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인터뷰: 애플이 그려낸 한국 역사와 가족의 연대기

출연진과 제작진이 말하는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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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이는 역사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삶을 헤쳐 나가는 이민자 가족의 연대기를 담은 책의 내용을 잘 함축하고 있다.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및 재일 조선인)’의 삶을 담아낸 이민진 작가의 책은 그 해 <뉴욕 타임스>, <BBC>, <USA 투데이>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일약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약 4년 반이 흘러 3월 25일 오늘, 이 작품은 애플 TV+를 통해 거대한 스케일의 글로벌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 가족의 수난과 희망의 대서사는 한국과 일본, 미국을 배경으로 약 70년에 걸쳐 펼쳐진다. 이처럼 커다란 스케일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쉼없이 교차시키는 섬세한 연출은 정식 공개 전부터 평단에서 뜨거운 찬사를 얻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애플이 한국 근현대사를 다루는 글로벌 작품이라는 점에 많은 관심을 모았다. <파친코>는 애플 TV+를 통해 오늘 3개 에피소드 공개를 시작으로 4월 29일까지 매주 금요일 한 편씩 새로운 에피소드가 공개될 예정이다. 첫 에피소드는 애플 대한민국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의 제목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 주류 사회에서 차별받던 자이니치들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돌파구였다. 즉,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자이니치들이 처한 잔혹한 현실 그리고 그 안의 희망을 상징한다. 바로 그 현실과 희망을 담아낸 애플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공개를 맞이해 주연 배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그리고 각본 및 총괄 프로듀서 수 휴, 총괄 프로듀서 테레사 강, 마이클 엘렌버그에게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 작품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됐습니다.

처음에 프로젝트가 시작된 과정이 궁금해요. 소설 <파친코>는 큰 화제를 모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아시아권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가 글로벌 관객들에게 친숙하던 시기는 아니잖아요.

마이클 엘렌버그: 저희가 이 드라마 제작을 계획하던 시기에 이 시리즈가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무모한 사람들은 저희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만큼 비영어 시리즈가 흔치 않았거든요. 하지만 수 휴 프로듀서는 작품의 각색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저희는 그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고, 가능하면 원작에 걸맞게 대작으로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물론 재원이 필요했죠.

저희는 여러 군데 제안을 했는데, 어디서든 수 휴 프로듀서의 작품 피칭이 30분에 접어들면 여러 채널 네트워크의 임원들이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때 이 이야기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확신할 수 있었죠. 관심을 보인 곳은 많았지만, 애플 측이 초반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습니다.

테레사 강: 4년 전에 저희가 처음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 전적으로 아시아인 출연진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나 드라마는 정말 없었어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땐 아직 개봉 전이었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어워즈‘를 수상하기도 몇 년 전이었으니까요. 지금은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한국어로 제작된 시리즈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어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이민진 작가의 원작 소설 <파친코>는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아주 큰 화제를 모았잖아요. 제작 과정에 원작자의 참여는 있었나요?

수 휴: 이민진 작가가 직접 창작 과정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이 시리즈의 바탕이 된 그의 책을 ‘바이블’로 여기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드라마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어떠한 방향성으로 원작을 해석했나요?

수 휴: 먼저 분량과 관련해서는 이번 시즌은 시즌 1에 해당합니다. 계속 이어질 거예요. 이 정도 규모의 소설을 한 시즌에 압축해서 넣는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사랑을 많이 받은 책이기 때문에 각색을 하는 데 부담도 있었지만, 각색을 하려면 원작을 그대로 옮겨오기보단 새로운 접근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대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놓고 각색을 진행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른 세대가 소통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도록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아무래도 글로벌 시리즈인 만큼 한국과는 다른 방식과 과정으로 오디션이 진행됐을 텐데요.

김민하: 저는 나중에서야 캐스팅 디렉터의 연락을 받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됐어요. <파친코>의 오디션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오디션 대본만으로도 빠져 들었어요. 콜백 이후 원작을 읽었을 때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기 오디션도 했고, 인터뷰도 했고, 마지막으로 케미스트리 오디션까지 이뤄졌어요.

이민호: 저도 오디션을 통해 합류했습니다. 오디션을 본 건 <꽃보다 남자> 이후 13년 만인데요. 오랜만에 예전의 저를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한국에서 하는 오디션과는 달리 마지막에 ‘케미스트리 오디션’이라는 걸 진행하는데요. 각 역할별로 유력하게 캐스팅된 배우들끼리 만나서 서로 간의 합을 확인하는 기회예요. 새로운 경험이어서 흥미로웠어요.

김민하: 연기를 보여주는 오디션보다 대화를 나누는 인터뷰 자리가 많았어서 그게 인상 깊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작진이 저의 일상생활을 물어보면서 선자와 저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또 저도 케미스트리 오디션이 첫 경험이어서 기억에 남네요.

그렇다면 이번엔 제작진의 입장에서 각 역할의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테레사 강: 윤여정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배우죠. 또한 선자처럼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그의 연기를 보면, 그가 곧 선자이기 때문에 캐스팅해야 하는 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캐릭터와 많은 교감을 나눴어요.

수 휴: 제작을 시작할 때부터 솔로몬 역할을 찾는 건 유니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어, 영어, 일본어를 할 수 있으면서, 부산 사투리와 간사이 사투리까지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동시에 솔로몬처럼 다재다능한 배우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저희는 적임자를 찾기 위해 한국, 일본,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까지 샅샅이 뒤졌고, 뉴욕에서 진하 배우를 만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 브로드웨이 연극에서 진하 배우를 본 적이 있었어요. 특별한 인연이죠. 그는 존재감이 뚜렷하고, 언어적으로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요.

김민하 배우의 경우에는 캐스팅 후반부에 저희 팀에 합류했습니다. 그때쯤 저희는 조금 초조해하고 있었어요. 젊은 선자는 너무나 중요한 역할인데, 좋은 배우를 찾지 못할까봐요. 그래서 캐스팅 디렉터와 좀 더 많은 수의 배우들을 찾아보자고 이야기했고, 살펴보던 중 민하 배우의 테이프를 보게 됐어요. 저는 목소리, 대사, 몸 쓰는 방법은 다 트레이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눈빛은 바꿀 수 없죠. 민하의 눈을 보고 선자에 어울린다고 느꼈어요.

드라마가 실제 역사를 다루고 있는 만큼 고증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 휴: 제작 과정에서 역사적인 고증에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저도 한국의 역사를 배우긴 했지만, 사실 자이니치 커뮤니티에 대해서는 <파친코>를 읽기 전까진 잘 몰랐어요. 제대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역사학자 재키 킴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의 책에는 자이니치 1세대의 구두 증언이 다수 수록돼 있는데요. 1세대 분들은 고령이라 제가 직접 만날 수는 없어서 그 책이 많은 도움이 됐고, 주로 2, 3세대 자이니치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또 재키 킴 덕분에 파이널 에피소드에 자이니치 1세대 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그분들이 살아낸 역사는 사실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게 됐죠.

테레사 강: 저희 작품에서 선자의 첫째 아들 ‘모자수’ 역할을 맡은 아라이 소지 배우와 모자수의 여자친구였던 ‘에츠코’ 역할을 맡은 미나미 카호 배우는 실제로 자이니치예요.

수 휴: 각본팀에서는 늘 역사적인 부분에 있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애썼고, 그것을 메워나갔죠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각본팀은 40명에 달하는 역사학자를 자문위원으로 모셨을 뿐 아니라 음식 연구가부터 관동대지진 전문가, 1980년대 일본 부동산법 전문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최대한 당대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했을 때, 연기를 위해서 당시 상황에 대한 공부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윤여정: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배우게 된 것들이 많아요. 저는 ‘재일동포’라고만 알았지, ‘자이니치’라는 단어 자체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 들었어요. 자이니치 대다수는 <파친코>에서처럼 일제강점기에 여러 사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 남게 된 사람들이라고 해요.

당시 해방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 정부에서는 재일동포들을 위한 지원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요. 공산권의 지원을 받던 북한은 일본 내 조총련계 학교를 지원했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조총련계 조선학교에 가게 된 자이니치가 많다고 합니다. 지금 남북이 갈라져 있긴 하지만, 당시 자이니치들의 선택은 그런 이념보다 한국어와 한국인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선택한 거죠.

그래서 남북의 문제보다 자이니치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걸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실제로 제 아들 ‘모자수’ 역의 소희(아라이 소지 배우의 한국명)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개인의 역사가 아닌 그보다 큰 규모의 역사에서 오는 아픔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민호: 많은 작품에서 리얼리티가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깊이가 남달랐어요. 한수 역을 연기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는 작업이었어요. 그래서 수 휴 프로듀서님이나 감독님들과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김민하: 그 전까지 자이니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 저에겐 그 내용들이 큰 충격이었어요. 그래서 실제 자이니치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읽은 것들이 정말 현실이었는지 확인해보는 과정도 있었어요. 직접 사실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또 충격이었죠.

그리고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어요. 제 외할머니가 그 시대를 살아 오셨기 때문에 제가 궁금한 것들을 많이 여쭤봤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백솔로몬의 한국, 일본, 미국이 중첩되는 정체성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자신과 솔로몬이 자신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진하: 저희 부모님 세대와 이전 세대에는 일제 강점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어요, 저희 할머니가 1911년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아버지도 공부를 해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해요. 나머지 가족들도 일본어를 잘합니다. 일부는 강제로 일본어를 해야만 했고요. 저는 그 가족 안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활동을 하죠.

그렇기에 비슷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어요. 그게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 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느낌을 받고, 그 때문에 더욱 더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많이 공감했어요. 사회에 동화되고 어울리기 위해 스스로를 바꿔나가는 것, 이 사회에 맞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본인의 앞선 세대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부분도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솔로몬은 야망이 넘치는 인물이에요. 그 야망을 위해서 도덕적인 양심이나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인식을 희생하기까지 하죠. 그런데 저는 이제 뿌리를 버리고 어딘가에 억지로 동화되려 무리하기보다 스스로의 뿌리를 다시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어요. 제 부모 세대 그리고 그보다 앞선 세대에 대해 이해하고 연결점을 찾는 것이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건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한수는 그동안 이민호 배우가 평소 맡던 역할들과는 많이 다른 성격의 인물인데요.

이민호: 늘 로맨틱하고 깔끔한 캐릭터를 맡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그와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기존의 정제된 이미지를 깨보는 것에 중점을 뒀어요. 일부러 이미지를 깬다기보다 작품에 녹아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수에 공감하려 노력했어요. 한수의 정돈되어 있지 않은 감성에 끌렸던 것 같아요. 지금 시대를 살면서는 느껴볼 수 없는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었어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생존했던 캐릭터이기 때문에 저는 그런 처절함과 내면의 어둠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한수, 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선자. 물론 단순히 나쁜 남자 정도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전 늘 가슴이 아팠어요.

본인이 연기한 주인공 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김민하: 선자는 나약한 부분과 강인한 부분이 공존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너무 유연하고 빠르고 현명하기도 해요. 그렇게 여러 성격이 내재돼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매 신마다 선자가 가지고 있는 면모들이 하나씩 다양하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윤여정: 인생은 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되돌아보면 누구와 연애하고 결혼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엔 선택이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선자의 강인함도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어떤 부분에서는 저와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했죠. 하지만 저와 크게 다르다고 느낀 건, 선자가 상대가 유부남인 것을 모른 채 임신한 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선택이에요. 그때 한수는 자신이 선자에게 금전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제공하는 대신 정부가 될 것을 제안하는데요. 당시의 시대와 상황을 생각했을 때 그 이야기를 뿌리친다는 선택을 한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본인이 맡은 인물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대사가 있다면요?

이민호: 한수가 나중에 아들을 만나서 “앞만 봐. 언제나 앞만 보는 거야.”라는 대사를 하는데요. 이 한마디가 한수를 대변하고, 그 시대 한수와 같은 사람들을 대변하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김민하: 지금 떠오르는 건 경희와 이야기하는 장면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선자가 경희에게 “이 가슴이 시린 게 언제 끝나냐?”라고 묻자 경희가 “끝나지 않아.”라고 대답하는 대화가 있어요. 이 두 마디가 작품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요.

본인의 역할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진하: 솔직히 말하면 가장 집중했던 것은 언어 문제였어요. 백솔로몬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라서 일본어가 제1언어잖아요. 그런데 또 일본어 중에서도 간사이 사투리와 도쿄의 표준어 두 가지를 모두 구사할 수 있어야 해요. 장면에 따라 어떤 순간에는 간사이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고, 어떤 장면은 도쿄 말투로 이야기하거든요. 방언 사이의 차이가 명확한 부분도 있지만, 미묘한 부분들도 있어서 캐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제 언어 코치는 일본어와 한국어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 일본어 대사도 한국어로 배워야 했죠. 일본어를 한글로 쓰고, 그걸 알파벳으로 바꿔 적어서 외우는 과정이었어요. 그리고 대사의 톤과 인토네이션, 강세를 하나하나 외워야 했어요. 감정에 따라서 같은 말을 할 때의 말투가 전혀 달라지니까요. 게다가 어떤 대사는 원어민인 것처럼, 또 어떤 때는 그 언어를 잘 못하는 것처럼 표현해야 했어요. 게다가 대사도 계속 바뀌었고요. 솔직히 지금 생각해도 그걸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어요.

김민하: 저는 선자의 삶과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선자였다면 이런 상황엔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매 상황마다 떠올렸고, 그 상황마다의 감정과 생각들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했어요.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기보다는 그 순간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선자이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감독님들이 준 가장 큰 디렉팅은 “그 신 안에 존재하고 숨쉬어라”라는 것이었어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디렉팅도 물론 있었지만, 촬영 내내 이어진 이 이야기가 저에게는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작품 속의 인상적 장면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선자가 도쿄 할머니 집에서 쌀밥을 먹는 장면이 젊은 선자가 어머니가 해준 쌀밥을 먹는 장면과 오버랩이 되더라고요.

윤여정: 화면에 나오는 배우들이 조명을 받지만, 사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은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거예요. 그 장면은 사실 저도 편집된 영상을 보고 놀랐거든요. 수 휴 총괄 프로듀서가 그 신을 찍을 때, 아주 공들여서 쓴 장면이라고, 너무나 중요한 장면이라고 강조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압박감을 느껴서 힘들었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그 이야기가 이해가 됐어요.

진하가 계약하러 온 도쿄 할머니에게 ‘제 할머니라면 땅을 팔지 말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진하라는 인물에게 있어 터닝포인트가 되는 장면이지 않을까요?

진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시점이 바로 솔로몬이라는 인물이 변하게 되는 분수령이에요. 그 계약 이전과 이후의 솔로몬은 많은 차이가 있거든요. 사실 그날 저스틴 감독님이 두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촬영을 모두 찍었어요. ‘계약을 하라’고 하는 신과 ‘계약하지 말라’고 하는 신 두 가지 다요. 그래서 완성된 영상을 볼 때까지 어떤 장면을 썼는지 몰랐어요. 물론 결과물을 보기 전부터 그 장면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죠. 삶이라고 하는 것이 선택의 연속이고, 이 장면은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메타적인 선택의 기로에 있는 장면이었어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참고로 보거나 도움이 된 작품이 있을까요?

이민호: 엘렘 클리모프 감독의 <컴앤씨>입니다. 자이니치에 대한 작품은 아닌데, 코고나다 감독이 저에게 꼭 봤으면 좋겠다고 추천해준 작품이에요.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기가 빨린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출연진들이 모두 등장해 파친코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진하: 그건 수 휴의 아이디어였어요. 그 장면을 만든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프로덕션 팀이 멋진 파친코 세트를 만들어냈으니 최대한 그 세트를 멋지게 담아내고 싶었을 거예요. 촬영 중에 수 휴는 모든 주연 배우들에게 파친코 세트에 오라고 한 뒤, 원하는 아무 노래나 틀어줄 테니 춤을 추라고 했어요. 제가 어린 선자와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작품 속 타임라인의 경계를 완전히 없앤 장면이었어요. 이 타이틀 시퀀스는 저희가 함께한 작품에 대한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작품의 내용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약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요.

윤여정: 수 휴 총괄 프로듀서가 한국말을 못해요. 그리고 저는 편견이 많은 사람이죠. 당시 수 휴가 오프닝 시퀀스를 찍으려고 저에게 피곤하냐고 물었는데 영어로 “힘들어 죽겠다”며 까칠하게 대답했어요. 근데 거기다가 저한테 춤을 추라는 거예요. “난 75살 먹은 여자고, 절대 남들 앞에서 춤 안 출거다.”라고 완강히 거절했죠. 조금만 해달라고 하도 부탁해서 했는데, 완성된 영상을 보고 곧바로 사과했어요. 정말 멋진 아이디어였더라고요.

김민하: 두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노래를 들으며 춤을 췄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으로 촬영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낸 날이었어요. 스트레스 풀고 방방 뛰며 춤추느라 땀을 엄청 흘렸어요.

수 휴: 저는 이전부터 늘 타이틀 시퀀스를 좋아해서 이번 작품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작품 자체가 무거운 이야기가 많다 보니 타이틀 시퀀스를 볼 때는 즐거운 선물처럼 느꼈으면 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배우들의 가족사진들이 들어가 있는데요. 이틀에 걸쳐 촬영했는데, 가장 재밌는 촬영이었던 것 같네요.

<파친코>는 시즌 4까지 제작될 예정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다음 시즌의 제작 스케줄은 혹시 정해졌을까요?

테레사 강: 그렇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아직 시기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기다려준 분들과 작품을 함께 해주신 분들을 위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수 휴: <파친코>의 첫 촬영은 제 고향인 부산에서 진행했어요. 만약 5, 6년 전에 누군가 저에게 고향에서 자기 작품을 촬영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면, 전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져서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진 일입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해준 제작진과 배우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이 훌륭한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 본 기사는 세 파트로 나눠 진행된 <파친코>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공통 질의응답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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