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든 패션 하우스의 로고가 비슷하게 바뀌고 있을까?
버버리, 셀린, 발렌시아가, 캘빈클라인의 로고가 산 세리프체로 바뀐 이유.
이달 초, 프랑스의 럭셔리 하우스 셀린은 피비 필로 아래에서 수년간 사용된 브랜드 로고의 디자인을 새롭게 바꿨다. 기존 CÉLINE의 ‘É’ 자에 붙은 악센트 표기를 없애고, 각 글자의 길이를 세로로 좁게 늘인 것. ‘균형 잡힌 비율의 단순한 멋’의 새 로고는 새롭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한 에디 슬리먼의 하우스 개막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았다.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선임에 의해 브랜드의 상징이 바뀐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에디 슬리먼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에서 ‘이브(Yves)’를 뺀 후 생 로랑의 시대를 열었고, 2014년 존 갈리아노 역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를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로 축약하며 종전과 다른 분위기의 브랜드를 출범했다. 이름이 아닌 로고의 디자인만을 변경한 사례도 많다. 라프 시몬스는 2017년 캘빈클라인에 부임하면서 기존 소문자의 로고를 전부 대문자로 바꿨고, 뎀나 바잘리아 역시 발렌시아가의 로고를 세로로 좁게 늘이고 굵기를 추가했다. 가장 최근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리카르도 티시 또한 새 브랜드의 로고 티저를 통해 하우스의 입성을 알렸다.
이렇게 모든 디자이너들이 브랜드의 로고를 통해 새 하우스 출범을 알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간단히, 로고를 바꿈으로서 브랜드의 이미지를 환기하는 것.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나이키와 에비앙 크리스티 등과 작업한 이력이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폰트 연구가 데이비드 루드닉은, 이같은 새 로고 정책이 하우스의 과거 유산과 단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그들은 브랜드의 과거 디자이너들이 쌓은, 위대한 유산을 제거함으로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하우스의 그림자를 조금씩 지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루드닉은 특별히 ‘이브’를 없앤 생 로랑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이같이 말했다.
데이비드 루드닉은 이름이 아닌, 로고의 폰트만을 바꾼 발렌시아가와 버버리에서도 같은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발렌시아가 고유의 유산이 담긴, 눈에 띄는 로고 역시 개성이 없는 영국식 타이포그라피로 변해버렸죠. 또한 리카르도 티시는 새 버버리 로고 하단에 ‘LONDON ENGLAND’라는 문구를 덧붙였는데, 이는 새로운 스타일을 반영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브랜딩 효과가 있는 한편, 유구한 하우스의 역사와 역할이 무시당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해요.”
로고 리뉴얼의 궁극적인 목표는 새 디자이너가 새로운 바탕에서 활약할 수 있는, 이른바 초석을 깔아주기 위함이다. 하우스의 유산을 새로고침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결과가 예상된 방향으로 흘라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브랜드 GE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과거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오 오웬은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새롭게 바뀐 로고 중 일부는 하우스의 과거 유산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요. 모두 국적이 없는 글로벌 브랜드로 변하고 있죠. 우리가 처음 그 브랜드를 만났던 순간의 향수마저 떠오르고 있어요.”
“지금 브랜드들이 찍어내는 막대한 돈은 모두 티셔츠, 운동화, 가방, 액세서리 등 고전적인 의미의 ‘디자인’이 아닌 ‘브랜딩’에서 나오고 있어요.”
로고 리뉴얼 작업은 앞서 말한 새 디자이너의 초석 외에 상업적인 목적 또한 내포하고 있다. 지오 오웬은 무엇보다 급격히 변화하는 매체 환경이 이같은 로고 디자인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새 로고 대부분은 산 세리프체로 대체됐어요. 이는 가독성, 심미성 뿐만이 아닌, 다양한 매체의 포맷에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죠. 특히 요즘 번성하는 디지털 매체 등이요.” 뉴욕 로체스터 공대 디자인 예술 학부의 미치 골드스타인 역시 이같은 변용성 때문에 지금과 같은 로고 디자인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새 로고 디자인은 마치 어떤 형식의 매체라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같아요. 언제, 어디든, 무엇이든 브랜드가 희망하는 이미지를 품을 수 있는 컨테이너죠. 이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훌륭하다고 봅니다.”
한편 데이비드 루드닉은 일련의 로고 리뉴얼 작업이 왜 브랜드에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지 강조한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패션이 전혀 다른 시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 패션 디자인은 패브릭, 재단, 실루엣, 계절 등에 초점을 맞춰 전개돼 왔죠. 성패도 그에 따라 좌우됐고요. 하지만 지금 브랜드들이 찍어내는 막대한 돈은 모두 티셔츠, 운동화, 가방, 액세서리 등 고전적인 의미의 ‘디자인’이 아닌 ‘브랜딩’에서 나오고 있어요.” 루드닉은 디자인에 대한 관념이 바뀜에 따라 로고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버버리가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의 영입과 함께 브랜드의 상징을 바꾼 건 위와 같은 맥락이다. 버버리는 로고 리뉴얼과 함께 곧바로 세계적인 로고 디자이너 피터 사빌을 영입했고, 그가 만든 전에 없던 버버리의 문양이 세계 온라인과 오프라인 곳곳을 호기심으로 물들였다. “피터 사빌은 브랜드 리뉴얼에 필요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인물입니다. 평범한 디자인도 피터 사빌의 이름이 붙으면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죠. 버버리가 그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피터 사빌의 로고는 단순한 호기심의 효과만이 아닌, 그 이름만으로 앞으로의 버버리가 선보일 디자인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죠. 물론 좋은 쪽으로요.”
새 디자이너 영입과 함께 브랜딩 변화를 선택함으로서 캘빈클라인, 발렌시아가, 버버리, 셀린 등의 브랜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하우스의 유산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혹은 전에 없던 새로운 브랜드의 출범,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오롯이 새 디자이너의 몫으로 남았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21세기의 디자인이란 더이상 아이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물론 존재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패션 하우스와 디자이너의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디자이너와 하우스가 함께하는 기간은 길어야 5년 남짓이다.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바뀔 때마다 이런 부침을 겪으며 매번 새 브랜드로 거듭나야 하는 걸까? 하우스의 ‘유산’이란 말은 앞으로 어떻게 쓰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