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로드 시즌 2 - Ep.6 최자 인생의 첫 참치 & 장위동 백반
“새끼지만, 줄무늬만은 대뱃살 같아.”
지난해 겨울, <최자로드> 연말특집 ‘방어편’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일생에 꼭 한명은 만나야 할 ’아는 셰프’의 중요성이다.
“흔히 경찰과 의사 그리고 변호사는 한 명씩 알아두면 좋다고 말한다. 하나 추가하자. 인생의 진짜 귀인이 되는 사람은 ‘아는 셰프’. 특히 오늘처럼 낚시꾼 친구가 보내준 특방어가 손에 들어오는 날이라면.”
이런 특별한 기회는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최자 인생의 첫 참치도 불현듯 찾아왔다. 그는 귀하다고 하는 새끼 참다랑어를 들고 ‘아는 셰프’ 정창욱의 식당 ‘금산제면소’로 향했다. 참치 해체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부탁해, 내 인생의 첫 참치야.”
“창욱이는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와 음식이란 세계를 이어주는 좋은 연결고리야. 좋은 재료가 생기면, 결국 요리 잘 하는 사람을 찾아가게 돼있더라고. 창욱이는 생선을 많이 다루는 셰프도 아니고, 비린내도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 친구가 생선 해체를 해줬으면 좋겠어. 내 인생의 첫 참치니까.”
“참다랑어를 잡았다고?”
드르륵 문이 열리고, 특별한 손님이 하나 더 등장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 9시 되면 나라를 팔아 먹다가, 11시 되면 밥줄 걸고 나라 살리기를 하고 있는” 배우 김의성이다. <미스터션샤인>의 극악무도한 매국노 ‘이완익’과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의 진행자를 오가며 반전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참치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배우가 되기 전 팔라우에서 배를 탔던 전직 ‘참치잡이’의 자격으로.
농어 깨무침
오늘은 최자가 잡은 참치와 함께 지인이 보내준 붉발이와 광어, 농어도 상에 올랐다. 에피타이저는 곱게 갈은 깨로 극강의 고소함을 완성한 농어 깨무침이다.
정창욱 셰프가 공개한 의외로 레시피는 간단하다. “농어에 간 깨와 간장을 넣고 무쳤어요.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요리죠.”
광어 & 붉바리 카르파초
광어와 붉바리로 만든 카르파초. 레몬의 산도로 생선을 숙성하는 요리다. 재료가 어우러진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정창욱 셰프는 토마토와 루꼴라를 곁들였다. “얇게 썬 마늘을 살짝 곁들이면 좋은데, 그냥 먹어도 마늘 향이 날거야. 내가 접시에 마늘을 비벼놨거든.”
마치 이자카야에 온 것 같다며 최자가 맛을 음미했다. “칵테일 베이스로 맑은 술을 쓰듯이 카르파초의 베이스로는 광어가 좋은 것 같아. 맛이 두드러지지 않는 식감 중심의 생선을 쓰니까 확실히 다른 재료들이 더 잘 살아나.”
참치
대망의 참치 등장. 최자의 낚싯대를 부러뜨린 우량아 새끼 참치다. 참치 전문가 김의성 배우가 붉은살 참치의 맛을 좌우하는 세 부위를 설명했다. 붉은 단백질이 가득한 등살과 중간 부분에 기름과 단백질이 적절히 섞여 있는 중뱃살(쥬도로) 그리고 풍부한 지방으로 똘똘 뭉친 대뱃살(오도로)이다.
“참치에서 나야할 맛이 다 나는걸. 어린 참치가 이 정도 ‘포텐셜’을 가지고 있기 쉽지 않은데.”
“새끼지만 참치의 참맛이 다 난다, 진짜.”
참치의 하이라이트인 뱃살. 배를 가른다. 새끼지만 뱃살이 꽤 있다. 어른 참치에 비해 기름기가 좀 부족하지만, 참치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는 충분히 갖췄다. 조숙한 새끼 참치를 두고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너무 귀엽지 않니? 애써 ‘나 참치’라고 주장하는 것 같잖아.” – 김의성
“작아도 센, 메이 파퀴아오 같은 느낌이야.” – 정창욱
“새끼지만, 줄무늬만은 대뱃살 같아.” – 최자
정창욱: “어른 참치만큼은 아니지만, ‘어 그래’하고 납득이 가는 맛이 나.”
최자: “맞아. 영양가 있는 나무의 씨앗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김의성: “생물에게 이렇게 말하면 좀 가혹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맛과 영양을 제공하는 거잖아. 애써서 좋은 맛을 주려고 하는 것 같은 묘한 감동이 있네.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게 있어, 얘는.”
네기 도로
오늘 참치 코스의 마무리는 네기 토로다. 참치 자투리 부분을 다져서 파와 함께 김에 싸먹는 요리다. 많은 사람이 ‘파(네기)’와 ‘토로(도로)’의 합성어로 오해하지만, 네기도로의 어원은 건축 용어인 ‘네기리(ねきり)’다. 건물을 짓기 전에 땅을 파는 것처럼 참치 뼈에 붙은 살을 수저로 파서 다졌다는 의미다.
“왠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이 조그만 놈도 나한테 이렇게 맛으로 감동을 주고 있고. 잡은 사람과 요리하는 사람 둘의 대단한 노력으로 이렇게 내 입에까지 들어오는 거니까. 정말 고맙잖아.”
“나도 내가 참치를 잡게 될지 몰랐다니까요. 겸손해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오늘은 한 번만 봐줘요.”
“정말 좋은 추억인 것 같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귀한 걸 갖다 놓고 먹는 게.”
참치 전문가 김의성의 <최자로드>에 대한 소감에 대해 물었다. “그냥 최자 너가 돼지 되는 이야기잖아.”
“아, 그래서 운동을 하긴 해. 캡틴 아메리카처럼 되고 싶었는데 타노스가 되고 있지만.”
금산제면소 서울 중구 소공로6길 13 장위동 백반집, ‘대머리 식당’
“이런 게 계속 생각나는,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
그동안 앞장서서 돼지들을 맛집으로 이끈 최자지만, 때로는 친구의 손에 이끌려 올 때도 있다. 이곳은 올해로 문을 연 지 40년 째인 ‘대머리 식당.’ 정창욱 셰프 아버님의 단골 식당으로, 그가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때부터 다닌 백반집이다. 세월이 증명하는 맛은 당연지사. 추억이 쌓인 맛집을 친구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40년된 가게에서 손님들이 계속 줄을 선다는 건 ‘퀄리티 컨트롤’ 그 자체지. 맛이 변함없이 확실하게 유지된다는 의미니까.”
오징어볶음 & 제육볶음
뚝배기에 볶아낸 오징어 볶음과 제육 볶음. 수분기가 없어 마치 숯불에 구운 느낌이다. 뚝배기의 열기때로 인해 양념이 점점 졸아드는데, 그때가 정창욱 셰프가 말하는 맛의 골든 타임이다. 정창욱 셰프의 ‘간장 필살기’ 팁도 이어졌다.
“간장을 약간 태워. 탄맛이 섞이면 더 맛있어.”
“확실히 맛이 달라지네. 감칠맛이 나. 짠 것과는 다른 느낌이야. 양파같은 게 살짝 탈때 나는 그 맛 있잖아. 고기가 눌러 붙어서 불에 구운 것 같은 맛도 나고.”
돌솥밥과 비빔밥
대머리식당의 묘미는 비빔밥에서 고조된다. 양념이 살짝 졸면 뚝배기에 째로 밥과 고추장, 김치와 콩나물 등을 넣고 비빈다. 마지막에 들기름을 충분히 둘러 고소한 맛을 완성하는 것이 포인트다.
“나이가 드니까 들기름이 훨씬 좋아졌어. 참기름보다 훨씬 좋아. 들기름이 더 향긋해.”
비빔밥이 맛있는 이유는 밥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집은 어떤 메뉴를 시켜도 돌솥밥이 나오는 ‘혜자’식당. 가스불로 활활 끓여 지은 밥이라 찬물만으로도 누룽지가 뜨겁게 분다. 8천 원에 돌솥밥을 먹을 수 있다니, ‘푸짐함’ 그 자체다. 기본 반찬으로 양념 게장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돼지들은 누룽지 만들 때도 물을 적게 부어.”
“사실 돌솥밥을 낸다는 건 정말 큰 정성이거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밥을 짓는거잖아.” 최자가 이집 밥맛에 연신 감탄하며, 돌솥에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었다. 물을 넉넉히 넣어야 맛있다는 사장님의 말에 그가 손사레쳤다. “아니에요. 저희는 돼지여서 일부러 조금만 넣었어요. 건더기를 많이 먹을려고요.”
이면수 구이
관북(함경도)지방에서 고기를 잘 낚는 것으로 이름을 떨친 임연수(林延壽)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임연수어 구이다. 발음 그대로 이면수어로 불리기도 한다.
“이면수만큼 완벽한 생선은 없는 것 같아. 껍질도 다 먹을 수 있고. 노릇노릇하고 기름기도 많고. 이면수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고기로 치면 닭고기같은 대중적인 맛이야.”
굴비
“굴비에 게장 소스를 발라 먹어봐.”
“여긴 생선을 정말 잘 지져. 껍질은 바삭하게 익었는데, 안에는 촉촉함이 살아있어. 생선 껍질 좋아하는 사람에겐 딱이야.” 이집 생선구이 맛의 비결은 조리법. 이면수는 상하식 가스 그릴에 굽고, 굴비는 번철에 지진다. 번철 조리의 관건은 기름인데, 이 식당은 40년 전통 밥집 답게 ‘적절함’을 놓치는 법이 없다.
“생선을 구울 때 쌀가루나 밀가루, 전분같은 걸 안 묻혀서 좋아. 생선은 굳이 그런 걸 안묻혀도 된다고 생각해. 묻히면 요리 자체가 달라진다고 생각해.”
“나한테는 어릴적 기억을 긁어주는 곳이 맛집이야.”
최자: “여기는 숨겨두고 나만 알고 싶은 맛집 같은 느낌이 들어. 네가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은 뭐야?”
정창욱: “여기도 그래. 가끔 아버지한테 대머리식당에 다녀왔다고 하면 되게 좋아하셔. 주문도 아버지가 하는 그대로야.”
최자: “요즘은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게 많이 없잖아. 음식 취향을 공유하는게 되게 행복한 일인 것 같아.
정창욱: “이집은 먹을 때도 단계가 있잖아. 돌솥밥을 다른 공기에 옮기고 숭늉 물을 붓고, 맨밥에 생선을 곁들여서 먹다가, 오징어 볶음이 졸아들면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입가심으로 숭늉을 먹고 나가지. 먹는 단계가 있다는 게 좋아.”
최자: “여기는 감정적으로 전혀 결핍이 느껴지지 않아. 무슨 요리를 그돈 내고 먹었을 때 결핍이 느껴지면 그집은 맛집이 아니거든? 근데 되게 합리적이야. 이렇게 체계적으로 괜찮은 한끼를 먹으면 맛과 감정이 함께 충족돼.”
이 식당이 위치한 장위동은 맛으로 유명한 동네는 아니다. 그럼에도 밥 한그릇을 먹기 위해 외진 동네를 찾아와야 할 이유는 이 식당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푸짐한 ‘집밥’으로 마음을 채우기 더없이 좋은 백반이 있으니까. 최자의 말처럼 “스스로에게 행복이 담긴 한 끼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라면 더욱.
“이집은 마치 잔잔한 내용을 기대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큰 감동을 받은, 한편의 영화같은 곳이야.”
대머리 식당
서울 성북구 돌곶이로 162
<최자로드> 시즌 2 다시 보기
Ep.1 을지로 닭무침과 막국수
Ep.2 토리소바 라멘
Ep.3 한우 오마카세
Ep.4 맛의 범죄 도시, 대림동
Ep.5 나폴리 피자엔 위스키, ‘피스키’
#믿고먹는 #최자로드 <최자로드> 시즌 2는 <하입비스트>와 tvN ‘흥베이커리’가 함께합니다. 영상은 매주 월요일에, 기사는 격주 화요일에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