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부터 ‘인디아나 존스’까지, 영화 속 인상적인 손목 시계

시계는 작고 섬세한 물건이다. 그런 만큼 영화에서 시계가 비중 있게 비춰지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등장인물의 셔츠 아래에서 살포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시계는 남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단 하나의 제품만으로도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시리즈의 토니 스타크와 <다크 나이트> 3부작의 크리스찬 베일이 각각 마블과 DC 세계관에서 같은 재벌 슈퍼히어로 포지션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 성향의 시계를 착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입비스트>가 해밀턴부터 세이코까지, 영화 속 다양한 시계를 조명해 봤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해밀턴 볼튼

스크린 속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의 모습은 유물을 손에 쥐기 위해서 총을 드는 것도 불사하는 고고학자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정장을 갖춰 입을 줄 아는 대학교수이기도 하다. 다양한 면모를 지닌 그가 시리즈 15년 만의 시리즈 신작,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 해밀턴 볼튼을 차고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시계가 ‘아메리칸 스피릿’을 표방하는 해밀턴의 역동성을 갖췄으면서도 드레스워치의 우아함을 간직하기 때문. 골드 컬러의 사각형 케이스는 러그까지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며, 브라운 컬러 레더 스트랩과 빈티지한 느낌의 인덱스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다. 비록 영화는 아직 개봉하지 않았지만, 이 시계를 염두에 두고 그의 마지막 여정을 감상해 봐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 3부작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 

<다크 나이트> 3부작의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은 지금까지 등장한 다른 배트맨과는 궤를 달리한다. 브루스 웨인의 귀족적 면모는 극대화됐으며, 그의 얼터에고인 배트맨의 어둠엔 깊이가 더해졌다. 그만큼 두 자아의 간극 역시 커졌다. 시리즈 내내 그가 착용하고 등장하는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는 그의 양면적인 캐릭터성을 대변한다. 본래 폴로 경기의 격렬함으로부터 시계의 글래스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회전하는 케이스는 때에 따라 그 섬세한 페이스를 드러낼 수도, 숨길 수도 있다. 다이얼 위아래엔 곧게 뻗은 가드룬이 자리했으며, 레더 스트랩은 삼각형 형태의 러그가 감쌌다. 그 상징적인 디자인은 1931년 출시 이후로 다이얼과 스트랩에 가해진 변주를 제외하면 큰 변화가 없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태그호이어 프로페셔널 1000

비록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실존 인물인 조던 벨포트는 롤렉스를 찬 것으로 알려지지만, 그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그호이어를 찬다. 그리고 그가 영화에서 착용한 태그호이어 프로페셔널 1000은 조던 벨포트의 마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계다. 겸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시계의 브레이슬릿과 케이스는 셔츠 아래에 감춰도 뚫고 나올 강렬한 골드 컬러로 뒤덮였다. 하지만 실제 가격은 발매 당시 1천 달러(약 1백30만 원)로 부를 과시하기엔 꽤나 합리적인 편에 속한다. 이는 기계식 무브먼트 대신 쿼츠 무브먼트를 채택하고, 금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을 도금한 것의 결과다. 영화에서는 조던 벨포트가 이 시계의 가격을 4만 달러(약 5천2백만 원)로 부풀려 자랑하기도 한다.

<데이라잇> 파네라이 루미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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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탤론이 <데이라잇>에 착용하고 등장한 시계는 할리우드에 막대한 지원을 하는 대형 브랜드가 아닌, 파네라이의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본래 이탈리아 군용 시계를 제작하던 브랜드였던 파네라이는 <데이라잇> 이후 실베스터 스탤론이 즐겨 찾은 덕분에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침투했다. 그렇게 파네라이 루미노르의 투박한 실루엣과 내구성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우람한 체격과 어우러져 럭셔리 툴워치의 포지션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 시계는 화려하지 않다. 특징을 꼽자면 상어 가죽 브레이슬릿과 44mm에 달하는 거대한 케이스, 그리고 크라운가드가 전부다. 그러나 그 우직한 고집이 스몰 워치와 각종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의 럭셔리 워치 시장에서 파네라이를 주목할 만한 이유다.

<월 스트리트> 까르띠에 산토스

<월 스트리트>의 악역, 고든 게코는 영화 안팎에서 탐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극했다. 2008년 <포브스> 선정 ‘가상 인물 재산 순위’ 4위에 오를 정도니 말이다. 그렇게나 탐욕스러운 기업 사냥꾼인 고든 게코가 극 중에서 착용하는 시계는 까르띠에 산토스다. 보석이나 뚜르비옹 등 겉으로 드러나는 사치스러운 요소 하나 없이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시계는 최고급 정장을 고집하는 그와 무척 잘 어울린다. 세계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인 까르띠에 산토스-뒤몽을 재해석한 산토스는 1980년대의 경제적 호황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럭셔리 스포츠 워치에 대한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케이스는 커졌으며, 기존 모델의 아이코닉한 레더 스트랩은 볼드한 메탈 브레이슬릿이 대체했다. 다이얼을 꽉 채운 로마숫자 인덱스와 단단하게 빛나는 금빛 케이스는 고든 게코의 야망을 담기에 충분하다.

<아메리칸 사이코> 세이코 5 SNXJ90

직장 동료의 고급 명함이 살인 동기가 될 정도로 최고만을 고집하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먼(크리스찬 베일)은 시계 역시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를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그가 극 중에서 찬 시계가 사실 3백95달러(51만 원)짜리 세이코 SNXJ90이었음이 밝혀졌다. 롤렉스가 잔혹한 살인마의 이미지와 엮이는 것을 꺼렸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한편 이는 해당 모델이 롤렉스 데이트저스트와 충분히 비슷한 무드를 낸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물론 외형뿐만 아니라 기능 역시 가격 대비 훌륭한 편에 속한다. 도금된 투 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으로 장식된 해당 시계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해 데이 데이트 디스플레이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내부엔 기계식 디테일을 드러내는 크리스탈 케이스백이 채택되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스피드> 지샥 DW-5600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도 멋진 기계식 시계를 차고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하다. 정작 전 세계 전장과 군대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시계 브랜드는 지샥인데 말이다. <스피드>의 잭 트래븐(키아누 리브스)은 영화와 현실의 괴리감을 지적하듯이 지샥 DW-5600를 착용하고 테러를 막아낸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하는 이 시계의 모습엔 조금의 과장도 섞여 있지 않다. 실제로 지샥 DW-5600은 2백미터 방수 기능, 나사의 인증을 받은 내구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10만 원을 넘지 않는 합리적인 가격 또한 이 시계를 과감히 착용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덕분에 영화가 개봉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지샥 DW-5600은 많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