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세가와 요헤이가 추천하는 일본 소도시 여행지

양평이 형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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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태어났지만, 내 몸에는 오사카와 나가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오사카 출신인 아버지의 뿌리는 교토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뿌리는 이번에 소개하는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와 시오지리다. 나는 지은 지 2백 년 정도 된 시오지리의 외가댁에서 할머니와 함께 여름 방학을 보내곤 했다. 당시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가 있었는데, 방 한편에는 그 노래의 가사가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 ‘信濃の国(시나노노쿠니)’라는 제목의 그 노래가 나가노의 현가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됐으며, 나가노 사람들이 다른 어떤 현 사람들보다 현가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다. 옛날 노래라 지금과는 표현이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현대어로 고치면 가사의 의미는 이렇다.

“시나노(옛 나가노의 명칭) 지역은 10개 지역과 접하고 있으며, 우뚝 솟은 산은 매우 높고, 강은 멀리까지 흘러간다. 마쓰모토, 이나, 사쿠, 젠코지(모두 지역명) 네 개의 평지는 비옥한 땅으로, 바다는 없지만 자원이 풍부해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래된 노래지만, 나가노를 방문할 때마다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마쓰모토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시는 마쓰모토성을 중심으로 4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다. 북알프스라고 불리는 히다산맥 사이에 마치 꽃이 핀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지역답게 근대적인 건물과 고풍스러운 회반죽, 목조 건물이 뒤섞여 있어서 좋은 의미로 ‘하이브리드’ 스타일 길거리 풍경을 연출한다.

그 가운데를 누비듯 흐르는 메토바가와 강변에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마루모’라는 가게가 있다. 1868년 여관으로 시작해 1956년부터는 찻집도 겸업하는 곳이다. 이처럼 깊은 역사를 지닌 장소가 있는 데다가, 최근 정착한 젊은이들이 차린 멋진 공간들도 여럿 찾을 수 있다. 

느긋하게 거리를 배회하다가 시내 중심에서 조금만 빠져나오면 북동부에는 아사마 온천이 있다. 마쓰모토성의 영주와 20세기 초 일본을 풍미했던 화가 다케히사 유메지, 그리고 수많은 현지인을 698년부터 계속해서 치유해 온 역사 깊은 온천이다.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에 당일치기로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일상과 여행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 힐링 풀코스로 제격이다.

몸을 바깥부터 치유해주는 온천뿐 아니라 안에서부터 치유해주는 풍부한 음식도 만날 수있다. 그중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소바일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기온이 낮고 일조 시간이 짧다.” 얼핏 들으면 별것 아닌 듯 느껴지겠지만, 바로 그것이 맛있는 메밀을 재배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라고 한다. 늦가을이 되면 가까운 고원에서 재배한 메밀로 만든 향긋한 신소바를 이곳저곳의 소바집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한번 신소바를 먹고 나면 소바를 먹을 때마다 그 맛과 향이 생각나니 신기할 정도다.

마늘, 양파와 함께 간장 양념에 절인 닭고기를 녹말가루로 튀긴 ‘산적 구이’도 최근 인기 명물이 됐다. 여운이 남는 고소한 맛이 아주 중독적이다. 술과 산적 구이로 진짜 산적처럼 와일드한 여행을 위해 체력을 보충하는 것도 좋겠다. 또 말고기도 잊으면 안 된다. 담백하고 은은한 풍미를 지닌 말고기는 고단백 저칼로리 음식일 뿐 아니라 다양한 부위를 회와 냄비 요리 등 다채롭게 요리해 풀코스로 즐길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고기뿐 아니라 산나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신선한 고사리나 두릅, 땅두릅, 명이나물뿐 아니라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비롯한 각종 버섯류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다. ‘노자와나’라는 잎채소도 빼놓을 수 없다. 노자와나는 절여서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씹으면 씹을수록 입 안에 향과 맛이 퍼진다. 흰쌀밥과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에 오차즈케로 먹어도 좋고, 잘게 썰어 볶음밥을 만들어 먹어도 좋다. 노자와나를 볶아 만두소로 만든 ‘오야키’도 출출할 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든든한 간식’ 유의 향토 음식 중 하나다. 

바다가 없기에 다른 산간 지역과 마찬가지로 민물고기를 먹는 전통도 있다. 신선한 잉어를 살짝 데쳐 찬물로 마무리한 ‘코이노 아라이’는 새콤달콤한 초된장 덕분에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고 맛이 좋다. 그 밖에 잉어 된장국 ‘코이코쿠’나 장어, 은어, 곤들매기 등도 즐길 수 있다. 특별한 음식을 찾는다면,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되어온 꿀벌의 애벌레나 나가노현민의 단백질원이자 이나 지역 명물인 ‘자자무시’ 벌레, 혹은 메뚜기를 이용한 요리 ‘이나고노츠쿠다니’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감으로 즐기는 마쓰모토는 또한 나가노현 최고의 ‘음악 도시’이기도 하다. 귀를 통해 음악이 들어오는 사이,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그 순간 보고 있는 모든 것이 기억에 남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세피아 색으로 숙성돼 간다. 마쓰모토성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재즈 카페 ‘에온타’는 처음 오더라도 왠지 그리운 곳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빌 에반스가 방문하기도 했던 이 곳에서는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어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촉촉하게 울려퍼지는 재즈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물론 들려주는 음악도 상당한 수준이다.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최근 마쓰모토에서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에 살다가 이곳으로 온 아티스트가 많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장 큰 결실을 본 것이 2009년부터 매년 가을 열리고 있는 ‘사과 음악제(りんご音楽祭)’일 것이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알프스 공원에서 개최되는 이 ‘페스티벌’ 아닌 ‘축제’는 현지 DJ가 주최하는 지역 밀착형 이벤트임에도 일본 전국, 나아가 아시아에서 아티스트를 불러올 정도로 글로벌하게 성장했다.

1992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세이지 오자와 마쓰모토 페스티벌 또한 마쓰모토가 자랑하는 대표적 음악 페스티벌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본인의 은사 사이토 히데오를 위해 총감독을 맡고, 축제 기간 마쓰모토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도시로 변모한다. 팬들은 꼭 그 감동을 현지에서 느꼈으면 좋겠다.

시오지리

마쓰모토에서 차로 30분, 전철로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자리한 시오지리는 평야 지대 서쪽에 자리한 아담한 마을이다. 마쓰모토보다 덜 도시적이고, 그래서 하늘이 더욱 넓은 느낌이 든다. 특히 이곳은 지금도 밭을 갈아엎으면 토기가 출토될 정도로 ‘역사’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고장으로, 일본 3대 유적으로 일컬어지는 ‘히라이데 유적’에 가면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늦여름이면 각지에서 포도를 따기 위한 사람들이 유적지 주변 포도밭에 찾아온다. 이곳의 샤인머스캣, 거봉 그리고 나가노 개발 품종인 ‘나가노 퍼플’ 등을 밭에서 갓 따서 먹는 순간 포도에 대한 시각과 개념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훌륭한 포도가 있다는 이야기는 훌륭한 와인이 있다는 이야기일 테다. 시오지리가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 와이너리를 비롯해 새롭게 생겨난 개인 와이너리, 산토리 와이너리까지 온갖 와이너리가 버글버글 모여있는 와인 천국이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5월이나 11월처럼 와인에 중요한 시기가 되면 시오지리 거리는 단숨에 사람들로 넘쳐난다. 특히 각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한정 와인은 응모해서 당첨되지 않으면 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한다.

이와 더불어 시오지리를 빛내는 또 하나의 특별한 공간도 소개하고 싶다. 역에서 남동쪽, 국도 153선 부근인 다이몬욘반쵸에 있는 영화관 ‘히가시자(東座)’는 1922년 극장으로 문을 연 뒤, 1960년부터는 현재의 건물에서 영화관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2대 관장은 영화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는 영화에 진심인 분이다. 유행이나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고 좋은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상영하고 있는 그는 단골들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고, 여전히 두터운 신뢰를 얻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건강과 식재료를 선물 받고, 사람들의 힘으로 문화의 화학 변화까지 일으키고 있는 나가노의 마쓰모토와 시오지리. 산과 산 사이에서 긴 시간 자라온 이들 지역의 매력은 마침내 좋은 와인처럼 숙성됐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시나노노쿠니’의 1절 마지막 구절을 떠올려 줬으면 한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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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Hasegawa Yohei
번역가
Yonghwan Choi
이미지 크레딧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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