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라 & 더콰이엇 인터뷰: 두 ‘OG’에게 힙합을 묻다

두 사람이 보는 힙합의 미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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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11일 미국 뉴욕 브롱스의 한 파티에서 힙합이 탄생했다. 그 뒤로 힙합은 수많은 명반과 걸출한 스타를 낳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은 MTV 등의 미디어 혹은 전 세계로 유통된 CD를 통해 아시아까지 뻗어나갔다. 자연스레 먼 아시아의 두 나라, 한국과 일본에도 힙합이 꽃을 피웠다. <하입비스트>는 힙합 탄생 50주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힙합 신을 대표하는 두 래퍼, 더콰이엇지브라를 만났다. 그들의 말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힙합을 향한 사랑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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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힙합 50주년을 기념하는 메들리 공연이 있었다.

지브라: 보며 울었다(웃음).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런-D.M.C. 등 내가 음악 시작할 때 우상이었던 선배들이 다 나오고, 점점 더 내 세대에 가까워지는 무대 구성을 보며 친구들과 눈물을 글썽인 기억이 난다.

더콰이엇: ‘봐야지’ 하고 깜빡했다. 하하.

누구나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 힙합과 만나게 됐나?

지브라: 1984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 이어 허비 행콕이 ‘Rockit’을 공연했다. 그때 간주에서 그랜드 믹서 DXT가 스크래치를 할 때 로봇으로 분장한 댄서들이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였다. 너무 멋있었다. 나도 브레이크댄스를 추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DJ를 해야겠다 싶어 곡을 만들었다. 그 뒤 자연스레 랩까지 이어졌다.

더콰이엇: 중학생 시절 미국 음악을 좋아했다. 당시 좀 잘 사는 친구 한 명이 집에 놀러 왔다가 포터블 CD 플레이어를 두고 갔는데, 들어있던 CD가 퍼프 대디의 <No Way Out>이었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기까지 한 일주일간 계속 반복 재생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친구에게 힙합을 들어보자며 힙합 CD를 사게 했다.

처음 힙합 신에 들어갔을 때 선구자들이 있었나?

더콰이엇: 드렁큰 타이거, CB 매스, 조PD 같은 래퍼들이 한국 최초의 랩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렸고, 나 같은 중고등학생이 그 음악을 많이 듣는 분위기였다. 당시 클럽 마스터플랜에서 언더그라운드 랩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초기 한국 힙합의 분위기와 클럽에서 공연하고 즐기는 방식을 배웠다.

지브라: 난 반대였다. 선배들을 따라간다기보다는 다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신에 들어간 뒤 선배들이 미디어에 나를 좋게 얘기하는 걸 보며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앞서 브레이크댄스로 힙합을 처음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때 만난 비보이 크레이지 A라든가 DJ 유타카 등의 공연에 15살 때부터 다니며 영향을 받기도 했다.

두 사람의 초기작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색채가 느껴진다.

더콰이엇: 웨스트코스트 사운드나 랩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즐겨 듣진 않는다.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팬이었고, 자연스럽게 뉴욕 출신의 아티스트를 좋아했다. 우탱 클랜이나 나스, 맙 딥을 많이 들었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게 내 초기 음악이다.

지브라: 내가 음악을 시작할 땐 웨스트코스트 힙합이 없었다. 아이스 티나 N.W.A.가 앨범을 내기 전이다. 그렇다 보니 초기 음악은 동부 느낌이 강하지만, 일부러 고집한 건 아니다. 웨스트코스트 힙합 등장 이후로는 그들의 음악도 많이 들었다. 사실 오히려 당시 나는 ‘도쿄 힙합’을 만들고 싶었다.

‘도쿄 힙합’에 대한 청사진도 있었나?

지브라: 도쿄에는 힙합 신이랄 게 없어서 직접 만들어야 했다. 이스트코스트 힙합이 전철에서 워크맨을 듣는 느낌이라면 서부 힙합은 큰 차를 타고 다니며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나스의 <Illmatic>을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워크맨으로 들어야 제맛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도쿄는 이스트코스트고, 오사카는 웨스트코스트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두 사람 모두 초기작과 달리 사운드가 크게 바뀌는 ‘전환점’ 이 있었다.

지브라: <BASED ON THE TRUE STORY>를 만든 2000년쯤 힙합의 소리가 변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비트가 복잡하고 시끄러워졌다. 바뀐 비트에는 내 랩 스타일이 맞지 않아 변화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말들,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1집과 2집 사이에 드래곤 애쉬와 함께 만든 ‘Grateful Days’가 큰 성공을 거두고 많은 주목을 받게 돼서, 그 흐름을 타고 ‘힙합이 최고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게 <BASED ON THE TRUE STORY>다.

더콰이엇: 비슷하다. 미국은 빠른 속도로 음악 스타일이 변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이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래퍼나 프로듀서가 없었다. 트랩 음악은 말하자면 쉽고 노골적인 가사가 수반돼야 한다. 당시 한국 힙합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음악이 좋았고, 한국 음악 신을 미래로 계속 운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흐름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

한국 힙합이 트랩 음악을 받아들이던 시기에 일본 힙합은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지브라: 침체기보다는 좀 잠잠했다는 정도로 말하고 싶다. 2008년부터 2013년 사이다. 좋은 신예 래퍼들이 나왔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만 소비됐다. 대표적으로 코오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에서 주목받았지만, 대중들은 그를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서 재능을 봤고, 그래서 2013년 낸 앨범 <25 To Life> 수록곡에 피처링을 부탁했다. 그 2013년까지가 일본 힙합의 겨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는 코오를 비롯한 많은 래퍼가 메이저 신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힙합 듀오 유루후와 갱은 2018년 인터뷰에서 “일본 대중은 힙합, 래퍼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라고 말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지브라: 그 5년 사이 다들 익숙해진 거 같다. 감옥에 들락날락해도 ‘래퍼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다. 모든 래퍼를 안 좋게 보는 건 아니다. 그냥 사람마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인 듯하다.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이찬혁의 “어느 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 가사에 대한 반향이 있었다.

더콰이엇: 힙합에 오래 몸담은 사람의 관점에서 그 말의 의미를 알아보려 했었다. 한국 힙합을 <쇼미더머니>의 타임라인으로 바라보면 말이 되는 듯하다. 한국 힙합이 가장 화려했던 때가 <쇼미더머니>가 성공한 2014년에서 2017년 사이다. 대중들이 한국 힙합에 가장 열광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부정적인 시선도 따라왔다. 일본 힙합과 비슷하게 래퍼들이 사고를 쳤고, 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 그 모습이 더 도드라졌다. 그걸 꼬집은 펀치라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1999년부터 힙합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 타임라인이 따로 있다.

많은 대중에겐 <쇼미더머니>가 곧 한국 힙합의 역사로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더콰이엇: 11년간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나름의 상승과 하강을 거쳤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인식하는 한국 힙합의 역사가 비슷한 선을 그리지 않을까 싶다. 잘못된 건 절대 아니다. <쇼미더머니>가 그만큼 파급력이 컸단 뜻이다. 그 시기 나온 많은 힙합 히트곡과 스타 래퍼들을 감안하면 특별한 시기였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특정 한 시기가 아니라 힙합의 첫 발자국부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그 긴 시간에서 바라보면 <쇼미더머니>도 하나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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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 사람 다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지브라: 힙합을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 음악 신이라는 게 잘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끌어주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그 문화가 좋다. ‘빌보드 차트’의 1위부터 10위까지를 힙합이 점령한 것처럼 일본에서 비슷한 성과를 거두는 꿈을 꾼다. 내가 사랑하는 신이니까 후배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어릴 때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선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콰이엇: 특별한 어떤 결심을 한 게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렇게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모두가 할 수 있거나, 할 만한 일은 아니다. 성격도 맞아야 하고 여러 조건들이 있다.

후배 래퍼를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있나?

더콰이엇: 당연히 래퍼로서의 재능과 스킬, 매력이 중요하다. 거기에 내 취향이 반영되고, 내가 그리는 미래나 트렌드에 부합하는 지도 본다. 그 외로는 사람과 사람끼리 하는 일인 만큼 인성을 본다. 하하. 같이 일을 했을 때 부지런하고, 깔끔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브라: 비슷하다. 내가 들었을 때 음악이 멋있어야 한다. 그다음에는 어떤 녀석인지를 본다. 일본 말로 ‘인간력’이라고 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확실한 목적의식이나 비전이 있는지를 묻는다.

각자 한국, 일본 힙합에서 중요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더콰이엇: 팬이자 신에 계속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사실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일리네어 레코즈를 설립했던 2011년 무렵이 여러모로 역사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리네어 레코즈도 그렇지만, 당시 저스트뮤직이나 하이라이트 레코즈 등의 레이블들이 등장 및 활약하며 어떤 틀이나 나름의 세계관이 형성된 때가 아닐까 싶다.

지브라: 미국에서 ‘골든에라’는 보통 1987년부터 1989년 까지를 뜻한다. 일본에 이를 적용한다면 1995년, 1996년이다. 당시 ‘썸핀’ 캠프(Thumpin’ Camp)라고 역사적인 힙합 공연이 열렸다. 일본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이 제대로 형태를 잡고 완전히 폭발한 때다. 이때 음악을 접한 세대를 ‘썸핀 세대’라고 부른다. 두 번째로는 2015년을 꼽고 싶다. 내가 직접 만든 <프리스타일 던전> TV 시리즈가 시작된 해다. MC들의 랩 배틀을 보여주고 이를 음원으로 발매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때 출연한 래퍼들이 디지털 시대와 패션 등과 엮이며 지금의 힙합 신을 구축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힙합 신을 어떻게 보고 있나?

더콰이엇: 변화의 시기라 본다. 주류라 볼 수 있던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나 하이라이트 레코즈, VMC 등이 해산했다. <쇼미더머니>도 힘을 많이 잃었다. 지난 약 10년 정도의 시스템과 구도가 사실상 깨졌다. 이제 새로움이 필요하고, 다들 그걸 기다리거나 만들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홍대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은 유효한가?

더콰이엇: 그 말이 유행한 지도 벌써 몇 년이 됐다. 코로나19 이전이었다. 그때는 한국 힙합의 본연을 찾아야 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간 방송의 힘을 빌려 화려함을 앞세웠다면, 이제는 래퍼로서 공연을 통해 팬들과 호흡해야 한다는. 어떻게 보면 내가 그린 미래상이었다.

지브라가 보는 일본 힙합은 어떤가?

지브라: 일본 힙합 신을 항상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하고, 끌어줘야 하는 존재였다. 그 아들이 이제 성장해서 성인이 됐다. 혼자 둬도 모든 걸 알아서 척척해낸다. 그걸 지켜보며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아시아의 힙합 신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더콰이엇: 미래를 알 순 없다. 그러나 국경 상관없이 힙합이 전 세계 메이저 문화로 성장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기업이나 정부가 힙합을 띄우려고 뒤에서 열심히 투자한 게 아니라,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그 얘기는 결국 힙합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나는 그걸 몸소 체험한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힙합은 에너지, 용기, 영감을 주는 장르가 될 거다.

지브라: 미국 힙합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지 않나. 그걸 넘을 순 없다. 하지만 반대로 아시아 힙합은 그들은 못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미국 힙합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다.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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