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 2022 SS 컬렉션에 담긴 흑인 문화 요소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패션 
12,365 Hypes

버질 아블로는 2018년 3월 루이 비통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부임한 이후 꾸준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첫 루이 비통 런웨이 쇼키드 커디, 플레이보이 카르티, 테오필러스 런던과 같은 뮤지션부터 스케이터 루시엔 클라크, 화가 루시엔 스미스까지, 여러 흑인 인플루언서들을 모델로 내세웠다. 당시 런웨이 쇼의 사운드트랙 역시 재즈, 힙합 등 흑인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쇼가 끝난 후 그가 눈물을 흘리며 오랜 동료인 칸예 웨스트와 포옹하는 장면은 패션계에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으로 남았다.

1백60여 년의 전통을 지닌 루이 비통의 최초 흑인 수석 디자이너가 하우스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말 그대로 흑인, 스트리트 시장을 향한 ‘문화 개방’이었다. 실제로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에서의 첫 쇼가 끝난 후 <GQ>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제 루이 비통이라는, 명품 시장을 바꿀 수 있는 플랫폼을 가졌다. 변화는 불가피하다”라고 언급했다. 이후에도 그는 2019년 가을, 겨울 런웨이 쇼에서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뮤직비디오를 참조해 완성하는가 하면, 2021년 가을, 겨울 컬렉션은 현대 소설가이자 흑인 인권 운동가인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을 인용하여 만드는 등 럭셔리 하우스에 흑인 문화를 계속해서 녹여냈다.

그리고 최근 파리 패션위크에서 공개된 2022년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 ‘아멘 브레이크’는 이러한 행보에 방점을 찍는다. 버질 아블로는 그 어느 컬렉션보다도 적극적으로 흑인 문화를 컬렉션에 차용했고, 수많은 미디어는 이에 관해 설명했다. 하지만 비교적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만큼 버질 아블로가 어떠한 의도로 각 맥락을 녹여냈는지 알아채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사람들을 위해 ‘아멘 브레이크’ 컬렉션에 사용된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하나씩 짚어보았다. 아래 글을 읽은 후 ‘아멘 브레이크’를 다시 감상한다면 새로운 장면들이 눈과 귀에 들어올 것이다.

‘아멘 브레이크’

패션 필름의 제목, ‘아멘 브레이크’는 1960년대 훵크 밴드 윈스턴스의 곡 ‘Amen Brother’에 수록된 6초가량의 드럼 솔로 브레이크 부분을 뜻한다. 아멘 브레이크는 미국에서 초창기 힙합 및 알앤비에 자주 이용되었으며, 영국에서는 그 위에 레게 혹은 라가 샘플을 얹은 장르, 정글을 탄생시키며 1980년대 레이브 신의 시작을 이끌었다. 루이 비통은 이에 관해 “일렉트로닉과 힙합이 같은 알에서 쌍둥이처럼 등장해 전 세계 각지로 흘러 들어간 시기의 흑인 예술과 문화의 역사적인 순간을 비춘다”라고 언급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현대 음악의 주류는 연주에 기반을 둔 록 음악에서 샘플러에 기반을 둔 힙합, 알앤비로 넘어왔다. 동시에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전자 음악 신이 덩치를 키우고 있었다. 아멘 브레이크는 이 모든 곳에서 애용되었고 결국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샘플링된 샘플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주류 음악이 샘플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힙합과 전자 음악의 발전은 아멘 브레이크와 그 궤를 같이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담으로 원곡 ‘Amen Brother’의 저작권 소유자인 리차드 스펜서는 아멘 브레이크에 관하여 그 어떤 저작권료도 요구하지 않았다.

흑표당

루이 비통은 ‘아멘 브레이크’의 스토리에 관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다른 세계에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꿈의 세계를 건너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래퍼 루페 피아스코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1972년도 공개된 일본 영화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 섞어 완성됐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주인공 사무라이 ‘오가미’는 최고의 검술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반역자의 누명을 쓴 채 아들과 함께 세상을 떠도는 처지가 된다. 이 내용은 ‘아멘 브레이크’ 초반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빌린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된다.

필름 속 ‘사무라이’는 역사 속 ‘흑표당’과 연결된다. 흑표당은 196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흑인 무장 조직이다. 이들은 1966년 시작된 ‘블랙 파워’ 운동의 일부로, 흑백평등을 주장하는 동시에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관해 무장 방어로 대응했다. 더불어 이들은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실제로 흑인 음악의 하위 장르인 소울의 기원을 흑표당의 음악적 활동으로 보는 연구 또한 존재한다.

앞서 언급된 루페 피아스코의 아버지가 흑표당의 일원이자 드러머였던 사실은 이러한 역사와 맞닿아 있다. 루페 피아스코의 아버지는 어린 루페 피아스코에게 무술, 무력의 중요성을 가르쳤고, 루페 피아스코는 자신의 데뷔 앨범 <Lupe Fiasco’s Food & Liquor>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흑인 인권에 관한 음악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버질 아블로는 루페 피아스코의 아버지로부터 루페 피아스코에게 이어진 흑표당의 정신을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섞어 ‘아멘 브레이크’에 풀어낸 셈이다.

동양 무술

갑작스레 등장하는 동양 무술에 의아할 독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1990년대의 흑인 문화, 특히 힙합과 관련이 깊다. 당시 힙합은 ‘골든 에라’라고 불리는 시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주류 문화에 편입되고 있었다. 그 선두에 있던 그룹이 우탱 클랜이다. 우탱 클랜은 1992년 첫 앨범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을 발매하고 각 멤버가 이에 기반을 둔 솔로 앨범을 연이어 공개하며 유명해졌다.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은 <소림 36방>과 같은 홍콩 쿵후 영화에서 각 멤버의 캐릭터를 따오고, 이러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사운드 샘플을 활용하며 흑인 음악 애호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버질 아블로도 그중 하나다. 그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우탱 클랜을 “10대 시절의 꿈”이라고 언급하고, 멤버 즈자를 “평생의 영웅”이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부모님 세대가 그레이트풀 데드를 그리워하던 그 나이가 됐다. 우탱 클랜은 내게 영웅이었다. 그들 때문에 쿵후 영화를 보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동양 무술에 관한 배경이 우탱 클랜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흑표당은 활동하던 당시 시카고 남쪽에 ‘도조’라는 공간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갱스터가 될 운명에 처한 어린 흑인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다. 루페 피아스코는 흑표당의 가르침에 관해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게 평화와 이해를 가르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언급했다. 필름 속 동양 무술에 대한 내용은 이러한 배경을 전부 아우르고 있다.

흑인 출연진

아멘 브레이크는 검을 든 루페 피아스코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후 즈자, 사울 윌리엄스, 골디와 같은 중견급 아티스트부터 배우 이사 페리카, 최근의 영국 재즈 르네상스 신의 주역 색소포니스트 샤바카 허칭스 등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을 고루 다룬다. 이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흑인 아티스트를 조명하고, 이들이 문화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기 위함이다. ‘아멘 브레이크’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영상을 진행하는 데에 필요한 내러티브는 모두 흑인 아티스트가 지니고 있다.

트랙슈트 & 레이브 기어

컬렉션 아이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트랙슈트와 레이브 기어다. 트랙슈트는 1980년대 런 DMC가 아디다스 트랙슈트를 입은 것을 시작으로 비보이, 래퍼, 디제이 등 흑인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들로부터 사랑받아 왔다. 버질 아블로는 이를 정장과 결합했다. 컬렉션에는 블랙 앤 화이트의 트랙 재킷 위에 블루 컬러의 슈트를 매치한 룩부터 테일러드 재킷과 트랙 팬츠의 조화, 트랙슈트 위에 롱 코트를 더한 룩까지, 스트리트 웨어와 테일러링이 병렬 배치된 룩들이 포함되었다.

버질 아블로가 조명하는 것은 힙합뿐만이 아니다. 아멘 브레이크가 정글, 드럼 앤 베이스 장르에도 이바지한 만큼, 컬렉션에는 영국의 레이브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버질 아블로는 그린, 핑크, 옐로 등 레이브 문화의 상징과 같은 화려한 네온 컬러를 퍼 재킷, 집업 후디, 가죽 재킷 등의 의류, 소프트 트렁크와 키폴 백과 같은 액세서리 등에 녹여낸다. 스마일리에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을 더한 재킷과 레이브 시대의 파티 포스터를 짜깁기한 재킷 및 쇼츠는 레이브 문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버질 아블로는 남성복 컬렉션에 퀼트, 스커트, 드레스 등을 수록하며 현대 패션계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성 중립성’을 강조한다. 버질 아블로가 루이 비통 컬렉션이 공개되기 전 “옷을 입는 것에 관해 더 ‘인간적인’ 접근 방식을 선호한다”라며 남성복과 여성복 사이의 간극을 없앨 것을 시사한 것, 지난 5월 오프 화이트 최초의 아이웨어 컬렉션을 출시하며 “나는 성별을 믿지 않는다. 오직 디자인만 믿는다”라고 말한 것 또한 이번 컬렉션과 맥락이 같다.

나이키 에어 포스 1

버질 아블로는 2022년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자신의 오랜 파트너인 나이키의 상징적인 모델 에어 포스 1을 재구성했다. 그는 에어 포스 1에 ‘아멘 브레이크’ 컬렉션에서 자주 사용된 체커 보드를 연상케 하는 다미에, 모노그램 패턴 등을 더했으며, 텅에는 주로 중앙에 배치되는 태그를 측면으로 몰아냈다. 오프 화이트 x 나이키 협업 모델에서 볼 수 있던 헬베티카 레터링과 스티치 디테일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버질 아블로가 왜 에어 포스 1을 선택했는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 가능하다. 우선 ‘아멘 브레이크’가 힙합, 레이브 문화에 대한 헌정이란 점을 꼽을 수 있다. 에어 포스 1은 힙합 문화에서 에어 조던 만큼이나 상징적인 스니커이다. 미국 힙합의 선구자 라킴부터 최근 루이 비통의 모델이 된 21 새비지까지 수많은 래퍼가 에어 포스 1을 가사에서 언급했다. 심지어 닥터 드레에어 포스 1으로 꽉 찬 자신의 신발장을 공개한 적 있을 정도다.

힙합 문화에서 에어 포스 1이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롭 베이스 & DJ 디지 록의 ‘It Takes Two’의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등장했단 주장이 지배적이다. 미국 게토의 흑인들은 에어 포스 1이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이를 ‘프레지덴셜’이라는 은어로 불렀다. 이는 곧 게토 사회가 향유하는 문화가 되었고, 이후 성공한 게토 출신 래퍼들이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강조하는 요소가 됐다. 이러한 습관은 후대에 전해지며 에어 포스 1은 힙합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저렴한 가격, 농구 문화에 기반을 둔 디자인, 나이키가 지니고 있는 브랜드 파워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버질 아블로가 에어 포스 1을 루이 비통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것을 일종의 부틀렉으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최초의 부틀렉 스니커는 마이클 조던의 인기를 뒤에 업은 에어 조던 1 하이 ‘시카고’를 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베이프스타, 에리 멘톨 10 등 부틀렉 문화를 주도한 초창기 스니커는 모두 에어 포스 1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베이프스타가 퍼렐 윌리엄스, 칸예 웨스트 등의 흑인 뮤지션에게 인정받은 점, 에리 멘톨 10이 “(흑인 사회로부터) 가장 많이 가져가면서, 주는 것은 가장 적은 두 브랜드에 바친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출시된 점은 버질 아블로의 이번 시도가 흑인 문화 및 부틀렉 문화를 향한 헌정이라는 주장에 힘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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