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o Visits: 다비드 아발론
T1의 챔피언 링과 지드래곤의 그릴즈를 만든 한국의 10년 차 주얼러.
다비드 아발론(이하 다비드)은 올해로 경력 10년 차를 맞은 주얼러다. 그가 이 직업을 택한 것은 2014년, 그릴즈를 처음 접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그릴즈는 아주 생소했다. 그릴즈 브랜드는 물론, 그릴즈를 끼는 래퍼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난 1988년, 그릴즈를 낀 래퍼 슬릭 릭의 데뷔부터 그릴즈를 주제로 한 넬리의 ‘Grillz’(2005)가 그래미상 후보곡에 오르기까지, 그릴즈가 이미 힙합 문화의 상징 중 하나로 공고히 자리 잡은 미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릴즈를 만드는 사람은 있었지만, 수요는 거의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래퍼 중에서도 그릴즈를 끼던 사람은 마스타 우와 키스 에이프 정도였죠.” 하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다비드 아발론이라는 이름은 이제 힙합 신은 물론, 케이팝과 e스포츠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조금이라도 ‘하이 엔드’스럽지 않았으면 그냥 안 하고 말았어요. 그런 신념 때문에 배고팠던 시간도 길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고집이 지금의 저를 완성한 것 같아요.”
과정 끝에, 다비드는 자신의 활동명을 딴 하이 엔드 주얼리 브랜드 다비드 아발론과 그릴즈 전문 브랜드 스핏 그릴즈를 운영 중이다. 주얼리와 그릴즈에서 최고의 네임 벨류를 가진 다비드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주얼리를 ‘인 하우스’로 제작할 수 있는 작업실과 아카데미를 갖춘 스튜디오 오픈 소식을 전해왔다. 종로 인근에 들어선 이 작업실에선 세공부터 왁스, 그리고 보석 체결까지, 고객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세심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보석 원석을 채굴하는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주얼리 제작에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은 모두 이 방에서 해결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한편, 작업실 옆 아카데미 공간에는 줄줄이 이어진 작업대가 놓였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의 목적은 무엇일까? “지금 주얼리 시장은 쉽게 접근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렇게 해선 절대 하이 주얼리를 만들 수 없어요. 우리의 지향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국 주얼리의 레벨도 높아질 거로 생각해요. 그게 이 아카데미의 취지입니다.” 수업을 진행할 예정인 정화석 마스터 엔지니어의 말이다.
한편, 후암동에 자리한 스핏 그릴즈 쇼룸은 다비드의 취향이 가장 분명하게 반영된 공간이다. 외국 힙합 뮤직비디오에서 볼 법한 모형 총기와 지폐계수기가 놓인 카운터를 지나면, 고객과 상담을 진행하는 소파가 나온다. 그리고 그 뒤 스핏 그릴즈의 ‘SG’ 로고가 빼곡히 적힌 문을 열면,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체인과 그릴즈가 놓인 쇼케이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과거 그릴즈를 제작해 주며 친분을 쌓은 지드래곤이 선물한 피스마이너스원 협업 나이키 퀀도1이 값비싼 주얼리와 함께 나란히 진열된 점에서도 쇼룸에 대한 다비드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고객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주얼리만큼이나 중시한다는 신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가 지드래곤의 그릴즈를 만들고, 아카데미를 시작하기까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인고의 시간과 압력이 다이아몬드를 만들듯, 매 순간 더 빛나기 위해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다비드를 <하입비스트>가 만났다.
스핏 그릴즈의 그릴즈 제작 과정은 어떻게 되나?
상담 후 최종 시안 스케치를 하고, 양치 한 뒤에 실리콘 몰드로 치아를 본뜬다. 이후 그릴즈가 완성되면 직접 피팅을 도와주며 끝난다. 그런데 이건 손님의 입장에서 바라본 거고, 상세한 제작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본뜬 석고로 왁스 모델링을 진행하고, 그 왁스를 금속으로 바꾸고, 최종 과정은 광택과 보석 세팅이다. 그런데 요즘 해외에선 실리콘 몰드 대신 3D 스캔으로 주조를 많이 한다. 격변의 시대다(웃음).
그릴즈 제작 비용은 얼마 정도인가?
보통 금을 기준으로 하면 그릴즈는 40만 원, 다른 주얼리는 200만 원 선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디자인과 소재가 추가되는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한편, 그릴즈 이외의 주얼리 피스를 주로 취급하는 다비드 아발론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그릴즈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붇다 보니 그릴즈가 자연스레 ‘하이 엔드’가 됐다. 그릴즈가 가장 어려운 종목이다 보니, 반지나 펜던트 등의 커스텀 작업이나 시계 애프터세팅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할 수 있게 되면서 주얼리 브랜드도 따로 전개하게 됐다.
지금까지 제작한 가장 비싼 피스는 무엇인가?
식케이가 의뢰한 2kg짜리 ‘식케이’ 체인. 2억 원 정도였다.
아티스트가 아닌 일반인 중에도 주얼리에 거금을 들이는 고객이 있나?
최근에도 한 손님이 현찰 5000만 원을 들고 와서 다이아몬드 쿠반 링크 체인을 의뢰하고 갔다. 7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으로 날 봐왔는데, 최근에 사업이 잘돼서 드디어 피스를 맡길 수 있게 됐다고 하더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객과 함께 성장한 느낌을 받는다. 과거의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릴즈 제작을 처음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열여덟 살 이었던 2014년, 에이셉 라키가 그릴즈를 끼고 찍은 사진을 보고 막연히 그릴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한 국내 주얼러에게 그릴즈 제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엔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껴 부산의 어느 대학교에 갔다. 경상도 지역엔 그릴즈를 만드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잘만 하면 그 지역 신을 독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내 그릴즈 시장은 어땠나.
공급은 아주 작게나마 있었지만, 수요는 없었다. 되돌아보면 래퍼 중에서도 그릴즈를 끼던 사람은 마스타 우와 키스 에이프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릴즈는 여전히 살아남기 어려운 종목이다. 수요는 적은데, 필요한 전문성은 정말 높다.
당시 롤 모델이 있었나?
조니 댕, 아이스박스를 운영하는 주마 가족, 그리고 벤 볼러. 그중에서도 벤 볼러가 가장 멋졌다. 벤 볼러의 작품을 보며 언제쯤 나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피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 언급한 이들은 모두 주얼리가 가업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아버지는 목사님이셨고, 어머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물론 나도 금은방 2세로 태어났으면 과정이 더 편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주얼리는 돈이 정말 많이 드는 게임이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한 덕분에 더 호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럼, 처음 그릴즈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냉담했다. 하루는 직접 만든 그릴즈를 끼고 집에 갔더니 어머니께선 혐오스럽다며 미간을 찌푸리시더라. 물론 이해는 간다. 그 직전까진 타투를 배우고 있었다. 이 보수적인 집안에서(웃음). 그리고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도 날 보고 그릴즈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너무 분한 나머지 일 년 안에 부가티 자동차를 사고 나타나겠다고 했는데, 매년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결국 매년 부가티를 향해 노를 끊임없이 저으며 여기까지 왔다.
첫 도전을 회상한다면.
그땐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릴즈 제작 기술을 연마하려고 3일 밤을 지새우곤 했다. 마치 처음 눈 뜬 강아지처럼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지금도 에너지를 얻고 싶을 때면 스무 살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곤 한다. 또 그 시기에 지투와 스웨이디, 그리고 레디에게 무작정 그릴즈를 맞춰주겠다고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 부산에 온다고 해서 그릴즈를 맞춰주겠다고 디엠을 보냈는데, 진짜로 오겠다고 해서 방 청소만 3시간 했다. 그땐 내 자취방이 작업실이었다(웃음).
커리어 초창기에 만든 그릴즈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와, 정말 엉망진창이구나(웃음)? 그런데도 내 초창기 피스를 아직까지 갖고 있고, 계속 의뢰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고맙다. 그들도 내 실력이 느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는 것 같다.
커리어의 전환점이 된 순간을 꼽자면?
2020년쯤, 더블랙레이블에서 연락이 왔을 때. 처음엔 미팅인 줄 알고 스튜디오에 갔는데, 전소미부터 빈스, 테디까지 유명한 사람들은 다 모여있더라. 그렇게 아티스트의 치아를 모두 본뜨고, 하루 만에 일 년 치 매출을 올렸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티스트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 같다.
한편, 대중에게 다비드 아발론이라는 이름을 알린 계기는 무엇인가?
2021년도에 리사가 개인적으로 의뢰한 6000만 원 상당의 주얼리. 그리고 카메라엔 잡히지 않았지만, 빅뱅의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 뮤직비디오에 사용된 지드래곤의 그릴즈도 화제가 많이 됐다. 하지만 난 여전히 내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대중을 위한 것을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대중들에게도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올해 발매된 T1과 키드밀리와의 협업 제품이 그런 노력의 예시인가?
그렇다. 두 협업 모두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행보와의 차이점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목걸이도 함께 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뿌듯했던 건 T1 챔피언십 링이었다. 제작 과정도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피스보다 까다로웠다.
어떤 디테일을 넣었나?
이 작은 반지 하나에 다이아몬드만 무려 1000개를 박았고, 루비가 박힌 지붕을 열면 T1 선수 이름과 구단주 등의 이름이 적힌 내부가 드러나게끔 설계했다. 그리고 루비 안에도 직접 개발한 공정으로 T1 로고를 각인했다. 그 밖에도 측면의 매와 국궁 디테일 등, 다비드 아발론이 앞으로 내놓을 디자인의 힌트도 모두 이 제품에 녹였다. 이건 T1 관계자들도 모른다(웃음).
다비드 아발론의 ‘아발론’을 자개에서 따온 것처럼, 한국적인 요소에서 확실히 많은 영감을 받는 것 같다. 매와 국궁은 무엇을 상징하나?
매는 뱀의 천적이다. 그런데 불가리의 상징이 뱀 아닌가. 그래서 불가리를 한 번 잡아보겠다는 호기로운 의미도 담았고, 매사냥이 과거 한국의 ‘럭셔리 컬처’였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편, 주얼리에 국궁 모티브를 넣은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국궁을 직접 만들고 쏘면서 자랐다. 마침 최근에 다시 활을 쏘기 시작했는데, 앞으론 친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활을 쏘러 다니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럼 다음으로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나 단체가 있나? 대한양궁협회?
비슷하다. 엔터테인먼트와 e스포츠 신을 경험해 봤으니, 이제 스포츠 시장에도 발을 담가보고 싶다.
과거 한 인터뷰에선 에이셉 라키와 작업하는 게 목표라고 하기도 했다. 그 꿈은 아직 유효한가?
유효하다. 다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넓은 영역의 협업을 건너뛰고 그를 만나게 되면 다비드 아발론은 평생 힙합 주얼리 브랜드로 남게 될 것 같다. 난 힙합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 래퍼들의 트로피 같은 브랜드인 롤렉스도 정작 래퍼를 위해 시계를 만든 적은 없지 않나.
가장 최근에 본 주얼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피스를 꼽자면?
주얼리로 분류하는 게 맞을까 싶은데, 칸예 웨스트의 티타늄 그릴즈가 근래에 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이었다. 치과의사와 함께 그릴즈를 반영구적으로 임플란트한다는 게 너무나도 신선했다. 그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칸예 웨스트도 한편으론 참 대단하다. 가격이 11억 원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설득되는 숫자다.
칸예 웨스트의 티타늄 그릴즈처럼, 신기술을 접목한 주얼리가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변화를 실감하나?
마침 최근에 본 <영원한 건 없다>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드비어스라는 회사가 10년 전부터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에 인공 다이아몬드인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무려 40%나 섞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또 최근 ‘버스트다운’ 시계의 가치도 기계로 보석을 손쉽게 박아버리는 신기술인 ‘CNC’의 등장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난 아직도 무브먼트를 일일이 분리해서 작업한다. 그런 변화를 보고 앞으로 주얼리는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더 사치스럽고, 해괴망측한 피스가 승리하는.
그럼, 멋진 주얼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가장 멋진 건 ‘타임리스’ 한 주얼리라고 생각한다. 주얼리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도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 만큼, 디자인 또한 몇 세대가 지나도 자신있게 찰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 준비 중인 골드 라인을 성공적으로 런칭해 세상을 뒤흔드는 것.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다. 정식 골드 라인 없는 파인 주얼리 브랜드는 10년째 정규 앨범이 없는 아티스트와도 같다고 느꼈거든. 이제 그 첫 발걸음을 내디딜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