를 따왔어요. 이 모양은 해당 작품 안에서 충돌의 접점이 되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독립된 형태로 상징성을 부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노란색은 아름답다(Yellow is beautiful)’는 메시지가 중첩되면 분명 의미 전달에 도움도 되고,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작품 시리즈를 소개해 주신다면? 

‘Yellow is beautiful’ 시리즈를 작업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작업이 바로 ‘ASIA’ 시리즈였어요. 이 작업은 사회, 경제, 문화 등 동시대를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나 기관들의 로고가 소재입니다. 해당 로고를 구성하는 텍스트의 일부를 지우거나 변형해서 ‘ASIA’라는 단어만 화면에 남겼는데요.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작품에 텍스트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아요. 

저는 텍스트를 중요한 회화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모국어가 아닌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드러나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처럼 말이죠. 물론, ‘Yellow is beautiful’에서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지만, 저는 의미보다 형태의 전달을 우선순위에 두고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해 작업하시나요? 

아무래도 물감을 가장 오래 다뤘다 보니 익숙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보조제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기술적으로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초반 아이디어 스케치는 디지털로 작업하는 편입니다. 물론, 평면 회화가 아니라 3D 형태로 제작되는 오브제 작품들은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전부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편이고요.

주제별로 작업 방식이 바뀌는 편인가요? 

의식적으로 매번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에 가장 잘 맞는 표현 방식을 고민하는 편입니다. 같은 시각 이미지어도 사각 화면에 회화로 존재하는 것보다 3D 형태의 오브제로 존재할 때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으니까요.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거창한 조각 작업을 하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를 창작하는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과 유사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이나 행위가 김영진 작가에게는 굉장히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린다는 말이 단순히 붓과 물감을 사용한 동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계를 재단할 수 없는 현대미술이라는 큰 틀에서는 특히 그렇죠. 저도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그린다는 행위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화가가 아니라 미술가라는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작품명을 보면 ‘Type 3’, ‘Type 4’ 라고 써있는 것들이 있는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상업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개인 작업에 대한 고민을 항상 했어요. 개인 작업과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이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그동안 했던 작업도 결국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작업이라고 할 수도 없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크게 네 가지 타입으로 구분했어요. 낙서와 만화적인 요소들, 디자인적인 기하학 형태의 이미지, 실사 형태의 작업과 한국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 이렇게 네 가지 타입으로 나눠 사용된 것에 따라 ‘타입 1’, ‘2’, ‘3’, ‘4’로 구분했어요. 

그럼 조금 전에 소개해 주신 작품은 무슨 타입에 속하는 작업일까요? 

이번 전시의 작업은 따로 타입을 지정한 작업은 아니에요. 타입 작업은 평면 회화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오브제 작업과는 또 성격이 다른 것 같아요. 음, 그럼 오브제 형태를 ‘타입 5’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새까맣다는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 작품이 눈에 띄는데요. 

빛을 거의 100%까지 흡수해서 음영을 눈으로 쉽게 확인하기 어렵게 만드는 아주 검은색의 페인트를 재료로 사용한 작업인데, 아니쉬 카푸어의 ‘반타 블랙’같은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은 어디에나 있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것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작업에 담았습니다.

손에 있는 타투가 바스키아의 심볼이 맞나요? 

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바로 바스키아인데요. 제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좀 더 기술적인 회화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바스키아를 좋아하게 된 후로 제가 생각했던 예술의 범주가 정말 제한적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바스키아 외에 영감을 받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예전에는 그 사람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제게 더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이가 많아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박서보 선생님이나 알렉스 카츠,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말이죠. 꾸준함이 정말 가장 중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지냈던 강아지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도 있다고 들었어요. 

지난 2018년에 오랫동안 함께 한 반려견 금자를 갑작스럽게 먼저 보내고 심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었어요. 그때는 작업을 하는 것조차도 정말 힘들었는데, 어느 날 금자가 쓰던 물품을 정리하다가 금자가 남긴 여기저기 긁힌 흔적을 발견했어요. 그걸 보고 남겨진 건 무엇인지, 즉 부재와 흔적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2019년과 2020년의  ‘Déchiré’ 연작들이 그 결과에요. ‘Déchiré’는 사전적 의미로 ‘찢어진’, ‘긁힌’, ‘고통스러운’이라는 뜻인데요. 캔버스를 긁고 다시 덮는 과정을 마지막까지 반복하며 작업했습니다.

금자를 대신해 지금의 작가님 곁을 지키는 새로운 친구도 소개해 주세요. 

가족이 된 지 6개월 정도 된, 이제 곧 한 살이 되는 장금이라고 해요. 부모 없이 구조된 아이로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비교적 빨리 저의 평생 가족이 되었어요. 금자를 보낸 후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다시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는 것이 어려웠는데, 장금이 덕분에 너무나도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강아지는 정말 사랑입니다. 여러분,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이 정말 많아요.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올해는 어떤 활동이 계획되어 있나요? 

지금 진행 중인 개인전 이후에 몇 차례 그룹전을 준비 중이고, 내년 3월에 열 개인전도 이제 부지런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작가 김영진과 인간 김영진이 각각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항상 비슷한 대답했어요. 늘, 언제나, 죽을때까지, 오래오래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삶과 개인의 삶을 구분해서 생각했던 적이 없다 보니 개인적인 목표나 꿈도 결국 작가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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